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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Jun 20. 2021

밤을 걷는 밤, 유희열

"좋은 시간은 좋은 시간대로 나쁜 시간은 나쁜 시간대로 기억해야 한다."


모임, 세 번째

210617, 선선한 여름밤  

※가공되지 않은 raw data 그대로입니다



[대화 시작]


S: 밤을 걷는 밤 (웃음), 한 줄 소감, 다섯 줄이어도 괜찮습니다! 


Y: 밤을 걷는 책이었어. 글, 그런 텍스트로 산책을 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실제로 신체적으로 걷는 것도 산책이지만, 텍스트를 쭉 읽어가면서 어렵게 읽히지 않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읽히는 순간 그려지는 이미지나 느낌 자체도 되게 어딘가 거닐고 있는 느낌?


S: 맞아.


Y: 텍스트를 따라 쭉 산책을 하는 느낌이었어. 편안한 책이었어. 


S: 맞아, 그리고 쉬웠어요.


Y: 그리고 유희열의 필력? 괜히 작사 작곡가가 아니구나 싶었고, 다양한 걸 표현하고 비유한 게 흥미로웠어. 유희열이란 사람에 대해서 더 호의적으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


S: 원래 좋아했어요?


Y: 원래는 그냥 그랬어. 그 매의 눈 때문에 이미지가... (웃음) 


S: 문장에서 되게 유희열스럽다 느껴지는 게 많았어요... 좀 친근하고 포근한 것도 있었고, 그게 되게 좋았고... 근데 활자가 너무 없어서 놀랐고. 전 책을 읽고 영상을 보았는데, 책을 읽고 영상을 봐서 더 좋았던 거 같기도 해요. 


Y: 그리고 책의 소개글이 있잖아, 그 부분에서 인상 깊었던 게 이 책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공간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나는 조금 앞서 걸어가는 안내자일 뿐 내가 걸었던 길 위에 더 많은 사람들의 온기와 행복과 추억이 담기길 소망한다는 걸 강조했다는 것도, 이 책을 덮는 순간 이 머리글이 되게 생각났어. 유명인이 쓴 책에 대한 편견을 떨칠 수 있도록 가이드가 되었어.


S: 언니는 읽으면서 어떤 질문이 떠올랐어요?


Y: 근데 내가 생각했던 걸 너도 궁금했을 거 같은데.


S: 그래서, 나도 그게 궁금해. 우리가 생각했던 게 비슷할까.


Y: 우선은 이 책을 덮는 순간 제일 물어보고 싶었던 건, 이 코스들 중에 제일 거닐어보고 싶은 곳은 어딜까? 


S: 오! (감탄) 맞아.


저는, 제가 두 코스를 적었는데 내가 언니한테 보냈나 보다. 한 코스가 그거네요, 효자동. 그걸 우리가 지금 걸어온 거고, 그리고 다른 게 성동구 응봉동. 근데 제가 야경이라 적고 별표 친 걸 보니까 여기가 그거였나 보네요, 프러포즈 장소. 


Y: 나도, 나도 1위가 거기였어 응봉동. 유희열이 설명하기를 자기가 봤던 야경 중에, 세계에서도 제일 멋지다고 그랬거든. 


S: (지금 보이는) 이거랑 다른가? 


Y: 달라, 달라. 서울이 다 보이는, 흘러가는 강물 위에 잔잔하게 흘러가는 느낌이랑, 그 텍스트랑 이미지랑 다 어울리면서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가보고 싶더라고.


S: 언젠가 한번 가봐야겠네요. 또 있었어요, 2위?


Y: 아 2위, 2위... 는 아니고, 좀 친근했던 코스가 있었어, 홍제천. 홍제천은 내가 이전 직장이 연희동이었고 우리 집이 녹번역이어서 녹번역에서 연희동을 가려면 홍제천을 따라 걷다가 중간에 연희동으로 빠졌거든. 그래서 정말 많이 걷기도 했고, 그 거리를 정말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유희열이 자기 어머님을 뵈러 가는 길이라고 얘기하는 걸 보면서, 아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거리가 모두 다르게 느껴지겠구나... 유희열이 어머님을 생각하면서 걸어가는 그 길과, 나는 어쨌든 회사를 출근하면서 걷는 길이었으니까 마음의 결은 달랐을 거 같아. 


