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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Sep 05. 2021

글쓰기의 쓸모, 손현

기록과 이야기는 오래도록 남아 당시 모습을 드러낸다


모임, 여덟 번째

210902, 한 주를 쉬고 오랜만에 한강

※가공되지 않은 raw data 그대로입니다



[대화 시작]


S: 어떠셨습니까?


Y: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는데 글을 쓸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많은 도전을 주는 그런 책이었어. 그리고 손현이라는 작가가 참 글을 잘 쓴다고 느낀 게 글의 부드러움이 마치 소화가 잘되는 음식 같은 느낌? 글을 읽는데 화려한 스킬이 아닌 오랜 글쓰기를 통한 내공이 느껴지는 부드러움?


S: 맞아요, 저도 비슷했어요. 부드러움에 되게 놀랐어요. 이 사람의 언어가 너무 부드러웠고, 되게 정성스럽게 반죽한 말랑말랑하고 푹신푹신한 빵 같은 느낌...


언니는 주로 어디에 기록하고, 언제 글을 쓰고, 무엇에 대해 왜 써요?


Y: 나는 우선 내가 되게 사무치는 감정이 생길 때 기록하고 싶어 하는 편이야. 내가 너무 기분이 좋거나 행복한 일이 있을 때 그걸 잊지 않고 싶어서 써. 예를 들어서, 친구랑 만났는데 그 친구와 나눈 대화, 이야기들이 너무 좋아서 오늘의 일기처럼 남기고 싶으면 쓰기도 하고, 나에게 글쓰기는 좀 일기 같은 형식 같아. 나는 이런 상황을 통해서 이런 인사이트를 얻었고 이렇게 하면 좋겠다와 같은 일기 형태. 그리고 보통 나는 생각나면 바로 쓰는 편이야, 차려놓고 무얼 구비해서 한다기보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 메모장에다가 정말 많이 써. 차로 이동하거나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메모장을 열어서 나의 마음을 기록하고, 길게 쓰는 게 어려운 상황에서는 키워드로 기록을 해.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그것에 대한 설명을 쭉 써내려 가.


S: 맞다, 언니가 최근은 아니고 얼마 전에 올렸던 인스타그램 포스팅의 문장 중에 정말 아름다웠던 문장이 있었는데, 찾아서 브런치에 올릴 때 추가해야지 (웃음).


Y: (웃음)

"결국 황홀했던 시간들의 여운으로 사는 삶일지도 모르겠다."


S: 저는, 저도 비슷해요. 저는 바로 지금 써야겠다 할 때는 인스타에 써요.


Y: 아! 근데 영어로 쓰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쉬움이 있더라고.


S: (웃음) 한국어로 쓰면 영어만 하는 친구들이 아쉬워해요.


Y: 그러면 한글로 쓰고 밑에 영어로 쓰는 건? (웃음)


S: Aㅏ...! (웃음)


Y: 세계 각국에 있는 친구들을 위해서!


S: 그냥 파파고 돌릴게요^^ (웃음)


Y: (웃음)  


S: (웃음) 인스타에 쓰고, 보통 새벽에, 그걸 한번 다듬어서 브런치에 올리죠. 저도 어떠한 감정이 들었을 때 많이 써요. 아 그리고 난 언니한테도 카톡을 되게 많이 하는 거 같아요. 그런 다음 언니한테 보낸 카톡을 가공해서 인스타에 올릴 때도 있고.


Y: 맞아 맞아.


S: 그래서 언니와의 카톡은 되게 보물창고 같은 느낌이에요.


Y: 그래서 예전에 우리가 얘기했었잖아, 우리의 대화를 책으로...!


S: 맞아요 (웃음).


Y: 그리고 나는, 이 책의 시작 질문부터 조금 충격이었어. 너의 인생을 세 줄로 표현한다면?


