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 생각과 당신의 생각이 다를 때
있잖아요,
한 달 반쯤 전에 중국을 다녀왔어요.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 중에 제일 친한 친구인데 여름부터 중국에 선교사로 나가 있거든요.
졸업하고 한국과 미국에 떨어져 있는지라 못 본 지도 한참인데
가까이 있을 때 보러 가야지 하고 올해가 가기 전에 중국으로 가겠다 했어요.
근데 참 방해가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원래 어디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니 더욱 멀게만 느껴졌는데,
그래도 가야겠다 싶어 일정을 잡고 티켓을 사려는데 갑자기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일이 생겨 못 간다 하고,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정을 맞출 수 있는 다른 친구는 없고.
그래도 가야겠다 싶어 티켓을 예약했는데 여행사의 실수로 발권이 안 돼 문제가 생기고,
해결하고 나서 이번에는 비자를 받으러 가니 친구 초청은 또 까다로워서 서류가 부족해 돌아오고,
그 다음에는 서류 하나가 잘못돼 돌아오고.
결국 마지막에 제출할 때는 이런저런 문제들로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서도
그래도 접수해달라 하고 돌아왔어요.
그렇게 나 자신을 설득하고, 허락을 받고, 티켓을 구하고, 비자가 나와 이제 가나 보다 했더니
봄 이후로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는데 갑자기 가기 이틀 전에 열이 나는 거예요.
무엇하나 순조롭게 넘어가지 않아 떠나기 전 마음이 무거워졌죠.
친구와 약속을 했지만 솔직히 고민이 되더라고요. 가는 게 맞나? 가지 말라는 뜻인가?
한편으로는 일정에 변화가 생기면서부터 고민되던 마음이
티켓, 비자, 그러다 몸까지 매 단계에서 다 걸리니까 가지 말걸 그랬나 싶었어요.
근데, 다른 한 편으로는 확신하게 되는 거예요. 아, 내가 가야 하는구나. 내가 꼭 가야 하는구나.
내가 꼭 가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방해가 많이 들어오는구나 하는 마음이 생겨서
뜨겁던 몸과 부은 목을 이끌고 비행기를 탔어요.
무엇을 보여주시려고,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혹은 나를 통해 무엇을 행하시려 보내시는 걸까 궁금해하며.
도착한 그곳은 중국, 심천.
날은 한국보다 10도 정도 더 높았으며 며칠은 반바지에 반소매를 입어도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날씨였어요.
말은 통하지 않고, 인터넷은 막혀있고, 택시도 잡히지 않고. 서울과 매우 다른 곳이었죠.
공항으로 마중 나온 친구가 수업에 늦을까 봐 바로 학교로 향해 친구가 가르치는 수업에 같이 들어가고,
그 후로 그곳에 지내는 동안 친구와 함께 생활하며 같이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산책하러 나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죠.
옆에서 보니 선교사의 삶은 쉽지 않더군요.
적어도 세상이 추구하라고 하는, 세상이 성공이라 칭하는 삶과는 전혀 달랐어요.
노력은 배가 들어가는데 끼니만 때울 정도의 월급으로 살고,
집에서는 인터넷이 되지 않아 드라마나 웹툰 등 우리가 소비하는 콘텐츠랑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새벽에 일어나 사역을 담당하시는 선교사님 부부네에서 가정예배를 드리고,
돌아와 준비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을 하면
하루 종일 학교에서 맡은 수업과 그 외에 여러 역할을 홀로 해내며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을 과자로, 혹은 그마저도 없이 씻고 성경을 읽다 다시 자리에 눕는.
친구 중에 딱 한 명, 딱 하나가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내어드렸는데
그 친구의 삶이 너무 대단하고, 또 너무 어려운 거예요.
“힘들지. 당연히 힘들지.
몇 번이나 Expedia에 들어가서 당장 돌아가는 티켓을 예약하려 한 적도 있어.”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하더라고요.