어찌 됐든 그 길은 정말 아름답고 좋아. 사계절의 모습이 다 달라. 봄에는 개나리가 샛노랗게 가득하고, 여름에는 파릇파릇한데, 홍제천이 위에는 고가대로가 있고 밑으로 걷는데 어두침침할 수도 있으니 세계명화를 걸어놨어.


S: 아! 아! 드라마에 나왔어요.


Y: 알아? 그것도 되게 잘 어울려. 내가 걷는걸 되게 좋아한다는 걸 증명해준 길이야. 회사까지 가던 길이 짧지 않았어, 1시간? 1시간 정도 되었는데 그런데도 내가 그 길을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걸었으니까. 아니면 따릉이를 타던지. 내가 그만큼 좋아했던 거리니까 가능했던 거 같아. 


S: 홍제천은 그...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그 명화들을 봤던 기억이 나요. 또 어떤 부분이 좋았어요?




Y: 음... 뭔가, 길을 잃어버리는 것도 여행의 한 방법이라고 얘기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사실상 지금 핸드폰도 그렇고 잘되어있다 보니까 요즘은 길을 잃는 경우가 거의 없잖아. 잃을 거 같으면 찾아보니까. 그래서 그 부분이 되게 신선하기도 했고, 동시에 나는 어떤 스타일인가? 나는 길을 찾을 때, 여행을 할 때, 길을 향한 나의 태도는 어떤가 생각해보니 나도 처음에는 엄청 찾아보는 스타일이었던 거 같아. 근데 또 누구와 함께 하냐에 따라 또 달라. 


S: 그렇지.


Y: 그 누군가가 길을 잃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싫어하면 무조건 복습하고 찾아보는데, 근데 이 사람은 우리가 길을 같이 잃어버려도 별로 문제 되지 않는다 하면 그냥 갈 길 가면 돼. 


S: 맞아요.


Y: 그런 거 같아. 길을 잃어도 함께 길을 잃어줄 수 있는 사람과 걷는 길은, 참 좋은 것 같아.


S: 되게 멋있는 말이네요.


이 책은 읽으면서 공감 가는 말들이 되게 많았는데, 예를 들어서 어머니 얘기를 할 때, 

"어머니는 꼭 이맘때쯤, 그때로 치면 통행금지 시각이 아슬아슬할 때에야 돌아오셨다. 
어릴 때는 그게 퍽 속상하고 서러웠는데
어른이 돼서 이 골목에 서 있자니
그저 사무치게 그리운 기억이다." 

어렸을 때는 싫었거나 몰랐는데 지금은 그리운 기억이 뭐가 있을까? 나이가 드니까 이해가 가는 기억이 뭐가 있을까요? 


Y: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추억인...


S: 혹은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Y: 아! 어렸을 때 내가 시골에 살았잖아. 장이 시골 읍내에 선단 말이야. 근데 그때마다 데리고 갔던 음식점이 있어. 그게 콩국수 집이었어. 그때는 콩국수가 너무 싫었어. 그래서 장이 서는 게 싫은 거야, 난 짜장면 이런 거 먹고 싶으니까. 그래서 투덜투덜거리면서 먹었던 게 생각이 나는데 지금은 콩국수 진짜 좋아하거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가 이 맛을 그렇게 찾아갔던 것 같고, 이게 그 두 분에게는 얼마나 낙이었을까? 별미 같은 느낌이잖아. 


S: 굉장히 명확한 기억이네요. 


Y: 응, 딱 생각이 나. 콩국수를 먹을 때마다 생각이 나. 너는? 


S: 저는... 그런 명확한 기억은 없는데, 뭔가 많이 있을법하지만 없는데... 근데 어렸을 때는 여름에 장마철이 싫었거든요? 일단 비 맞는 것도 싫고, 비 오면 나가기도 불편하고, 유일하게 한국에 여름방학에 들어오는데 비 오면 나가지도 못하고 하니까. 


근데 그 어렸을 적의 한국은 비 오던 장마철의 한국으로 기억돼서, 지금은 비가 오는 장마면 그때 생각이 나요... 지금 돌아보면 좋더라고요. 


Y: 많을 거 같아. 당장 생각이 안 나서 그렇지, 집에 돌아가면 또 떠오르겠지.


어머니 얘기가 나와서, 그 부분에서 유희열이 그러잖아. 

"이 날 나의 걸음걸음은 어머니에게 부치는 밤편지였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이 생각을 했어. 우리는 과연 어떤 길에서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까? 


S: 오, 너무 멋있는 질문이네요. 


