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있잖아요

있잖아요, 그 열 번째

10. 그래도 나를, 여전히 나를

by 일요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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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지난 석 달 동안 성경공부를 했어요.

매주 모여서 이찬수 목사님의 “보호하심”을 읽고 서로 이야기하고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몇 주 접어들고 그날도 변함없이 책 내용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나누고 있는데 한 간증을 듣게 되었어요.


퇴근하는 길이었대요.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바쁘고 지치는 하루였다죠.

사무실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저녁 늦게 버스를 타고 동네에 내려

오늘도 길고 긴 하루를 살아내느라 수고했다 토닥이며 걷고 있는데 문득 마음에 그런 소리가 들리더래요.


‘영은아, 너 아브라함 알지?’


고개를 끄덕끄덕.

아브라함 하면 믿음의 조상, 믿음의 조상하면 아브라함.

아주 오랜 기다림 후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 앞에서

원망도, 불평도, 질문도 하지 않은 채 망설임 없이 순종한 사람.

결코 쉽지 않았을, 많은 이들이 무너졌을 시험 앞에서 단호하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보인 사람.

그래서 하나님의 신뢰 또한 얻은 귀한 믿음의 사람.

그 아브라함 말씀이세요?

알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내가 아브라함보다 널 더 믿는단다.’


네?


순간 놀란 나머지 잘못 들었나 의심했대요. 나를 아브라함보다 믿으신다고?

자기 아들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 갈 바를 알지 못함에도 떠나라는 말씀에 떠났던 아브라함?

그 아브라함보다 나를 믿으신다고?


에이, 말도 안 돼요. 설마… 아직 저를 잘 모르시나 보네요.

전 당신을 신뢰하지 못한 적도 너무 많았고 원망과 불평이 앞서간 적도 너무 많았고,

그래서 순종을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물에 넘어진 적이 너무 많았는데…

이런 나를요?


‘영은아, 너 다윗 알지?’


고개를 끄덕끄덕.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나열하려고 하면 끝이 없죠.

모두가 두려움에 떨 때 골리앗 앞에 갑옷과 칼, 창을 다 내려둔 채 고작 물맷돌 다섯 개를 들고

여호와의 이름 외에는 필요한 게 없다고 담대히 나아갔던 사람.

아무 잘못 없는 자신을 죽이려고 모든 기회를 엿보고 끝까지 쫓아가던 사울을

충분히 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사람이기에 그를 치지 않았던 사람.

너무 큰 죄를 지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무릎 꿇고 나아와 눈물로 회개한 사람.

사람들이 비웃고 조롱해도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 대한 기쁨으로 춤을 췄던 사람.

그 다윗 말씀이세요?

알죠, 열정과 마음을 다해 섬겼던 다윗.


‘내가 다윗보다 널 더 사랑한단다.’


네?


이번에도 잘못 들었나 의심했대요. 나를 다윗보다 사랑하신다고?

뜨거운 열정과 끝없는 헌신과 가장 높은 왕이 되었을 때도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던 다윗?

그 다윗 보다 나를 사랑하신다고?


전 다윗에 비하면 터무니없는데. 부족하고 모자란 것 투성인데.

난 물맷돌로는 부족해 가장 확실한 계산 아래 가장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하려 늘 애를 썼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한 채 똑같은 미움으로 대했고,

내 죄를 알고도 그저 감추기에 급급했던 적이 너무 많았는데…

이런 나를요?


‘영은아, 너 내 아들 알지?’


고개를 끄덕끄덕.

예수님에 대해 물으신다면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방조차 없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기적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심해지기만 하던 핍박을 이겨내신.

살리려고 오셨는데 모두가 혈안이 되어 심판하겠다고 십자가에 못 박을 때도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외치신.

나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해 피를 쏟으시고 몸이 찢기시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신.

당신의 아들 예수, 알아요…


‘내가 십자가에서 부르짖던 나의 아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만큼,

그 값을 치러서라도 너와 영원을 함께 하고 싶을 만큼 너를 아낀단다.

너는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자녀란다.’


마음이 조금씩 먹먹해지고 있었는데. 어딘가 아려오고 있었는데.

퇴근길 눈물이 점점 시야를 가릴 만큼 어딘가 울컥하고, 또 어딘가 미어지고 있었는데.

에이 하나님, 저를 너무 모르시는 거 아니에요? 하고 그저 넘겨버린 대답이

포장 없이, 숨길 것 없이, 솔직하게 그 깊이 그대로 전해지던 그분의 진심 앞에서.


내가 뭐라고. 당신은 내가 뭐라고.

내가 뭐길래 그렇게 원하시고, 그렇게 용서하시고, 늘 그렇게 기다리시는지.

내가 필요할 때만 당신 앞에 나아오는, 그조차도 불평과 원망으로 한숨부터 내쉬는,

당신보다 다른 것들을 먼저 구하고 당신보다 다른 것들을 더 높이 사는, 당신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는.

그런 내가 뭐라고. 당신은 내가 뭐라고.

내가 뭐길래 나를 믿으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자녀라 부르시는지.


나는 당신께 해드린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당신의 신뢰에 보답하지 못하고, 사랑에 반응하지 못하고

나를 생각하며 나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나는 당신을 옆으로 밀어낸 채, 구석에 숨긴 채, 혹은 어딘가에 잊어버린 채 또 하루를 보냈는데.


‘영은아,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한단다.

나에게는 네가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뿐인 선물이란다.’


퇴근길 버스에서 내려 터벅터벅 각자 갈 길을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만 펑펑, 닦을 수도 없을 만큼 펑펑 눈물을 흘렸대요.

나를 아브라함 보다 믿고, 다윗보다 사랑하고, 아들보다 아낀.


당신이 나를 신뢰하기에.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에.

상처투성이인 나를 어여쁘다 하고 자격 없는 나를 자녀라 부르고.


여전히 나를 신뢰하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여전히 나를 기다리기에.


이렇게 나를,

그래도 나를,

오늘도 나를.


있잖아요, 그 열 번째

10. 그래도 나를, 여전히 나를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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