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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Aug 28. 2021

마녀식당으로 오세요, 구상희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마녀식당으로 오시길


모임, 일곱 번째

210819, 처음 독서모임을 시작한 곳에서

※가공되지 않은 raw data 그대로입니다



[대화 시작]


S: 어떠셨습니까?


Y: 저는 우선 엄청 슉슉 읽혔고, 요즘 현대 정서와 굉장히 잘 어울리고 그렇게 이해가 쉬운 소설이었습니다. 달러구트는 사실상 외국 느낌? 한국 소설이긴 했지만 외국 세계관을 토대로 만들어진 느낌이었어서 확실히 그 책도 매력이 있지만 이것도 정말 좋았어.


S: 저도 되게 재밌게 읽었어요. 근데 이 책을 선정할까 말까 고민했던 이유는, 읽으면서 질문보다는 찡했던 구절이 더 많았어서 -


Y: 음, 맞아. 질문은 그냥 딱 하나지 -


S: 나 뭔지 알 거 같아 (웃음). 그래서 평소보다 제가 공책에 적은 건 더 적어서 조금 걱정이 됐는데, 그래도 심리학 책을 한 권 읽고 변화로 소설이 재밌지 않을까 해서 뽑아봤어요.


Y: 책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S: 어렵다. 언니는요?


Y: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선물? 스토리들은 엄청 다양하고, 악한 건 너무 악하고, 진짜 몰입도가 대박이었어. 그 최악의 장면들의 글이 너무 잘 읽히는 거야, 내가 그 상황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녀의 선물?


[SKIP]


Y: 처음으로 나온 게 그 여자분이었어, 선미.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다시 나를 사랑하게 해 달라는... 그래서 선미가 대가로 지불했던 게 뭐였지?


S: 목소리 아니에요?


Y: 아, 맞아! 난 병원에서 만난 그 남자가 너무 멋있는 거야. 생각지도 못했는데 예전에 꽃을 뒀던... 완전히 잊고 있었어. 그 의사가 내가 그 꽃을 놓았는데 봤냐고 했을 때 거기서 대박! 너무 멋있다 했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게 흔히들 우리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거지만, 진짜 인연은 따로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거 같아. 인연은 인연이구나 하는 게 결국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어지고, 내가 꼭 만나야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인연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어.


S: (웃음) 어떻게, 지금 돌려 깎기 하는 거 아니죠?


Y: (웃음) 아니야, 아니야. 돌려 깎기가 아니라 (웃음) 진짜 그 부분에서 느낀 거였어. 흔히들 우리는 응원하잖아, 이 사람이 원래 사람이랑 잘 만나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게 딱 좋은 거 같은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인연이 있었다니. 근데 꼭 이런 사람들이 오래 만나다가, 혹은 오래 노력하는 커플보다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만나서 결혼하는 커플들이 더 많은 거 같아.


S: 저는 선미 이야기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두 개 중에 하나가, 하나는 결국에 소원을 그렇게 포기하는 거잖아요, 더 이상 그 남자를 원하지 않는다고. 자기의 목소리를 대가로 줄만큼 가장 바랐던 소원이 결국에는 시간이 지나서 의미가 없어졌구나를 느끼는 과정이 되게... 인생의 수순 같았어요. 우리가 지금은 너무나 간절하게 원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그럴만한 게 아니었다고 느끼는 것들이 있지 않은지.


그리고 또 다른 건, 길용이는 사랑을 두고 누나가 절 좋아하게 해 주세요 라고 빌지 않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언니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Y: 뭔가 마녀식당을 읽은 한 그렇게 소원을 못 빌 거 같아. 어쨌든 여기서 말하는 것 중 삶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해피엔딩이 꼭 해피엔딩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내가 그 사람의 사랑을 얻는다고 해서 끝까지 행복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반문이 생기는 거야. 아예 20대 초반이었으면 그렇게 해달라고 했을 거 같은데 -


S: 이 나이에는 -


Y: 이 나이에는, 어쩌면 진이 마지막에 탐의 행복한 가정을 소원으로 빌었던 것처럼, 어쩌면 나도 그와 나의 성사? 보다는 그와 내가 편안할 수 있는 다른 요소를 빌지 않을까 싶어. 예를 들어 길용이처럼 생각은 못할 거 같지만 서로가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래도 끝까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친구?