Y: 어떤 길에서 걸으면서 쓰는 편지가 된다면, 어떤 길에서 누구에게 쓰고 싶은지?


S: 진짜 멋있는 질문이네요.


저는 실제로 그렇게 했던 건 도쿄에서 한선생한테였어요. 2017년에 처음 갔을 때, 그 친구는 교환학생을 가서 없었을 때인데, 도쿄에 가서 거리거리를 걸으면서 실제로 카톡을 계속 편지처럼 썼기 때문에... 오늘은 여기에 왔어, 뭐 하고 있어, 너도 여기에서 무얼 했겠구나, 해서 그때는 진짜 문자 그대로 편지를 쓰면서 걸었었어요. 


언니는요? 


Y: 나도 너 얘기를 들어보니까 생각이 나긴 하는데, 조금 결이 달라. 그렇게 낭만적이진 않아. 나는 진짜 어렸을 적에 초등학교 때, 그때 당시 한창 2002 월드컵이 난리였을 때라서 그때 나이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인가 3학년인가 그랬는데, 친구랑 너무 우리가 4강에 진출했으면 좋겠는 거야. 그래서 계천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서 학을 접고 띄워놓으면서 진짜 4강을 기원했었어.


S: 우와.


Y: 되게 순수하지? 너무 순수한데, 그 길을 같이 걸었던 친구도 친구지만, 그 길에서 우리가 대표팀 선수들한테 편지를 쓰던 것과 마찬가지야. 그때는 그게 뭔가 엄청 큰, 열광 같은 거였어. 지금 학생들이 BTS 좋아하는 것처럼 애국심으로 쓴 그... 에너지 (웃음). 


아, 아까 그 어떤 길에서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지에 맨 처음 생각나는 건 사실 남산에서 오빠한테 편지를 써보고 싶어. 오빠가 남산에서 나한테 고백을 했고, 그 고백하는 날에 남산 처음부터 꼭대기 타워까지 걸어갔거든. 진짜 너무 더웠어. 


S: 오늘보다 멀었어요?


Y: 어, 멀었고 가파랐어. 뻔히 저 케이블카가 있는데, 이 사람은 왜 이걸... 아니 그 삼순이 계단 알지? 거기를 걸어가는데, 그 길을 지나서 경사진 길을 계속 올라가는데 헉... 근데 그 길을 다시 걸어보면서 그때의 오빠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오빠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어떤 생각으로 나한테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까, 물어보고 싶어.


S: 왜 케이블카를 안 탔냐고 (웃음).


Y: (웃음) 그 당시의 오빠의 마음을 그대로 듣고 싶어. 지금은 오빠도 희미해졌을 수도 있고, 이걸 나한테 미화해서 얘기할 수도 있고, 근데 그 당시 실제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해 듣고 싶어. 


S: 언니가 해주고 싶은 말은 뭔데요?


Y: 음... 그런 모든 내용, 오빠가 나한테 해준 걸 고맙게 생각하며... 고마움을 표현할 거 같아. 


S: 맞아, 만약에 그렇게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면,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내가 이때까지 그 사람한테 썼던 편지를 모아서 한 권의 책을 내도 아름다울 만큼, 그런 한 권의 글을 써주고 싶어요. 


글렀네요, 벌써 30년 살았는데 (웃음). 


Y: 근데 너의 브런치 안에도 그런 편지가 있는 거 아니야?


S: 있죠, 뽑아서 줄까요? (웃음) 


저는 또, 유희열이 

"산도 인생도, 잘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적어둔 게 있었는데, 잘 내려간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인생을 잘 내려간다는 게. 


Y: 인생을 잘 내려간다...


S: 마침 산을 내려가야 하네요?


Y: 네, 맞네요 (웃음). 진짜 인생의 평안이라고 느껴지는 건 자연스러운 거. 갑작스럽게 생겨나는 일들이 아니라, 그냥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런 게 어떻게 보면 평안일 수 있겠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도 자연스럽게 저물어가는 것? 내 자리를 지켜내는 것. 자연스럽게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 너무 또 갑작스럽게 내려가거나 추락하게 되면 막 먼지가 일기도 하잖아. 사뿐히, 사뿐히 내려앉는 것. 너는?