S: 아! 이거 저도 썼는데, 너무 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인 거 같아요. 그리고 지금 이 9시 몇 분의 감성과, 8시 몇 분, 7시 몇 분의 감성이 다 다를 거 같아요.


Y: 근데 예전에 내가 이런 이야기를 셀에서 한 적이 있는데, 죽어서 내 묘비명에 뭐라고 적혔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다른 친구들은 잘 기억이 안나는 데 보현이는 기억이 나. 자연스럽게 살다가, 자연스럽게 죽는다, 그런 거였는데... 되게 보현이스럽지 않아?


S: (끄덕) 너무 어렵다. 아 10초만 생각해볼게요...


[정적]


Y: 아니면 마지막에 나눌까? 좀 얘기하다 보면 정리될 수도 있어.


아무튼, 나는 여기서 공감이 갔던 게 결국 글쓰기라는 것 자체가 주는... 왜 글을 쓰냐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쓰기를 통해서 개개인이 살아온 궤적을 그린다는 그 맥락이 되게 인사이트가 있었어. 나라는 사람의 글을 통해서 한 사회의 중요한 재료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게 되게 와닿았어. 내가 예전에 어떤 뮤지컬을 보러 갔는데, 내용이 일제의 통치를 받는 억압이 있는 시대의 문학인들이 모여서 글을 쓰는데, 억압이 워낙 심하다 보니 글에 관해서도 제재가 많았는데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다음 세대가 볼 수 있는 게 글 밖에 없으니 지켜야 한다는 거였거든. 그걸 보면서 뭔가 우리에게 지금 남아있는 이야기들은 한 사람이 끝까지 지켜낸 스토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S: 정말 예술이 제일 오래 남는 거 같아요...


[SKIP]


S: 여기에 프린스턴 대학 요하네스 하우쇼퍼 교수의 '실패 이력서'가 나오는데 (학자로서 실패한 did not get 학위, 교수직, 장학금 등을 꼼꼼히 기록한 이력서), 언니는 언니의 실패 이력서를 쓴다면 3가지 정도 무엇을 쓰겠어요?


Y: 내 실패...


S: 실패 3가지랑, 언니가 예상하지 못한 성공 3가지.


Y: 안 그래도 적어보려고 했는데... 성공/실패 합쳐서 3가지를 얘기해볼게. 성공했던 건, 이건 내가 생각했을 때 성공이었는데 초등학교 때 너무 인상 깊은 책을 읽었는데 어려운 친구를 도와서 같이 친하게 지내자는 교훈이었어. 우리 반이 10명도 안 되는 시골학교였는데 반에 지체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거든. 근데 그 책을 읽고 이 친구가 생각이 난 거야. 그래서 이 친구를 위해서 반의 분위기를 바꿔주자, 해서 토요일마다 하는 학급회의에서 내가 반장으로서 우리 이 친구를 위해 도와주는 일을 해보자 -


S: 엄청나다.


Y: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모색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학급회의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이 친구를 위해서 무얼 해줄 수 있을지 울컥했던 기억이 나. 이 친구를 위해서 무언갈 해보려고 했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생생한 걸 보면, 나한테는 성공이었던 거 같아.


그리고 실패였지만 성공으로 얘기해볼 수 있는 거? 사업보고회를 빼먹을 수가 없지. 나는 거의 실패라고 봤어. 당일도 그랬고, 그냥 나한테 내 삶에 있어서 최악이었어. 거의 뭐 망했다고 볼 수 있지. 그래도 어쨌든 죽지 않고 살아서 해냈고, 퇴사 안 하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고,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나름 성공이었나? 싶어.


또 한 가지 실패는 유학이었어. 내가 시골에 살았었잖아. 그러다 도시로 유학을 갔어,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때 대전으로. 이모네 집에서 살면서 혼자 학교를 갔는데, 야심 차게 유학을 갔지만 결론적으로는 사촌동생하고 너무 싸웠어. 그래서 실패하고 다시 집으로 갔어. 지금 생각해보면 실패인데, 나는 돌아오면서 원래 홈타운으로 온 것에 대한 안도감도 있었고, 또 돌아오면서 엄마 아빠랑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그래서 그게 과연 실패였을까? 모르겠어.