S: 저도 그렇게 해서 얻는다 한들 그게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외부의 요인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는 마음이라면, 그 사람이 내 옆에 있는다고 해서 좋을까? 그런 사람을 굳이 곁에 잡아둘 필요가 있나?


Y: 그리고 선미가 먹었던 음식이 핫핫 초콜릿이었나? 그러면서 해줬던 말이 사랑은 정말 황홀하지만 고통도 따른다는 거였는데 너무 공감했어. 최근에 나도 들었던 생각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랑보다 현실적인 건 희생, 헌신, 이런 키워드가 더 와닿게 된 거 같아. 그래서 그 말이 너무 와닿았어. 너무 TV에서 미화된 게 아닌가...  남녀와의 사랑도 그렇지만, 그냥 그 사랑이라는 의미로서 확장되었을 때 내가 시간을 쓰는 것도 투자고, 돈을 쓰는 것도 투자고, 남이 봤을 때 왜 너는 그렇게 그 사람에게 투자를 하냐고 볼 수 있는데, 또 나의 입장에선 그게 그렇게 느껴지지 않으니 하는 거 같아. 나는 그게 헌신이라고 안 느껴지는데, 나는 그게 사랑인데? 신기하네.


S: 이번 주에 제가 읽었던 소설에도 그런 비슷한 게 있었어요. 내가 조금 무리해서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


Y: 그러니까, 맞아.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도 그런 걸 거 같고, 부모님 입장에선 재고 따져서 자식을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 나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어떻게 보면 그게 여기에서 말하는 대가일 수도 있지.


S: 맞는 거 같아요... 자기의 삶을 대가로 내는 거니까. 젊음? 인생의 20, 30년을 자식을 위해 바치는 거니까... 심오하네요. 여기서는 왜 대가들이 되게 징그럽잖아요, 손가락 같이. 근데 생각해보니 부모님의 사랑은 30년이라는 젊음과 세월을 대가로 하는 것도 손가락 3개 못지않은...


Y: 손가락 3개가... 나아... (웃음)


[SKIP]


S: 여기 나오는 말 중에 복수란 나를 향한 화살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있었는데, 언니는 복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Y: 나는 살면서 복수를 이 갈고 해보고 싶다고 느껴본 적은 없는데, 복수는 아닌데 뭔가 저 사람도 똑같이 당했으면 좋겠다 싶었던 적은 있어. 그게 복순가?


S: 대신에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은 없잖아요.


Y: 응, 내가 하고 싶진 않고 저 사람도 당했으면 좋겠다고 느꼈던 적은 있어. 누군가 부모님에게 해를 끼쳤어, 내가 그 사람에게 뭐라고 한다고 한들 그 시절 나는 꼬맹이었을 뿐이고...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복수는 그 사람이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였어. 그 사람도 뼈저리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양심이 깨우쳐졌으면 좋겠다...


S: 그게 언니한테 화살로 돌아온 적이 있어요? 통쾌함보다는 그 이후에 어떻게 해서 오히려 언니의 발목을 잡거나 마음의 짐이 되거나...


Y: 내 마음의 짐까진 아니고, 나한테 화살이었다기보다는 그게 실제로 이루어진 걸로 인해서 나중엔 좀... 측은함? 결국 자기 덫에 자기가 덜려 불쌍한 느낌. 나한테까지 그게 화살로 와닿진 않았어.


너는?


S: 저는 언니보다 많아요, 그런 복수를 원하는 마음이나 대상이 더 많았던 거 같아요. 내 손으로 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고... 진짜, 진짜 누가 싫었을 때는, 정말 최악으로 치달을 때는 사실 내가 그 사람한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뭔가, 나 자신을 해침으로 그 사람한테 고통을 줘야겠다, 그런 생각들을 한적은 있죠. 그래서 왜 뉴스에 유명한 사람들이 이 사람한테 이러이러한 일을 당했다 유서에 쓰고 삶을 마감하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거야말로 정말 복수의 대가를 자기의 목숨으로 치르는 건데,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 거 같아요. 그건 정말 자기 자신한테도 화살로 꽂히는 거 같아요... 물론 최고의 복수는 잊고 사는 거지만, 그게 쉽지는 않잖아요?


Y: 그렇지.


S: 그래서 무언가... 마녀식당에 온 사람 중 복수를 하고 싶어 온 사람들은 짠하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소중한 소원을 복수하기 위해 쓰는 건... 진이는 그랬잖아요, 엄마 친구 망했으면 좋겠다 였으니까. 거기에 쓰기는 아까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Y: 그리고 그 끝을 봤다는 게 트라우마로 남잖아. 또 길용이한테 설명해줬다는 게 엄청... 생각지 못한 진이의 사려 깊음?