S: 저는... 잘 모르겠어요. 잘 내려간다는 게... 혹은 알아도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게 어려울 거 같아요. 뭔가, 있다 산을 내려가면서 찬찬히 (웃음) 생각을 (웃음)... 근데 언니랑 비슷한 맥락에서 무언가, 욕심을 비워내면서, 거둬내면서 가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제일 많이 생기는 찌꺼기가 욕심인 거 같아요. 혹은 고정관념, 판단... 그런 게 찌꺼기같이 붙어서 내려갈 때는 그런 걸 많이 버려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저희 매장 금일 마감했으므로 다 드신 음료 픽업대로 반납 부탁드릴게요."


S: (아쉬움) 좀 늦게 시작했구나 오늘. 


Y: 그러니까.


S: (급한) 다른 부분에서, 유희열이 

"'우리도 음악 한번 해볼래?'
이 말을 들은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삶이 시작됐다."

는데, 언니의 인생을 바꿔놓은 말이나 순간이나 사건? 긍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으로 생각해봅시다. 


Y: 있어. "감사 감사 또 감사". 대학교 때 내가 만든 말이었어. 사실 그게 제일, 인생을 사는 데 있어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잠깐 일시 정지하고 내려가면서 얘기를 계속 하자. 


S: 좋아요. 산을 걸어 내려가면서 얘기를 계속하시죠. 


[카페를 나와 인왕산을 걸어 내려가는 길]


S: 저는 또 메모했던 부분 중에 하나가, 유희열이 정재형이랑 이적이랑 나이가 들어서 낙원 상가 앞에 앉아서 친구들끼리 시간을 보내는 게 상상이 간다는 부분이었는데, 그러면 이제 언니가 생각하는 단계별로의 모습? 30, 40, 50, 60... 80... 언니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단계 별로의 삶? 


Y: 우선, 30대에 접어든 저는 조금 어느 정도 내가 10대 때 그렸던 모습이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해. 나는 30대 때 되게 열심히 일을 하고 싶었어.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어. 이상적인 커리어우먼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꿈꿨던 그런 도시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룬 건 맞고. 그래서 나의 30대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스킬을 쌓는, 나의 업에 대한 전문성을 쌓는 30대? 인정까진 안 바라고, 그냥 뭔가 나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을 정도로 일을 잘 해내는? 그런 30대. 


40대에는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와 정말 단란한 가정을 꾸려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부모가 됨으로써 내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들을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상적인 나이일 걸 같고... 


50대는, 음... 멋진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 인생을 100세라고 봤을 때 한 반을 치열하게 살았을, 숨을 고를 수 있는 타이밍일 거 같아. 그 시간에 이제 내가 살았던 삶을 돌아보면서 자만하지 않고 내 업보로 여기지 않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후반기에 어떻게 지혜롭게 살지를 고민하는...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나도 잔뜩 들어갔던 힘을 빼고... 


60대는 난 멋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S: 요즘엔 할머니도 아니죠.


Y: 그렇지. 60, 70, 80, 90 이 하반기는 진짜 멋있는 할머니. 외적으로도 그렇고 내적으로도 그렇고, 인생에 대해 푸념하는 할머니가 아니라 내가 배운 삶의 지혜들? 매우 이상적인, 추상적인 모습이겠지. 너는?


S: 뭔가... 저도 비슷한 거 같은데, 나이가 들수록 조금 더 감정들이 고요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뭔가, 20대 때는 세게 아프고 힘들어봐도 그것도 다 청춘이니까- 


Y: 아프니까 청춘이다 (웃음).


S: (웃음) 그렇죠. 30대는, 조금 더 내가 사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지혜로워졌으면 좋겠다... 성급함이 줄어들고, 판단하는 것도 줄어들고, 그렇게 해서 40대가 되면 뭔가 좀 삶이나 사람이나 회사나 일들을 보는 안목이 40대 정도에는 좀 생겼으면 좋겠어요. 


Y: 생길 거야.


S: 생기겠죠? 오, 이제 다시 좀 내리막길이네요. 그리고 50대 때는 짬이 생겨서, 여전히 바빴으면 좋겠는데 놀고 싶진 않아. 바쁘지만 또 그 안에 삶의 여유는 있었으면 좋겠고...


60, 70, 80은, 제가 결혼을 한다면 


Y: 60에 결혼을 하는 건 아니지? (웃음)


S: (웃음) 그걸 노린 거였어요 (웃음). 


그땐 이제 자식들이 떠났을 나이잖아요, 자식들이 떠난 게 슬픈 만큼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둘이서만 함께할 수 있다는 설렘이 있었으면-


Y: 우와.