우여곡절로 3개를 생각해봤습니다. 너는?


S: 뭔가, 한 달 전이었으면 내 삶이 실패라고 했을 거 같은데 (웃음) 지금은 그 파도는 지난 거 같고... 요즘 생각하는 실패는 연애가 너무 실패로 끝난 거 같아요. 어쨌든 헤어졌으니까. 그리고 그 이후로 누구를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게 실패로 끝난 거 같은 느낌이 요즘에 들더라고요. 또 A를 떠나왔을 때도 나는 실패라고 생각을 했고, 요번에 회사에서 그 난리를 겪었을 때도 되게,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실패라고 생각을 했고, 뭔가 내가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들을 실패라고 느끼는 거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는, 거기서 얻은 거 배운 거, 그런 것만 남는 거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필터링이 돼서 내가 성장한 기억들이 남는 것 같긴 해요. 그래서 내 실패 이력서를 봐도 자랑스러울 거 같아요.


Y: 오히려 그런 게 더 나의 삶의 처절한 노력 같은... 내가 성장할 수 있는데 진짜 큰 영향력을 끼친 거니까...


S: 뭔가 우리 다음 달에 보현이랑 같이 실패 이력서도 쓰고, 버킷 리스트도 쓰고, 밤새고 눈물바다 (웃음) -


Y: (웃음)


S: 제가 써온 질문들이 다 비슷한 느낌인데, 언니를 하나의 브랜드라고 가정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 3개?


저는, 약간 여기서 말한 이미지는 그런 이미지는 아니겠지만 생각해보면 뭔가 이렇게 소수의 사람들하고 있는 분위기에선 능글능글하기도 하고 화기애애하기도 하고 말을 이끌어갈 수 있는 모습 하나가 있는 것 같고, 도서관이든 회사든 엄해야 될 때는 엄해야 되고 칼 같아야 할 때는 칼 같을 수 있는 무서운 모습도 하나 있는 것 같고, 하나는 늦은 밤에 혼자 조용히 창문을 보면서 그냥 한없이 감성에 젖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는 어떻게 보면 고독하고 어떻게 보면 아련한 모습도 있는 것 같아요.


Y: 맞아, 나는 너의 모습이 그렇게 느껴져. 나는 우선... 대표적인 그런 걸로 봤을 때 그래도 활동적이면서 좀 책임감이 있는 그런 리더십이 있는 것 같고... 첫째이기도 하고 내 안에 모범이 돼야 한다는 그런 게 있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정서, 감정에 대해서 존중을 하려고 하는, 편안한 위로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또 다른 걸로는 본래의 것? 본질? 원래 정서는 시골에서 자랐으니까 도시를 좋아하긴 하지만 시골에서의 그냥 그 모습 그대로를 동경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환기가 되는...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것, 살펴보는 것도 좋아하고, 애잔함 그런 마음도 좀 있고... 그런 분위기? 그런 느낌이 있지 않나...


S: 맞아... 나는 언니의 첫 번째 모습이 제일 익숙한 거 같네요. 리더의 자리가 굉장히 잘 어울려요.


Y: <리더의 말 그릇>을 읽어보면 좀 더 -


S: (웃음)


Y: 나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될 거 같아 (웃음).