S: 그만큼 생각할 수 있다는 건 본인이 그만큼 성장했단 거겠죠?


Y: 응, 그리고 나는 그분도 되게 인상 깊었어, 그 할머니.


S: 아들?


Y: 응, 아들 장가보내고 싶어 하신 할머니. 뭔가 그 아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기억을 대가로 주셨으니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볼 때... 아들은 조금씩 깨달아 갔는데 반면에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볼 때 뭔가 마음이 짠했어. 우리 엄마랑 투영이 되는 건 아닌데, 그냥 너무 있을법한 이야기잖아. 우리나라, 우리 시대, 그리고 내 친구 어딘가 누군가의 이야기일 수 있는 그런 흔한 이야기일 거 같아서 정말 너무 힘들겠다...


근데 그 아들의 입장도 너무 이해가 갔어. 자기는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을 벌면 벌수록 엄마는 악화되는데, 자기는 돈을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머니랑 함께 있는 게 중요하구나를 깨닫는 거 조차도 너무 아련하고 측은하고... 맞아... 그게 맞는데... 우리는 대부분 다 그 아들 같은 선택을 하는 거 같아. 경제적인 게 중요하고, 엄마를 누군가한테 맡겨두고 나는 돈을 벌어야 하고. 근데 사실상 어머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 시간을 어머니 옆에서 지켜드리는 게 더 옳은 건데...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봤어. 회사는 다니는데, 아니 나는 진짜 열심히 사는데, 나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못 보고, 내가 힘들게 여기는 사람들만 주구장창 매일 보는 게 누구 좋자고 하는 일이며, 누굴 위한 삶이며, 이렇게 살아내는 게 옳을까? 이런 생각들. 사실상 그거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지금도 모르겠어.


S: 그건 너무 어려운 문제인 거 같아요.


Y: 그렇지? 근데 어려운 문제인데 뭔가 답이 정해져 있어. 이 책에서도 결국 그 아들이 연옥이를 만나서 장가를 들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처럼,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바라는 거 같아. 엄마도 흔히 하는 얘기가, 나는 이제 바라는 거 없다, 너희들 좋은 사람 만나서 좋은 가정 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게 엄마 소원이고 꿈이지. 근데 그게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은 절대 아닌 거 같아. 엄마는 그거면 충분해라는 게, 이 책에 나오는 할머니도 기억을 잃어가지만 아들이 장가가는 걸 보고 해피엔딩을 이루는 것처럼...


S: 근데 일반적으로 먼저 떠나는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혼자 두고 떠나는 거랑 자식이 누구랑 함께 있는 상황에서 떠나는 건 굉장히 다른 마음일 거 같아요. 갈 때는 혼자더라도, 있는 동안은 함께이길 바라는...


Y: 뭔가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도 있어. 아빠가 마지막으로 봤던 남자친구가 오빠니까, 내가 오빠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맞겠다는 생각? 그냥 뭔가 아빠와 같이 암묵적으로 한 약속 같아. 아빠도 봤고, 아빠도 좋은 남자라고 했던 이야기가... 정윤아, 이 남자랑 행복하게 잘 살아, 라고 하신 거 같아. 아빠한테도 그랬고 너한테도 분명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걸 보여주기로 약속했으니까, 그게 나의 소원이지 나도.


S: 여기서 윤기가 나오는데, 이 친구가 손가락을 잃어버린 사람이거든요.

"윤기는 그녀가 무사하다는 것만으로도 손가락을 잃은 대가는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을 잃어버리고 여자를 지키잖아요. 언니는 살면서 언니보다 남이 더 소중했던 순간이 있어요? 나의 손가락을 희생할 값어치가 있었다 할 만큼?