S: 그런 마음이 드는 60, 70, 80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자식 때문에 산다가 아니라, 자식 떠나니까 우리끼리 즐겁게, 당신과 함께, 그런 60, 70, 80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Y: 그 존재에서부터 오는 안정감, 위로...


S: 편안함... 


Y: 치열하게 살다가 다시 당신 품 안에.


S: 오 맞아, 그런 거죠. 이미 그때는 약간, 그 사람이 그냥 산소 같은 존재였으면 좋겠어요. 너무 익숙하고 편하고, 있는 게 당연하고... 근데 막 산소 때문에 설레진 않잖아요, 없으면 죽지만. 그 정도의 편안함이 최고의 축복 아닐까? 


Y: 어, 나 이것도 있어. 아까 롯데월드 얘기했었잖아. 그 부분에서 유희열이 아저씨가 됐어도 아직 마음에 피터팬이 살고 있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무언가 너의 마음에 그런 피터팬 같은 존재는 뭐일까?


S: 오, 되게 어렵다. 


Y: 방금 내가 지어낸 건데 나도 어려워 (웃음).


S: 심오한데요? (웃음) 우리 마음의 피터팬... 우리 마음의 피터팬... 우리의 달란트?


Y: 달란트가 될 수도 있고, 무언가 여기서 얘기한 피터팬이 동심이었던 거 같거든? 이젠 없지만...


S: (웃음) 동심 파괴.


Y: 나는, 내 마음에 순수한 마음을 끌어내는 매개체는... 찬송가.


S: 찬송가? 우와, 특별히 그런 찬송이 있어요? 


Y: 요즘 CCM 말고, 진짜 옛날 찬송가. 가사가 되게 단순하잖아. 세상적인 걸로 봤을 땐 동요 같은 거잖아. 동요도 들어보면 되게 단순한데 신기하면서도-


S: 아기상어도 그래요. 패밀리가 다 나오잖아요. 


Y: (웃음) 


S: 근데 그 질문이 정말 어렵네요. 아까 밤편지 질문은 말랑말랑했는데 이건 어렵네요. 없어서 그런가, 피터팬이...


Y: 그럼 또 다른 질문. 지금- 은 조금 늦었고, 만약 내일 밤에 누군가와 함께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서 누구와? 전국 전 세계 어디든. 


S: 우와, 어렵다... 근데 또 막상, 나중에 이렇게 귀한 기회를 버렸다고 아까워할 수도 있는데, 막상은 그냥 아는 곳으로 갈 거 같아요. 세계 어디를 갈 수 있다 하더라도 막상은... 어, 되게 어렵네. 왜냐하면 생각보다 가고 싶은 덴 많고, 음... 음... 오 진짜 어렵다. 진짜 어렵네... 우와 진짜 어렵다. 저는, 어우 답이 너무 많아요. 약간, 당연히 한번 앙코르를 한다면 언니랑 장그래 집-


오! 벌써 다 내려왔어? 웬일이야. 그리고 이제 흥국이 보여요. 되게 신기하네.


아무튼, 언니랑 장그래 집을 한번 앙코르를 하고 싶고. 왜냐하면 그냥 그때 뭔가 하나의 마무리와 시작인 게 좋은 끝맺음 같았어서 그 시간도 너무 좋은데, 장그래의 마음이, 그게 어떻게 보면 딱 맞진 않지만 나름 피터팬? 나름 사회초년생의 동심으로 돌아가는? 그래서 약간 장그래 코스도 앙코르를 하고 싶고... 그다음에 또 언니랑 언젠가 한번 앙코르를 하고 싶은 건 낙산.


Y: 혜화?


S: 응, 혜화. 왜냐하면 그게 내가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3월이었는데 연도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낙산 올라가기 전에 스타벅스에서 언니가 처음 나한테 자허블을 알려준 날이었거든요. 언니랑 그때 스타벅스에서 같이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때 우리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약간 거의 압도적으로 행복해 보이는...


Y: 여기 스태픽스 갈 때 걸어간 길이야.


S: 우와, 우와! 우리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나는 사실 살짝 걱정했거든요 내려가는 길을. 근데 뭐야, 이거는 이러면 택시 탈 필요가 없었네요 정말.


Y: 나는 만약 너와 함께 길을 걷는다면, 순례자의 길?


S: 산티아고?


Y: 응.


S: 와우, 그건 거의 결혼하기 전에 한 달을 잡고 가야 하는 (웃음).


Y: 맞아 (웃음).