S: 책에서 정세랑 작가와의 인터뷰가 나왔는데, 이 분은 이제 기존에 없는 자기만의 색깔을 진하게 만들라는 얘기를 했어요. 언니는 언니만의 글은 어떤 건 거 같아요? 어떤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Y: 나도 그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글을 쓸 때 그 글이, 내 말이 법이다, 그런 힘은 빼야 된다고 생각해. 종종 자기 인사이트가 크게 와닿아서 그걸로 결정이 되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그런 경향이 있기도 한데, 그 글이 오로지 순도 100% 참된 말이라고 생각하면 위험한 거 같아. 이 얘기도 책에 나왔던 거 같은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수용을 하면서 내 이야기에도 힘을 빼는 게 필요하지 않은가 했어.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사람들이 내 글을 참고하는 정도, 어느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해. 예를 들어 진짜 맛있다고 해서 맛집을 갔는데 맛이 없으면 얼마나 배신감이 들어! (웃음) 그래서 내가 글을 쓸 때도 힘을 뺏으면 좋겠어.


S: 나는 또 언니만 쓸 수 있는 글 중에 하나가, 지금 얘기와는 좀 다르지만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 마음, 그런 것들은... 사실 모든 사람이 다 아버지가 있잖아요? 또 아버지가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겪으시는 게 되게 흔할 거 아니에요. 흔할 텐데도 그거는 뭔가 되게, 두고두고 언니한테 힘의 원천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언니가 살아가면서 하나씩 꺼내쓸 수 있는 힘을 제공할 수 있는 보물상자가 되지 않을까? 거기에서 언니의 생각이나 마음들이 언니의 글에 나타날 때... 전 무언갈 읽다가 가끔씩 '아, 이 문장을 내가 썼어야 하는데' 싶은 순간들이 있는데, 언니가 그때 되게 오랜만에 올렸던 인스타그램 포스팅의 문장이 너무, 너무 아름다웠어. 그때 그 포스팅을 보면서 '아, 이거는 언니만 쓸 수 있는 색깔인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언니한테도 힘이 되는 삶의 자양분이 될 거 같아요.


Y: 근데 진짜 이거와 별개로, 아빠와 관계가 나빴던 것도 아니고 깊었던 것도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아빠에 대한 애정이 엄마보단 확실히 더 했던 거 같아. 엄마에 대해선 고마움이 있었다면 아빠는 측은함?


S: 그것도 되게 신기한 거 같아요. 보통 엄마한테 느끼잖아요.


Y: 그렇지? 근데 나는 아빠뿐만이 아니라 아빠 세대, 아버지들에 대해 그렇게 느낀 거 같아. 아버지들이 퇴근하고 나서 술 한잔 기울이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할까 어렸을 때부터 생각이 들었어. 그들이 진짜 위로 얻는 곳은 어디일까?


S: 그게 어떻게 그 나이에 공감이 갔을까요?


Y: 그러게, 나는 그래서 친구네 아버님들하고도 되게 잘 지낸 거 같아. 우리 부사장님 같은 경우도 되게 지긋한 연배의 아저씨라서 되게 측은하다고 해야 되나... 그냥 어렸을 때부터 탑재되어 있던 마음인가 보다.


S: 난 그래서 그 마음이 너무 신기한 거 같아요. 분명히 언니랑 아버지랑의 관계는 세상에 하나뿐인 관계이고, 동생이랑 아버지의 관계도 하나뿐인 관계이고... 그게 되게, 나는 두고두고 삶의 힘이자 자양분이 될 거 같아요. 이미 그렇겠죠? 그게 뭔가 되게 언니를 부서지게도 했지만, 언니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엔 그 같은 원천에서 나올 거 같아요. 보통 생각보다 우리 나이가 되면 나를 무너뜨리고 나를 세우는 게 같은 요소나 원인일 때가 많은 거 같아요. 무너뜨리고, 다시 일으켜 세우고... 울리기도 하고, 웃게도 하고.


저는 또 재밌었던 게, 이 사람이 쓴 질문 중에 현재에 내가 미래의 나를 알고 있을 때 현재의 나는 여전히 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썼네요. 지금 회사에 오기 전에, 지금 연인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이제 2021년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이 상태에서 시간을 돌렸어 -


Y: 안다면 난 다른 선택을 할 거 같아.


S: 진짜?