Y: 음... 있었던 거 같아. 나는 내 손가락에 대해 되게 관대한 편이야. 내 손가락을 그렇게 사리지 않는 편이야. 어렸을 때도 나는 장기들을 기증하는 걸 꿈꿨거든. 나라는 한 사람을 통해 누군가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면 나를 사리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해봤어. 우리 가족 중에 누군가가 간이라던지 장기에 결함이 있어 기증이 필요하다고 하면 나는 기꺼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불현듯 떠올랐던 건 대학교 때인데, 우리가 엄청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어. 그때 친구들하고 우리가 무얼 하면 좋을까? 너무 감사한데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어. 그래서 당시에 그럼 우리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세바람)을 해보자, 왜냐하면 그때 목사님들이 오셔서 많이 하셨던 기도가 다음 세대에 관한 거였거든. 그래서 우리 밑에 학년 친구들을 위해 MT를 기획했어. 선배들이 밖에서 원을 그리고, 후배들은 그 원 안에 서서 우리가 손을 얹고 기도를 해줬어. 그냥 나를 포함한 친구들 4명이 해볼까 해서 만들어낸 모임에 기름 부으심이 있었던 것 같아. 근데 그때 비로소 느꼈어, 내가,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게 이렇게 되게 복되고 기쁘고 행복한 일이구나. 그때 제일 크게 느꼈던 거 같아. 기획할 때 매일 모여서 생각하고,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할까, 어떤 찬양을 부를까, 매일 고민을 하면서... 그게 우리의 손가락이었어.


S: 맞아요, 그런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남을 위해 나의 무언갈 헌신했는데 그게 희생같이 느껴지지 않고, 회수하지 못하는 투자여도 괜찮고, 정말 깊은 데서 올라오는 그런 게...


Y: 너는? 난 뭔가 예상이 가는데? (웃음)


S: 난 언니가 예상이 가는 게 뭔지 예상이 가는데? (웃음) 저도 A에서 일했을 때가 제일 그랬던 거 같아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때 그랬는진 모르겠어요. 근데 거기서 직원들이 성장하는 걸 보는 게 되게 좋았어요. 대신에 그 시간은 그만큼 저의 꿈을 포기했던 시간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되게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너네가 잘되는 걸로 됐어, 그랬어요. 어떻게 그런 전우애를 품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시 저의 삶을 살고 있잖아요. 근데 그때랑 비교해보면, 그때가 훨씬 값어치가 있었어요. 물론 제가 지금 저의 삶을 살고 있지만 하고 싶었던 글쓰기가 아닌 그냥 회사원이기 때문에 별로 마음이 안 가는 걸 수도 있죠. 그건 모르겠는 요소긴 하지만, A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지금의 삶이 행복하진 않아요. 저한테는 그때 청춘이자 젊음이었으니, 손가락 3개 정도 되겠죠?


Y: 더할 수도 있지.


S: 다, 다다다, 다섯 개? (웃음)


Y: (웃음) 나는 진의 스토리도 너무 파란만장했어. 탐이라는 자식은 최악이었는데, 근데 생각보다 진도 이 남자가 나쁜 남자라는 걸 알아, 이 남자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 들지만 좋은 거야. 너라면 내가 너무 사랑하는데 너무 아닌 사람 있잖아, 계속 만날 수 있어?


S: 있어.


Y: (뜨헉)


S: (웃음) 이 표정은 찍어야 해. 근데, 그게 약간 강도에 따라 다를 거 같아. 예를 들어 폭력이야, 그건 용인 안 할 거 같아요.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서까지 만나진 않겠지만, 그 외에 간당간당한 것들 있잖아요. 그렇게 딱, 경찰서에서 판가름할 수 없는 것들?


Y: 맞아, 나도 딱 잡아서 '아니 안 만나'라고는 말을 못 하겠어. 내 주위에도 생각보다 많더라고. 왜?라고는 하지만, 그 왜를 설명하긴 애매하고, 그 무엇보다 만나면 좋으니까,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 만남이 이어져가는 거 같아. 근데 진도 결혼식장에서 탐을 안 만났으면 계속 탐을 만났을 거 같아. 그냥 몰랐다면, 아 오히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힘드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아.


[SKIP]


S: 진이 얘기 나온 김에, 진과 엄마의 대화에서 엄마의 그런 대사가 있어요. 너를 위해서라면 그놈을 끌어안고 불구덩이에 뛰어들 수도 있다고... 언니가 부모님한테 들었던 제일 든든했던 말은 뭐예요?

"천하의 나쁜 놈일세, 우리 딸을 속상하게 하고. 말만 해. 엄마는 우리 딸 속상하게 하는 놈은 백번이든 죽여줄 수 있어. 너를 위해서라면 엄마는 그놈 끌어안고 불구덩이에도 떨어질 수 있는데, 뭔들 못 하겠어."


