매거진 있잖아요

있잖아요, 그 여섯 번째

6. 당신의 인생을 누가 책임지고 있습니까?

by 일요일은 쉽니다



있잖아요 Cover 가로.png


있잖아요,


3학년 때의 이야기에요.

열심히 한 덕에 학점을 거의 다 채워서 그대로 졸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원래 주어진 대로 일 년을 더 남을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어요.

졸업하고 나서 그 후에 무엇을 할지는 아직 막연하던 시기였죠.

정치공부를 했고 나름 재미있고 잘 맞았고, 그래서 그저 막연하게

이대로 전공을 살려 대학원을 가야 하나 아니면 국제기구나 정부에서 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지원해봐야 하나

이제 막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을 즈음이었어요.


그러던 중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던 오후, 집에서 과제를 하고 있는데

같이 살던 언니가 집에 와서 인사를 하러 나갔죠.

원래는 보통 잘 다녀왔냐고 정도의 인사만 했는데 그날따라 왜인지 모르게 어디 갔다 오냐고 물었어요.

그러니 언니가 취업설명회를 다녀오는 길이라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나눠준 팸플릿을 보여주면서 너도 관심 있으면 한 번 검색해서 알아보라고.


미래에 대한 구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뭐 하나 모를 때였는데,

그날 언니한테 묻지 않았더라면 그다음 몇 달은 취업은 생각지도 못한 채 지나갔을 텐데,

그날 언니의 설명을 듣고 덕분에 미래에 대한 구상이 한층 더 구체적이 되어갔죠.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 하나의 옵션으로 열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마음이 확실해지기까지 몇 년 경험을 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막연하게라도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방향과는 정반대로

졸업과 취업을 결정하게 되었죠.


계열사를 순서대로 1순위, 2순위, 3순위 이렇게 세 군데까지 고를 수 있었는데

중학교 때 처음 마음속에 광고에 대한 바람이 불며 꼭 한 번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품었던 이름이 보여서

한 군데만 지원했어요.

어차피 한 곳에만 넣던 세 곳에 넣던 준비 해야 하는 게 똑같았기에 손해였지만

더욱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래도 꿋꿋하게 첫 칸에만 적었어요.

그렇게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2차 시험을 통과하고,

그러고 준비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3차 면접까지 마치고 마지막 면접이 하나 더 남았었어요.

매번 어려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넘어왔고 또 첫 면접에서 생각보다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아

자신감을 가지고 마지막 관문이었던 두 번째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근데 분위기가 별로 안 좋은 거예요.

아무리 웃고 씩씩하게 답하고 최대한 밝게 분위기를 이끌어가 보려 해도

질문들이 굉장히 날카로웠고 면접관들의 표정이 어딘가 어두워 보였어요.

정말 네가 와서 잘해낼 수 있겠냐는 질문을 몇 번이나 거듭 강조하시며 반복하셨고

그전 1차 면접에서 화기애애했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죠.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까지 왔는데,

모든 관문을 잘 통과하고 이 전의 면접도 나의 페이스대로 잘 이끌어갔는데,

그곳 한 군데만 목표로 여기까지 왔는데, 지난 몇 달 최대한의 정성을 쏟아부었는데,


여기서 막힌 거 같더라고요. 여기서 끝인 거 같았어요.

정말 네가 와서 잘해낼 수 있겠냐는,

정말 해낼 수 있겠냐는…


마음에 들었기에 더 어렵게 질문하신 거라고들 했지만

제 마음은 되게 낙심되었던 거 같아요.

마지막까지 와서는 여기서 멈출 수도 있다는 게.

그래서 계속 마음이 무거운 채로 지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을 들게 하시는 겁니다.


‘희원아, 그 회사 정말로 가고 싶니?’


‘네. 정말로 가고 싶어요.’


‘근데 마지막 면접을 잘 못 본 거 같아 속상하구나?’


‘네. 여기까지 잘해냈는데…’


‘그럼 나를 설득해 보겠니?’


‘네?’


‘네가 설득해야 하는 건 네가 만났던 면접관들이 아니라 바로 나란다.

내가 왜 너를 그곳에 보내야 하는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니?’


‘네?’


‘네가 설득해야 하는 건 나란다.

그러니 나와 면접을 다시 보지 않을래?

왜 내가 너를 그곳으로 보내야 하는지, 나에게 말해주지 않겠니?’


정말 놀랐어요. 정말 놀랐던 거 같아요.

왜 나는 모든 일의 주권자가, 이 세상의 통치자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정작 마음으로는 그 고백을 믿지 못했던 걸까요.

하나님을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주실 수 있는 수단 정도로 생각하고

그 어디에 있든 그 환경을 허락하신 왕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그 상황에서도 면접관들의 표정과 말투에 좌지우지되며

그 상황의 주인을 하나님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 문을 열어주세요 말하면서도

정작 문의 열쇠는 사람의 손에 있다 생각했으니.


‘나와 다시 면접을 보지 않겠니?

내가 왜 너를 그곳에 보내야 하는지, 왜 네가 그곳에 가고 싶은지 이야기해주지 않을래?’


그래서 그날부터 시작하였어요, 진짜 면접을.

다 아시니까 정말 제 마음을, 제 진심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고백하며

내가 왜 그곳에 가고 싶은지, 그 마음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내가 그리는 그림은 이러한데 하나님, 당신이 그리는 그림은 어떤 건가요.


하나님 제가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제 마음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나를 보내시는 것도, 나를 멈추게 하시는 것도 모두 주님의 계획임을 믿습니다.

당신이 보시기에 좋으시다면, 그러면 나를 보내주십시오.


그렇게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 동안 매일

적어도 30분씩 앉아서 그날 면접에서 여쭤보셨던 질문들과 다 나누지 못한 그 외에 솔직한 마음을

주님, 제 마음이 이러합니다,

제 마음이 이러합니다 아뢰며.


‘나에게 말해주지 않겠니?

나와 나누어주지 않겠니?

궁금하단다. 너의 마음, 너의 세상.’


비록 지금은 그곳을 다시 떠나왔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결코 헛되거나, 상처뿐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살면서 꼭 한 번, 언젠가는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되게 간절했고, 정말 간절했던 꿈이었기에

그곳에 머물다 떠날 수 있게 허락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문이 닫힌 것만 같아 낙심하고 있던 내게 다가와

흙투성이던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던 내 옆에 앉으신 채로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시던,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시던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흡족한 일이라면

뭐든 주고 싶어 하시는 그 마음을 알기에.


세상은 나의 가치를 매겨

손해가 아닌 이득이 되어야만 나를 필요하다 불러줄지 모르지만


당신은 나를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주시고 품어 주셔서.

내가 원하고 바라는

내 마음의 가장 깊은 소원들

그중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어 하셔서.


내가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나의 갈 길을 인도해주시고

내가 두드릴 문을 알지 못할 때

필요한 문들을 열어주셔서.


내가 한 건 하나도 없는데

내가 가진 모든 걸 주셔서

이제는 이 광야도

이전만큼 두렵지 않습니다.


이곳에 당신의

임재가 있기에


이곳에서도 당신이

나와 동행하고 있기에.


있잖아요, 그 여섯 번째

6. 당신의 인생을 누가 책임지고 있습니까?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있잖아요 Cover 세로.pn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