Y: 다른 직장에 가보고 싶어. 어차피 선택이 주어진 거니까 다른 선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그냥 그런 거 같아. 예를 들어서 너랑 먹었던 우동이 너무 맛있었어. 똑같이 오빠를 데리고 가서 먹었는데 오빠가 생각보다 별로라는 반응을 보이는 거야. 내가 똑같은 곳에 가더라도 똑같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 모른다는 거지. 그래서 선택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또 다른 선택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S: 맞아. 그러면 언니 그런 것도 있을 거 아니에요, 다시 태어나도 무조건 이건 다시 한다. 1%의 후회도 없다, 이런. 무조건 똑같이 반복하겠다 하는...


Y: 난 우리 대학교 때. 그냥 그 학교가 나한테 정말 크게 성장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내 영혼이 정말 다르게 되고, 그래서 선택에 후회가 없었지 않나... 똑같이 반복하지 않을까. 너는?


S: 다시 태어나도 별이를 키울 거 같아요.


Y: ㅠㅠ


S: 다시 태어나도 별이를 키우고 싶고 -


Y: ㅠㅠ어흑... 왜?


S: 저의 베스트 프렌드예요. 그녀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지 않지만 -


Y: (웃음)


S: 아, 그리고 2016년 1월에, 다시 태어나도 2016년 1월에 언니 셀로 갈 거예요.


Y: ㅠㅠㅠㅠ


S: 2016년 1월에 언니 셀로 가기로 한건, 물론 그게 작은 결정은 아니고 큰 결정이긴 했지만, 그 결정으로 인해 내 삶이 그 이후에 너무 많이 바뀌었어요. 그냥 단순히 새로운 셀에 간 게 아니라 내 인생이... 그때 안 옮겼으면 내가 지금 살아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결정이에요. 퇴사를 하고 반년 정도 지나서 분노도 없어지고, 피로도 풀리고, 그냥 되게 허무하던 시절에... 그 선택 때문에 그 이후에 모든 게 바뀌었던 거죠. 언니도 만나고, 보현이도 만나고, 블루 레모네이드도 만들고, 내가 어느 나라에 나갔다 오던지 항상 여기 있어줬고, 언니도 보현이도 너무 삶의 큰 존재들이 됐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도 자신 있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인 거 같아요.


Y: 그럼 나도 다시.


S: 늦었습니다 (웃음).


Y: (웃음) 내 삶에도 되게 큰 영향력을 끼쳤어. 그 당시 나에게도 되게 큰 자랑, 거의 폴인럽이었어. 그 한주에 모여서 셀모임 하는 게 나에게 너무 큰 위로였고, 나는 너희들의 얘기도 너무 재밌고, 공감되고, 대단하고, 얘네가 리더해야 되는 게 아닌가?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되게 리더라고 챙겨줬던 시간들이 너무 고마웠고. 단순히 우리가 그냥 와서 떠들고 가는 게 아니었던 거 같아. 너의 이야기에 숟가락을 얹어봤어 (웃음).


이것만큼은 하겠다 결정이 또 있나?


S: 근데 진짜 언니 셀로 옮긴 건 제 인생 3대 결정에 들어가는... 그건 되게 작은 결정 같아 보일지 몰라도, 그게 그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친 게 너무 컸고, 되게 직관적으로는 만약에 그때 언니랑 보현이를 못 만났으면 지금의 나는 너무 다른 나일 거 같고. 지금 그 5-6년 동안 축적된 언니와 보현이의 의미는 쉽게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을 거 같은 의미라서. 물론 안 만났으면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났겠죠. 근데 되게 대체하기 힘들었을 거 같단 생각은 들어요.


Y: 방금 든 생각인데 너는 내게 농축된 거 같은, 한약 같은, (웃음) 농축액이야.


S: (웃음) 물에 좀 타야 돼.


Y: 갑자기 서로에 대한 고백 시간이 (웃음).