Y: 든든하면서 되게 마음 아팠던 말은... "수고했어". 아빠랑 마지막으로 했던 카톡. 병원 들어가시기 전에, 아빠가 많이 아프시면서 아빠가 다니시는 병원을 옮겨보자고 했어. 갑자기 악화되니까 병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새로운 병원을 알아보자고 했는데, 특히나 병세가 악화된 환자들은 웬만해서 안 받으려고 하더라고. 병원을 옮기는 절차도 굉장히 까다로웠어. 담당교수한테 가서 사인도 받아야 하고, 근데 담당교수랑 대면하는 것조차 이미 하늘의 별따기였고 되게 번거로운 일이 많은 거야. 그래서 아빠한테 다른 병원 가려면 이런 이런 서류가 필요하대, 가서 물어보자 하고 나는 이제 서류가 뭐가 필요한지를 계속 알아보고 있었거든.


그런데 아빠가 그 상황들을 다 알고 나서 "수고했다, 찾아보느라. 그런데 조금 번거로워지니 다음으로 미뤄보자"라고 하셨어. 그러셨는데 그다음이 없었던 거지.


그냥 아빠가... 아빠는 성향상 나한테 그런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 같아. 굳이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아빠는 생각하셨을 거 같아. 그런데 나도 되게 죄송했던 게, 그 당시 나는 뭐가 그렇게 삐뚤어졌었는지 그런 게 되게 번거롭게 느껴졌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괘씸하지. 그냥 그 자질구레한 것들을 챙겨야 하는 게 귀찮았던 거지. 나는 티 안 낸다고 했지만 아빠는 그 뉘앙스를 알았을 수도 있어. 거기에 아빠 성향상 누군가를 번거롭게 하실 분이 아니라... 그렇게 아빠가 마지막으로 해주셨던 카톡? 수고했어, 그 말이 되게 든든했어.


그 수고라는 단어 안에 나의 모든 부담, 책임감, 알게 모르게 애썼던 모든 것들을 통용하는, 인정해주는, 살펴주는, 토닥여주는 말인 거 같아.


S: 맞아, 그건 제이레빗의 수고의 느낌은 아니죠.


뭔가 되게 많을 거 같은데, 저는 딱 생각나는 말은 없고... 저 혼자 외국에 나가 있었을 때, 그때 상황이 되게 악화되고 있을 때였어요. 그즈음 몸이 되게 아픈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새벽에 열이 나서 깨서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 엄마가 바로 받으시더라고요. 그때 한국 시간으로 3시 정도였는데... 걸어서 엄마, 나 몸이 너무 아파, 했는데 엄마가 너무 놀라서 한국 들어오면 안 되냐고, 그래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말 못 들어오냐, 지금 일이 너무 많아서 못 간다 하니 엄마가 그다음 날 비행기 타고 오셨어요. 근데 엄마도 일하실 때라서 그렇게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진짜 그냥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비행기를 탄 거죠. 그게 되게 든든했었던 거 같아요. 그만큼 상황이 되게 급박하기도 했고... 우리 엄마도 되게 이성적인 사람이라서 바로 비행기를 탈 사람이 아닌데 -


Y: 진짜 한걸음에 달려오신 거네.


S: 맞아요. 그때가 기억나는 거 같아요...


[SKIP]


S: 진이가 엄마랑 탐이에 대한 대화를 하다 이런 대사도 있었어요.

"뭘 한들 내 맘이 풀리겠니. 그래도 이제는 예전만큼 밉지는 않아.
그냥 옛날 생각나면 그땐 그랬지, 하면서 한 번 더 약 올리고.
그러면서 미움도 하나씩 지워가는 거야."

언니가 생각하기에 미움을 지우는 방법이 뭐가 있는 거 같아요?


Y: 예전에 동생이 그런 말을 해줬어. 자기는 그 사람이 너무 미웠는데, 죽일 만큼 싫었는데, 저주하던 끝에 결국 도달한 곳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거였대. 대체 몇 살에 그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S: (소름)


Y: 그 얘기를 듣고 되게 맞는 말이겠다 했어. 내가 되게 미워하고 저주해도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거야. 그걸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거지. 그게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누군가를 증오할수록 내가 병드니까 맡기는 게 맞겠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맡겨드리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그 방법이 기도일 수도 있겠다...


S: 아니 그건 또 다른 경지에 이른...