일 년만 하고 가려 했는데, 한 해 더 남아야 하나 모르겠다고.
“이렇게 일 년씩 선교하는 청년이 흔치 않아. 일 년만 해도 정말 대단한 거야.”
나는 못했을 테니까요. 아니, 나는 못했으니까요.
청년의 시절 중 일 년이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기도를 나는 드리지 못했고 드리지 못했을 텐데.
이렇게 힘드니까,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고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을 만큼 힘드니까.
나 같으면 일 년조차 내어드리기 어려웠을 텐데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을 더 남아야 하나 고민하는 친구를 보며.
일주일이 지나고 주말이 되었어요. 근데 토요일 저녁부터 친구가 시름시름 앓더니
몸살이 제대로 걸려 주일날 아침에는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거예요.
하루를 쉬었는데도 컨디션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월요일 수업은 가야 하고, 학기 말이라 할 일도 많은데 어떡하지 걱정해서
“새로 가르쳐야 하는 내용이 많아? 아니면 내가 갈게” 하고 대신 갔어요.
근데
같은 교실에서 뒤에 앉아 수업을 들을 때는 몰랐는데
그 같은 교실 앞에 서서 아이들을 마주하고 수업을 진행하니까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거예요.
내가 가르치거나, 설명하거나,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이들을 위해 있어 주는, 그저 존재 자체로 아이들에게 따뜻함이라는 걸.
나에게는 한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한 시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걸.
그렇게 나의 한 시간이, 나의 하루가, 나의 한 주가 아이들에게 그보다 더 크고 깊게 와 닿을 수 있다는 걸.
나의 작은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갈 수 있는지.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
왜 선교사들이 사역을 하는지. 무엇이 그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지.
왜 세상의 잣대로는 가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도 더 부으려 하는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장 3-4절
떠나기 며칠 전 친구가 그러더군요. 심천이 마음속 어딘가에 따뜻하게 남았으면 좋겠다고.
나도 아프고, 친구도 아프고, 인터넷도 막히고, 사람들과 소통도 안 되고,
가는 길에 어려움이 많았고 가서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응. 따뜻하게 기억될 거 같아, 오랫동안.
다시 돌아오고 싶을 만큼.”
돌아오던 날, 공항에서 탑승 30분 전까지 발걸음을 떼지 못하다
이제 안 들어가면 정말 늦겠다 싶어 겨우 친구와 인사를 하고 출국심사를 받고
인천과 달리 한적한 게이트 앞에서 텅텅 빈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그저 유리창 앞에 서서
사람들이 하나둘 걸음을 옮기는 동안 다시 서울로 데려다줄 비행기를 쳐다보다
마지막으로 가방을 들고 몸을 실었어요. 한동안 많이 그립겠다는 결론과 함께.
서울에 돌아오니 동네가 변해있더군요.
나뭇잎들은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었고, 사람들의 옷 겹도 두꺼워졌으며, 날씨는 훨씬 쌀쌀해져 있었죠.
이곳에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푹 안기는 아이들도, 퇴근 후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식탁을 수놓던 친구도,
딱 알맞게 맛있던 밀크티를 팔던 카페도, 그 카페를 가기 위해 집에서 걸어 나와
스타벅스를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펼쳐지던 맛집 골목과 예쁜 꽃집도 없었어요.
막상 돌아오니 길다 생각했던 여정이 너무 짧지 않았나 아쉬운 마음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며
마지막으로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어요. 선교사로 살며 무언가 대가를 바라게 된 적은 없냐고.
나는 그랬거든요.
하나님한테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고, 요구하고.
특히나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한다는 생각이 들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항상 거래를 하려고 했어요.
제가 이렇게 할 테니, 하나님은 이렇게… 제가 이걸 드릴 테니, 당신은 이걸…
나의 시간, 나의 노력, 나의 정성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당당하게 요구했어요.
