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만약에 우리

그는 멋졌다

by 일요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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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거의 2년 만이죠?

아니다, 입사하고 한 번도 못 봤으니까 2년 반이 다 돼가네요.

시간 참 빠르죠. 2년 반 만에 다시 마주하게 되다니 말이에요.


원래는 갈 생각이 없었어요. 원래 그런 자리를 안 좋아하고 불편해하니까.

근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가야겠다,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던 와중에

오빠도 이번에 온다는 말에 반가운 얼굴이 하나 더 있겠구나 했죠.

끝까지 갈까 말까 고민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몇 명은 시간에 맞춰 퇴근해서 오랜만에 다들 인사하고

우리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있었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문에서 등을 돌리고 앉은지라 누가 들어오는지 안보였는데

맞은편에 앉아있던 언니랑 오빠가 누군가를 향해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보고 고개를 돌리니

오빠가 왔더군요.


여전하네요. 정말 여전했어요.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안 믿길 만큼, 정말 벌써 2년 반이나 된 건가요?

근데 연수 때 모습이랑 똑같아요 오빠는.

다른 사람들이 살이 좀 빠졌다길래 보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일이 힘들어서 그렇다고 웃는데 더 멋있어졌네요.

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요즘에 반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생긴 거 같아요. 그래서 반가운데 반가운 척도 안 하고.

더 밝게 인사해주고 싶었는데, 너무 딱딱하게 인사했죠?

나를 보고는 얼굴도, 피부도 더 좋아 보인다는 말에 끄덕이며

살이 좀 쪘다고, 그래서 더 그런 걸 거라고 그러고는

기분 좋은 저녁이었으니까 예뻐졌다는 말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2년 반 만에 만나는 건데 막내티를 좀 벗었길 바라며.


얼굴도 밝아지고, 건강도 돌아오고, 좋아 보인다는 말에 잠깐 망설이기는 했지만

끄덕이며 “다 좋아졌죠, 다”

내 소식을 모를 테니까 가장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대답으로 넘기고선

얼른 대화를 마무리해버렸어요.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자리를 한 칸씩 옮기며 오빠가 내 앞에 앉았을 때도

다른 사람들하고는 다 이야기 나누고, 웃고 떠들었으면서

오빠랑은 몇 마디 못 나누겠는 거 있죠.

얼굴이 조금 물든 거 같아서.


다들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난 후

자리를 옮겨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연스레 만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미 그전에 먼저 온 사람들끼리 얘기하다

남자친구는 여전히 잘 만나고 있냐는 말에 헤어졌다는 소식을 처음 꺼냈었는데

자리를 옮겨 다 같이 둘러앉았을 때 또 한 번 나온 질문에.



“정말? 만나는 사람 있잖아. 그때 있지 않았어?”

“헤어졌어요, 그 사람이랑.”



우리가 다 같이 함께했던 연수 때에도 워낙 내 마음에는 흔들림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때로부터 2년 반이나 지난 지금도

다들 당연히 계속 만나고 있을 거라 생각했나 봐요.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연수 때 친하게 지냈던 동기 한 명이 취해서

헤어졌냐고, 정말 헤어졌냐는 질문을 하고, 또 하고.

그렇다 고개를 끄덕이니 물어본 오빠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괜찮다 하고 다 같이 얘기를 더 나누다

끝에 앉아있던 오빠가 비밀 하나를 폭로했죠.

우리 팀 내에서도 누가 누구한테 고백했는데 잘 안됐다고.


그 둘 중 한 명은 와있었는데 당사자는 얼굴이 빨개지고

폭로한 오빠는 계속해서 놀리고.

옆에 다른 오빠는 몰랐던 척 “우리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 데 있었네”하는 말에 또 웃고.

우리끼리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생각하고 묻자며 훈훈한 마무리를 남긴 채 넘어가려는데

아까 몰랐든 척 놀리든 오빠가 “또 있지 않았나?”는 질문을 던지더군요.


그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언니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그 시절의 얘기를 꺼내지 말라고 손짓해 더 묻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질문에 옛 기억이 하나 생각났어요.

합숙한 지 시간이 조금 흘러 어느 정도 적응하고 서로 친해진 후였죠.

다들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까 그만 비밀을 폭로해버린 오빠 있잖아요?

그 오빠가 오빠한테 작지 않은 목소리로

“아침에 인사했어? 안 했어? 못했어?” 하고 못 했다는 말에 핀잔을 주는 걸 들었어요.

왜 그러나 했는데 그러고는 이번엔 작은 목소리로

그러게 너는 왜 매번 그렇게 힘든 길을 택하냐며 안쓰러워하는 걸 들었죠.

그러다 아침에는 하이파이브를 해야 한다며 돌아가며 갑자기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라고 하더니

자연스럽게 오빠를 이쪽으로 보내더라고요.

그러고는 오빠가 나한테 와서 손을 내밀었어요. 잘 잤냐고.