Y: 도대체 누굴 그렇게... 알고 보니 나였던 거 아니야??? (웃음)


S: (웃음) 아니 난 이걸 답을 몰라서 물어본 건데, 답을 깨달은 거 같아요. 미움은 정말 우리의 힘으로 지울 수가 없어. 기도밖에 없네...


[SKIP]


Y: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게, 결국 사람들은 소원을 원하지만 사실상 과연 그 이루어지는 방법이 마법일까? 아니면 우리 삶의 흐름일까? 한마디로 운명? 예비하심? 진짜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지 그냥 내 삶의 예비하심이 이루어져 가는 여정인 건지... 그런 부분에서 현재 우리 삶에 마녀식당은 없을지라도, 어딘가에서 마법은 이루어지고 있고 나는 그 마법의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삶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어쩌면 내 소원은 이루어지고 있는 맥락 속일지도...


그래서 나는 이 작가가 끌고 가는 방향성, 결국에는 도달하는 그 도착지가 굉장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희망? 동력? 해피엔딩을 선물해준 느낌이었어. 작가의 착한 마음이 느껴지는...


S: 맞아요, 착한 마음이 느껴졌던 거 같아요.


Y: 힘들지만 그래도 살만한 곳이다...


S: 언니 말대로 우리는 이미 그 마법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어요.


Y: 그래서, 너는 마녀식당에 가면 어떤 소원을 빌 거야?


S: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어요. 확실한 거는, 남에 대한 소원은 안 빌 거 같아요. 저 사람이 망했으면 좋겠어요, 저 사람한테 복수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소원은 안 빌 거 같고... 그래서 약간 저는 진이의 소원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이 3개가 다 어쨌든 탐이에 관한 거라서 그게 유일하게 아쉬웠어요. 뭔가, 마녀식당에 가서 더군다나 그렇게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나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원이 될 거 같아요.


근데 만약에 내가 진짜 가족들을 다 떠나 정말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할 수 있다면, 나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또 행복한 가정을 빌 거 같아요. 커리어, 성공, 나의 달란트 이런 게 아니라, 또 막상 소원은 행복한 가정... 내가 꾸릴 가정. 제가 그리는 행복은 딱 그거예요. 언니랑 7월에 우리 한강 갔었잖아요, 밝았던 날. 내가 그리는 행복은 퇴근하고 집 앞 한강을 같이 걸을 수 있는? 그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에요. 거기서 특별히 더 무언갈 바라진 않을 거 같아요. 근데 그 순간이 나도 행복하고 나의 가족에게도 행복이라면... 나는 참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막상 소원을 빌 수 있다면 그건 또 행복한 가정일 거 같아요. 어쩌면 그건, 행복한 가정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 같아요. 커리어는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데, 가정은 내 영역이 아닌 거 같아서.


Y: 그렇지... 대가는 뭐로 할 거야?


S: (소름) 방금까지 행복했는데 (웃음) 근데 대가를 낸다면, 그건 또 아이러니하게 저의 삶이 될 거 같아요.


Y: (눈물) 아, 왜... ㅠㅠ


S: 그 안에는 커리어도 포함이 되어 있을 거고, 뭔가 나의 그런 개인적인 것들을 대가로 지불하되 가정의 행복을 위해... 그건 오히려 정말 내가 노력하고 지향하는 건데도 그걸 대가로 지불하고, 내가 전혀 노력하고 있지 않는 걸 소원으로 빌고...


Y: 아... 대박이다.


S: 반전 (웃음)


Y: 아, 나의 삶은 너무 크다. 그냥 손가락 2개 정도로 해.


S: (웃음) 언니는요?


Y: 나는, 내가 따뜻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 거야. 나를 만나는 누군가가 따뜻함을 느끼고, 여운을 느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나와 만나는 누군가가 따뜻해하는 걸 보면서 되게 만족해할 거 같아. 나도 되게 행복함을 느낄 거 같아.


그리고 내가 대가로 줄 수 있는 건, 난 내 책임감을 주겠어. 기꺼이 주겠어 (웃음).


S: 근데, 언니는 이미 그런 사람 아니에요?


Y: 아니, 아닌 거 같아. 그래서 더욱 그 부분에 대해 소망하는 거 같아. 몰라, 너한테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아닐 수도 있고...


S: 오빠한테는 어떤 사람이에요? 여왕 마님?


Y: 아니, 여왕 마님까진 아니고 (웃음) 그러게, 안 물어봤네.


S: 오빠한테 어떤 사람이고 싶어요?