[SKIP]


Y: 나는 뭔가 나에게 되게 인상 깊었던 글귀들을 적었어. 나는 이전에도 너한테 얘기했지만 내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걸 그렇게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고 했잖아. 회사에서도 내가 좋고 싫은 것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고, 또 상대방이 나한테 그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곤 해. 기분이 안 좋은걸 소리를 낸다거나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거슬리더라고.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감정에 대한 해소가 글로 드러내는 사람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친구를 만나서 얘기하기보다 일기를 쓰니까.


S: 맞아요. 저는 기억을 잘하는 편인데도 나중에 예전 글을 읽었을 때 내가 잊고 있었던 게 있기도 하고 그래서 또 글을 쓰는 게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옛날 글을 보고 신기한 마음이 들 때가, 사실 내가 쓴 글을 읽을 때보다 언니한테 보낸 카톡을 다시 읽을 때가 제일 그런 마음이 많이 들어. 뭔가, 어떻게 보면 제가 어딘가에 올리는 건 나름 그래도 가공되는 건데, 여긴 날것 (웃음). 그래서 그 날것을 읽으면서 오히려 더 생생하게 생각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내가 언니한테 보낸 카톡중에 두고두고, 그래도 몇 달에 한 번씩 보는 것 중에 일본에 있었을 때 한선생하고 만나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언니한테 어제 한선생을 만나서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보낸 카톡중에 되게 좋아하는 글이 있는데, 그걸 나중에 가공해서 브런치에도 올렸고 라디오에도 보냈고 -


Y: 맞아, (라디오에서 받은 선물로) 우리 그때 쌀국수 먹었잖아.


S: (웃음) 맞아요. 그래서 뭔가 되게 글은 정말 나의 한 조각 한 조각을 남기는 느낌이 들어요.


Y: 그 글을 쓰는 게 너나 나에게는 되게 좋은 영향인 거잖아. 여기서도 작가가 글을 통해서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자기 어머님한테 추천하잖아. 너는 만약에 주위에 누구에게 글을 써보겠냐고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야?


S: 우와... 글을 써보라고 권하고 싶은 사람... 저는... 별이? (웃음)


Y: 상상도 못했다 (웃음).


S: 뭔가, 그렇게라도 제일 생각이 궁금하고 -


Y: 진심이었는데? (웃음)


S: (웃음) 언니는요?


Y: 난 제일 먼저 생각한 건 내 동생들, 동생들한테 권해주고 싶어. 나와 같이 그들에게도 아빠의 스토리가 있을 거고, 동생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나와 똑같은 일을 겪었으니... 내 동생들도 잘 기록하면 좋겠다. 나는 대외적으로 그런 걸 블로그에 많이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또 뭔가 천국에서 편지를 보내줄 수 있다면 아빠가 나한테 보내줬으면 좋겠다... 편지를 한번 받아보고 싶어.


S: 달러구트 나눌 때도 그런 얘기 했었던 거 같아요. 아버지에게 보내는 꿈, 아버지가 나에게 보내는 꿈... 제가 지금 2를 읽고 있거든요.


Y: 어때? 비슷해?


S: 비슷한데, 1에 심어놓은 떡밥들을 잘 회수하고 있고 생각지도 못한 게 많았어요.


Y: 좀 걸으면서 얘기할까?


[한강을 따라 걸어가는 길]


S: 저는 이 책에 나오는 고수리 작가를 좋아하거든요. 근데 왜 고수리 작가가 한 말 중에, 자기한테 가장 힘들었던 경험에 대해서 글을 쓰라고 추천하는 게 있는데, 손현 작가가 이 책의 마지막에 풀 거라고 해서 되게 궁금했거든요. 이 사람한테 있었던 힘든 일을 마지막 챕터에서 풀어갈 때... 난 정말 예상을 못했어요. 예상을 못했어서 그게 너무, 뭔가 마음이... 아린 거 같이... 폭풍 오열을 하진 않았지만 그 먹먹한 슬픔이 너무... 느껴지는 사건이었고... 근데 결국엔 회복을 하잖아요. 그래서 이 책을 되게, 기분 좋고 아련하게 덮었던 거 같아요.