그때는 누굴까 하고 말았는데,

집에 먼저 가겠다는 말에 그러지 말고 같이 회식을 하고 가라고 계속 잡던 모습이랑

어색하게 앉아있는 나를 보다가 어디선가 아이스크림 한 통을 사 와서 먹으라고 준 것과

마지막 날 인사하고 가려는데 데려다주겠다며 역까지 나온 것

그러고는 “남자친구 만나러 가지?” 하며 지어 보이던 표정.

나중에 다른 동기를 통해 듣고 생각해보니 하나둘 보이더라고요.

그랬었구나, 그랬구나.


오빠 되게 좋은 사람인데.

모든 사람이랑 잘 어울렸고, 맡은 일은 성실하게 해냈으며,

모난 데 없고 둥글둥글하게 첫인상도, 마지막도 좋았던 사람.

그에 비하면 연수 때 나는 너무 어리기도 했고,

그래서 어색하기도 했고, 낯설어하기도 했고,

모난 데도 많고 부족한 부분도 너무 많았는데 말이에요.


그러고 우리는 만날 일이 없었어요.

그 이후로는 각각 흩어졌으니까.

연수가 끝난 지 몇 달 후 한 번 우리 다 같이 있던 방에 무슨 영화가 재밌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아직 안 봤다고, 지금 서울 가는데 같이 보지 않을래? 하던 물음에도

그때도 몰랐어요.

여전히 나는 그 사람을 만나고 있었으니 그때 알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근데 나 한 번 되게 고마웠던 적이 있는데.

지쳐가고 있던 즈음, 밤늦게 사무실에 있었는데

왜 퇴근 안 하고 아직도 온라인이냐는 알림에 되게 반가웠거든요.

종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피곤한 마음,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걱정과 불안을 적어 보냈는데

다시 회의 들어가야 한다는 내 말에 마지막으로 오빠가

어디서든 잘할 거라고, 그 마음 꼭 갖고 있으라고 해준 말이 되게 고마웠거든요.

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있었기에

여러모로 혼란스럽던 와중에

늦은 밤, 커피를 몇 잔씩 마시며 버티던 사무실에서

그 마음 잃지 말라던 위로가.


아, 새벽이라 괜히 말이 길어졌어요.

참 별걸 다 기억하죠?

그때 그런 일이 있었잖아, 그때 그런 말을 했었잖아 하고 되짚어내면

친구들이 기억력 좋다고 깜짝 놀라고는 해요.

어쨌든, 2년 반 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이번엔 나는 혼자였지만, 오빠는 만나는 사람이 있더군요.

물론, 그 또한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늦어 먼저 가보겠다고 일어섰는데

오빠랑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이 두 명 더 있어서

우리 넷이 걷고 있었죠.

오빠는 앞에 아까 비밀을 폭로해버린 오빠랑 걷고

나는 뒤에 취해서 계속 헤어졌냐고 묻던 오빠랑 걷고 있는데

내 옆에 오빠가 정말 취해서 계속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더니

물었잖아요, 근데 왜 헤어졌냐고.


긴 이야기를 나눌 자리는 아니었으니

그 사람 마음이 떠나서 그랬다 하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 오빠가 또 묻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은 지금 어떻게 지내냐고.



“그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잘 만나고 있고, 좋은 회사 다니면서 잘 지낸다고, 잘 있다고.

둘 다 예상치 못한 답이었는지

더 좋은 사람 만날 거라고 급히 반복하는 대답에 괜찮다 웃으며 그러고 계속 걷는데

앞에 있던 오빠가 그랬죠.

나도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괜히 땅으로 시선을 돌린 채 걷는데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을 만큼 아주 살짝만 고개를 돌리고선

겨우 들릴만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떠나갈 사람은 빨리 보내는 게 좋아.

잘했어.

괜찮아, 잘했어.”



정말 그런 거겠죠?

곁에 남을 사람이 아니라면, 이 깊이가 더 깊어지기 전에

떠나보낸 게 잘한 거겠죠.

순간 마음이 아리기도 했고, 또 따뜻하기도 했고.

그때나 지금이나 나 자신도 불안하고 모르겠는 답을

그러하다 말해줘서 또 한 번 고마웠어요.


그러고는 각자 가야 할 길이 달랐기에

정류장에서 인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지만

오랜만에 봐서 정말 반가웠어요.

아, 이 말을 못 했네요.

그때도, 지금도 또 고맙다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꽤 멀던 거리를 지하철 안에서

만약에 우리가 두 번 엇갈리는 대신 한 번 겹쳤더라면, 생각했는데.


인연이면

또 만나겠죠.

그러고 한 번은 겹치겠죠.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너무 늦기 전에, 한 번은

그러하길 바라요.

인연이라면.


고마웠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로.

행복한 길만 걸어요.



P.S.

있잖아요

이건 동기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인데,

난 원래 연상을 안 좋아하는데

만약 연상을 만났더라면, 오빠를 만났을 거에요.

이 마음은, 나중에 좋은 추억으로 묻어두자고 놀릴만할 즈음까지 묻어둘게요.



잘 지내요, 그때까지.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18. 그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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