Y: 오빠한테는... 그냥 같이 있으면 재밌고 행복한 사람. 나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가정은 그래. 더할 나위 없이 우리가 같이 모였을 때 재밌고 행복했으면, 유쾌했으면 좋겠어. 내가 느꼈던 우리 가정 안에서의 행복이기도 했고, 별거 아닌 걸로 왁자지껄하면서 웃었던 그 별거 아닌 일상이 결국엔 제일 큰 행복이었던 거 같아.


오늘도 되게 마음이 짠해지는.


S: 아 오늘 정말 짠해졌어요. 아니 오히려 우리가 가벼운 책을 읽을 때 대화는 더 심오해지는 거 같아요.

따뜻함 사람...


Y: 너는? 미래의 배우자에게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S: ...나는 좀 이기적이야. 이기적으로 생각해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나를 볼 때, 정말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웃게 해주고 싶다 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지극히 이기적인 관점으로 (웃음).


Y: 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설렜다.


[SKIP]


S: 자 그러면 마무리 질문으로, 가장 좋았던 문장은?


Y: 저는 메모했던 건 많았는데 가장 생각나는 건,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마녀식당은 존재한다."

마지막에 나왔던 거 같아.


S: 저는... 하나를 뽑자면 엄마가 진이한테 해주는 말인데,

"세상에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


Y: 나도 그거 썼어.


S: 되게, 인생의 조언 같은 느낌이었어요. 또 그것도 있는데, 연옥이가 효식이 오빠한테

"'그런데 오빠, 그거 알아요?' 효식이 되물었다. '뭘?'
연옥의 얼굴이 단풍처럼 붉어져 있었다. '오빠가 내 첫사랑이었던 거.'"


Y: 맞아, 나 거기서 대박!!! 이랬는데 (웃음).


S: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Y: 수고하셨습니다~!


[EXTRA]


"'꼬마, 그런데 왜 하필 진 곁에 있고 싶다는 소원을 비는 거지?
원한다면 진이 너와 사랑에 빠지게 해 줄 수도 있는데.'

'그런 식으로 누나의 사랑을 얻고 싶진 않아요. 그건 가짜 사랑이니까요.
저는 정정당당하게 누나의 마음을 얻을 거예요. 시간은 걸리겠지만 저는 겨우 17살이잖아요?
기다릴 시간은 충분해요.'

마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그게 바로 진짜 사랑이지.'"


"'자퇴? 적응을 못 해서가 아니야. 결단력과 용기가 있는 거지.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지켜낼 용기와 그것을 실행에 옮길 결단력. 난 그렇게 생각한다.'"


"'만에 하나 부모님이 네게 힘이 되어주시지 않는다 해도, 세상은 너의 편이라는 걸 기억해.'"


"'고생 많았죠. 처음에 한 이 년간은 울지 않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나도 점차 요령이 생기고 적응이 되더라고요. 우는 날하고 웃는 날이 비슷해지더니
나중엔 웃는 날이 더 많아졌어요. 엄마 때문에요.
지금 떠올려보면 그때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지고 볶고 싸워도 엄마랑 있던 시간이요.
지금도 가끔씩 엄마 냄새가 그립고, 나 보면서 방긋방긋 웃던 엄마 얼굴도 그립고...'"


"'몸이 아픈 것만 아픈 거니, 마음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슴이 아련히 아파왔다.
엄마를 사랑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어 마음이 아팠다.

'엄마, 엄마는 내가 사는 세상 그 자체야. 엄마한테는 사랑한다는 말도 부족해.'

'그래, 알아. 그런데 말이지, 자식이 아무리 제 부모를 사랑해도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것에는 못 미치는 법이야. 그리고 그건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마찬가지고.'

'엄마가 아무리 그래도 난 아빠가 싫어.'

'왜?'

'나, 아빠가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지 다 기억해. 엄마를 때리고 욕하고...
게다가 아빠는 엄마한테 여자로서 큰 상처를 줬잖아.'

'상처? 받았지 물론. 온몸을 가르듯 아팠지.
그런데 말이야, 진아.'

엄마는 말을 멈추고 몸을 돌려 진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었다.

'세상에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어.'

세상에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 어째서인지 그 말이 자장가처럼 진을 편안히 감싸주었다."


"행복한 가정이야말로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었다."



커버 사진

"Summertime sadness" https://unsplash.com/photos/FLigbWjCZ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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