언니는 언니가 만약에 고수리 작가의 조언을 따라서 제일 힘들었던 것에 대해 써야 한다면 무엇에 대해 쓸 거 같아요?


Y: 너는? 제건 답이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웃음).


S: 제 것도 답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웃음).


Y: 그렇긴 합니다 (웃음).


S: 그건 있어요. 뭔가, 그 힘들었던 게 진짜 힘들었던 게 아니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혼자 외국에 나가서 외로웠던 것도 그렇고, A도 그렇고... 이제 29를 마무리하는 단계여서 그런지 몰라도 힘들었던 기억이라도 내가 더 이상 그로 인해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거기서 마음이 무너지고 찢어졌던 것들이 참 아이러니하게 따뜻한 기억으로 변해간 거 같기도 해요...


Y: 아니면 뭔가, 이곳에서의 삶 속에서... 주문을 거는 거 아닐까? 힘들지만 괜찮아. 할 수 있어. 버틸 수 있어.


S: 아! 아니야. 난 아닌 거 같아. 왜냐하면 난 힘들 때 그런 주문을 외우지 않아. 난 그냥 힘들면 '힘들어 죽겠네'하는... (웃음) 한선생은 할 수 있어! 좋은 일이 올 거야! 하지만 -


Y: 그의 주문이 (웃음) 너에게!


S: 근데, 나는 그게 주문이 아닌 거 같은 게, 29의 지금 3/4이 지나서야 오늘 언니랑 같이 만나서 짬뽕 짜장면 탕수육을 먹고 한강에 왔다? 되게 그냥 한 날, 한 저녁 시간이고 어디 해외여행을 간 것도 아닌데 여기에서 내가 느끼는 행복이 되게 엄청난 행복이라는 걸 29의 3/4이 넘어가는 지점부터 깨닫기 시작한 거 같아요. 요즘에 주말마다 공원에 가거든요 별이 산책시키러. 근데 나가서 차들 지나가는 거 보면서 나무 냄새 맡고 풀냄새 맡고 그냥 걷는 게... 이 시간이 보상? 소소한 게 더 이상 소소하지 않은 것 같은. 그래서 삶을 돌아봤을 때 너무 괴로웠던 것들도... 그냥 언젠가... 언니랑 보내는 이 한 저녁, 이걸 위해서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거 같은...


그냥 손가락 3개 줄까요? 뭔가 굉장히 (웃음) -


Y: (웃음)


S: 나이 들고 나서 그래요 (웃음). 주문은 아니야. 한선생은 맞을 수 있는데, 한선생은 100% 주문. 근데 저는 너무 부정적인 사람이라서 나는 주문을 외울 수가 없어. 오히려 난 '난 글렀어' 이런 주문을 외우는터라...


Y: 근데 그건 있는 거 같아. 나는 되게 힘든 시간이었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을 수 있겠다. 내가 충분히 힘들어했었나? 그 당시에 슬퍼할 수 있는 틈도 없었고, 해야 할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그게 너무 힘들었어, 그렇게 해야만 하는 현실. 나는 지금 이 사회에서 이 역할을 해야 하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애처롭고 아련하기도 했고. 그래서 오히려 내가 충분히 힘들어했는가? 잘 모르겠어.


S: 지금은 어떤 거 같아요? 그 이후에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었던 거 같아요, 일 년 동안?


Y: 나는 꿈을 많이 꾸기도 했는데, 깨고 나면 울었던 경우가 많았어. 예를 들면 집에 불이 났어, 그래서 아빠를 찾으면 맥가이버처럼 튀어나와서 해결을 해주셨는데 아빠! 하고 불렀는데 없는 거야. 아빠가 안 계신 그 분위기, 감정, 상황, 그게 너무 슬픈 거야. 그래서 막 펑펑 울었어. 그런 비슷한 맥락의 꿈을 여러 번 꿨어.