S: 아니 근데 다 내려왔어. 뭐야, 올라가는 건 힘든데 내려오는 건 너무 쉽네요. 길이 딱히 다르지도 않았어요. 


그럼 아까 질문으로 돌아가서, 잘 내려온다는 것이란?


Y: 잘 내려오는 것이란...


S: 한번 산을 내려와 보니까 어떤 거 같아요?


Y: 잘 내려온다는 것이란...


S: 흥국 또 나왔어. 흥국으로 이직해야 할까 봐 (웃음).


Y: (웃음) 잘 내려온다는 것이란... 살피면서 내려오는 것? 


S: 아! 


Y: 나도, 주위도. 그냥 무작정 목적지만 하염없이 가는 게 아니라 나도 주위도 살피면서 내려오는. 너는?


S: 저도 비슷한 맥락에서, 저는 지금 내려오면서 깨달았는데, 하나는 조급해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다른 건 내려오는 길을 즐기는 것, 이 야경을 보면서. 처음에 약간 아까랑 비슷한 느낌의 길일 땐 몰랐는데 확실히 조금씩 야경이 보이면서 이런 도시가 다시 나오니까 생각보다 이게 되게 짧고 한순간인데 이 내려오는 걸 잘 살피고 여유롭게 즐기면서 인생도 산도 내려오면 좋겠네요. 


끝났어... 벌써 끝났어ㅠㅠ... 이 정도면 내일 출근할 수 있겠죠? 아주 타격이 크진 않죠?


Y: 네. 결국 이 책에서도 마지막 산책의 도착지는 집이었어. 그것처럼 결국 산책의 마지막은 평안? 안도, 안락함...


S: 심오한대요, 오늘 약간, 철학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아, 또 적어 놓은 것 중에 

"숱하게 다니던 동네인데 어릴 때는 은행나무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무상한 세월을 길디길게 견뎌온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나 보다."

나이가 드니까 눈에 들어오는 것들? 30이 되니. 유희열처럼 이런 나무가 될 수도 있고, 상징적인 의미에서 감정, 마음 그런 게 될 수도 있고... 


Y: 저번에 네가 얘기했던 단어인데, 나는 긍휼. 가족들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기도 하고, 연인에게 그렇기도 하고... 좀 더, 좀 더 그들의 입장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 거 같아 30대가 되니까. 이전에는 내가 좀 더 우선적으로 있고 내가 더 앞섰더라면,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다른 마음들, 긍휼한 마음... 너는?


S: 저는, 살아내려고 하는 몸부림? 어제 회사 동료들하고 저녁을 먹고 공덕에서 지하철을 타는데, 빅이슈 아저씨가 있었어요. 한 9시 정도 됐는데, 그 아저씨가 거기 서서 저를 쳐다보는 눈빛이... 그냥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몸부림 같은... 예전에는 그 마음을 잘 몰랐을 거 같은데, 인생의 그런, 고비들을 몇 번 넘기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그냥 정말 그, 살려고 하는 몸부림... 그런 마음들이 보이는 거 같아요. 


언니는 여기서 어떻게 갈 거예요? 지하철? 


Y: 응 나는 지하철 탈 거야.


S: 그래요 오늘은 안전하게 지하철 탑시다. 근데 지금 잘 내려가는 것이란? 을 계속 생각하면서 걸었는데, 생각보다 내려가는 게 너무 쉬워서, 인생도 갈수록 힘을 빼고 쉽게 내려갔으면 좋겠네요, 아등바등 사는 게 아니라... 그리고 너무 빨리 끝났어. 너~무 빨리 끝났어. 


Y: 내려가는 거 순식간이야 (웃음)


S: 헉 (웃음). 그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즐길걸! 


[마무리 시작]


S: 우리 그거 해야 해요.


Y: 마지막-

 

S: 가장 좋았던 문장? 


Y: 나는, 

"좋은 시간은 좋은 시간대로, 나쁜 시간은 나쁜 시간대로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을 수 있다."


S: 나도 그거 적었어. 너무 멋있는 말이었어요. 

저는 두 개를 뽑았는데, 하나는

"수천 개의 불빛엔 그만큼의 이야기가 일렁이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건 

"독립문에서 경희궁에 이른 이 날 산책코스는
시간의 틈새들을 애틋하게 걷는 느낌이다."

에서 애틋함에 꽂혀서... 


이로써 오늘 저희의 등산코스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박수). 



커버 사진

"Summertime sadness" https://unsplash.com/photos/FLigbWjCZ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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