이 정도는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 이 정도는 내가 바라도 되는 거 아니냐…
그것이 굉장히 잘못된 마음이라는 걸 깨달은 이후로는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라서.
20대에 가장 아름답고 젊은 나이에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 연봉을 인상해주겠다던 로펌을 내려놓고
그에 들어가던 노력과 정성보다 배를 쏟으며 쉴 틈 없이 바쁘게 사는 그녀를 보며
이렇게 헌신하는데, 무언가 대가를 바라게 되지는 않냐고.
‘그럼, 무언갈 바라게 되지.’
준비하는 시험을 잘 보게 해 달라고, 그래서 소원하는 법대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중국 이후 그다음 과정에 있어 순조롭고 순탄하게 이뤄달라고.
학교에서 일이 힘들수록, 주어지는 역할이 많아질수록, 아이들이 말을 안 들을 때면,
내가 이렇게 헌신하는데, 내가 이렇게 사역하는데,
내 마음에 있는, 내가 꿈꾸고 있는 소원들을 이루어달라고.
‘근데 희원아,
내가 깨달은 게 뭔지 알아?’
한평생 살아온 집을 멀리 두고 지구 반대편에 혼자 뚝 떨어져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월급은 이전의 월급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으며, 인터넷도 잘 안 되고,
토요일 하루 사 먹는 밀크티 한 잔이 내가 부릴 수 있는 최고의 여유가 되어버렸을 때.
내 마음에 있는, 내가 꿈꾸고 있는 소원들을 이루어달라고,
이 정도면 자격이 되지 않냐고 우길 만도 할 때
이어진 친구의 대답에는
‘내가 천 년을 선교에 헌신해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께 빚진 사람이야.’
돌아오고 며칠 후, 떠날 때는 푸르던 나뭇잎들이 노랗게 물든 그늘 밑으로 걸어가며
그보다 진하게 마음을 수놓던 그녀의 답장은.
내가 천 년을 선교해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께 빚진 사람이라는 걸.
이건 하나님이 나에게 부어주신 사랑에, 나를 위해 치르신 값에 비하면
터무니없다는 걸.
우리가 보통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손해 볼까 봐 걱정하는 게 크대요.
중국에서 돌아온 주에 성경공부를 갔는데 인도하시던 장로님의 말씀에 속으로 끄덕였어요.
나는 그럴 때가 너무 많거든요.
무언갈 하라는 마음을 주셔도, 그게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경우에는
이래저래 손해 볼 거 같은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고 하지 못한 적이 많았어요.
내가 생각하는 곳은 그곳이 아닌데 가라고 하시고, 내가 생각하는 일을 그것이 아닌데 하라고 하실 때
아, 시간을 들여야 하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손해 보면 어떡하지? 정말 가치가 있는 건가?
내가 계획한 건 이게 아닌데 괜히 뒤처지기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순종을 가로막는 너무 많은 방해물과 이기심, 걱정, 또 두려움.
‘I'm way too weak and scared to do this whole life thing without God,
no matter how much I feel like returning home right now.’
근데 있죠
우리를 손해 보게 하실 분이 아닌데.
나는 내 눈앞에 있는 것까지밖에 보지 못하지만, 그래서 내 계산과 그분의 계산이 달라 보이면 걱정되지만,
그분은 태초이시며 현재이시며 과거이시고 미래이신데.
나의 삶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전체를 구상하시고 끝나기도 전에 결론을 내다보시고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아시며 나의 행복과 기쁨을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시는 분인데. 그런 분인데.
그래서 용기 내보려고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지금,
내 생각과 다른 답이 돌아올까 봐 상자 속에 꽁꽁 감춰 밀어내 버리던 기도를 드리려 합니다.
어디로 보내시겠습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당신이 있는 곳이라면.
있잖아요, 그 아홉 번째
9. 내 생각과 당신의 생각이 다를 때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