S: 뭔가 지금 언니가 풀어내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어떤 온도, 어떤 색깔일지 궁금해요. 그게 되게, 나는 손현님의 마지막 이야기가, 그게 너무... 참 잔잔하게 여운이 남았던 게 처음에 힘들었던 걸 적어 내려갈 땐 진짜 무채색의 느낌, 진짜 묘사가 회색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걸 다시 아내하고 극복해나갈 때 다시 색깔이 더해지는 느낌? 거기서 글을 되게 잘 쓴다 느꼈어요. 엔지니어스럽지 않잖아요. 되게 섬세한 글쓰기에 많이 놀랐고... 근데 나는 그때 언니가 인스타에 올린 게, 그 섬세함에서 조금 더 엣지가 있는 것 같아요. 뭔가, 언니는 되게 잘 갈린 삼각형이 됐든 오각형이 됐든 팔각형이 됐든 느낌이 있었어요. 뭔가 아버지라는 소재가... 정말 그런 거 같아요. 나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나를 세우기도 하는 게 되어 가는 거 같아요.


[SKIP]


S: 마무리 질문입니다. 가장 좋았던 문장을 말해주세요.


Y: 저는

"기록과 이야기는 우리 삶보다 생명력이 길다. 기록과 이야기는 오래도록 남아 당시 모습을 드러낸다."

기록 자체에 대한 것과,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


S: 저는,

"모든 글은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되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기억을 재구성한다고 생각해보진 않았고 그냥 기록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재구성하는 거죠 나의 관점에서. 그래서 되게, 왜곡되는 것이기도 하면서도 또 그때 나만의 관점이 담기기도 하고, 내가 오늘 이 순간들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우리가 30년 후에 이 글들을 읽으면 새록새록 떠오르겠죠.


Y: 우리의 브런치 내용을 몇십 년 후에 돌아보면 되게 재밌을 거 같기도 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을 가감 없이 얘기하고,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S: 진짜 재산이죠, 진짜 재산... 근데 약간 이걸 하면서, 시작할 때 난 이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하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것 중에 하나가 언니랑 내 안에 우리 안에 있는 마음들을 끄집어내는 게 하나의 목적이 된 거 같아요. 그게 배출이 될 수도 있고 해소가 될 수도 있지만, 나 자신을 깨닫고 정리하게 되는 걸 수도 있고...


[EXTRA]


"'다른 친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걸 그렇게 글로 쓰고 싶어서 못 견디겠대.'
'신기하네. 그래서 뭐라 그랬어?'
'뭐라 하긴. 평생 쓰는 사람으로 남으라고 했지. 그게 친구에게도 행복한 길인 것 같아.'"


"분명 글쓰기는 하고 싶은 일이었고, 하고 싶은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선 잘하는 일로 만들어야 했다."


"성장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이룬 예상 밖의 성공을 발견해서 계속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성공의 증거를 무시한다."
- 피터 드러커,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 정신>


"모두가 살아온 과정은 고유의 궤적을 그린다."


"삶이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듯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돌고 돌아 다시 본질로 회귀하는 것."
- 최태혁 편집장


"'왜 글을 쓰세요?'라고 물을 때 자신만의 답이 있어야겠죠.'"


"그때의 기록으로 더 나은 오늘을 살려고 노력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수현과 함께하며 그 어느 때보다 삶이 감정적으로 깊어지고 풍성해졌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부모의 사랑은 아이들이 더우면 걷어차고,
필요할 땐 언제고 끌어당겨 덮을 수 있는 이불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 밤도 아기는 이불속이 덥다고 칭얼댄다.
그가 잠들 무렵, 조용히 그 이불을 다시 덮어준다. 나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커버 사진

"Summertime sadness" https://unsplash.com/photos/FLigbWjCZ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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