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흉터들
초등학교 고학년즈음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같은 수업을 듣는 남자애들이 집 전화로 연락해 오는 일이 잦았다.
장난전화 겸 호기심, 누군가는 좋아하고 보고 싶음을
이성에 눈을 뜨는 시기였으니까.
그저 친구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들이 장난들도,
그 시절 내게는 작은 기쁨이고 재미였다.
어느 날 한 남자애가 전화를 했을 때,
아빠가 전화를 받았고,
그 애는 놀라서 전화를 끊었다.
내가 다시 전화를 받았을 때,
그 애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했고 잠깐의 통화가 시작되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아무 쓸모없었지만
내일 언제 오는지 같이 놀자, 숙제 등등 별거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그 아이와 키득거리며 전화를 이어 갔다.
하지만 그 통화를 끊고 난 뒤,
아빠는 내게 너무나도 가혹한 말을 했다.
‘얼마나 헤프게 하고 다녔으면 이 밤에(저녁시간즈음) 남자애들이 전화를 하겠냐’는 그 한마디.
그리고 나지막하게 들리는 소리
“걸레 같은 년”
그 말은 어린 내 마음을 깊이 찔렀고, 마치 내가 잘못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가끔은 문득 궁금해진다.
아빠는 이 상처를 기억이나 할까.
나만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이 상처는 정말 깊고 어둡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까.
그 말들은 그날로부터
남자아이들과 이야기하거나 놀게 되면
죄짓는 기분을 들게 했고,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감정이 들 때마다
난 죄지은 기분의 연애를 해야만 했다.
아빠 몰래 만나야 했으며
남자를 선택할 때 지침의 본보기가 되어야 했던 아빠로부터 그런 소리를 들으니 나의 나침판은 빙글빙글 돌아 엉뚱한 데로 날아다녔다.
엄마에게만 의지해던 나의 연애들
삐뚤어진 말 한마디가
나를 움추러들고 구석 바닥을 닦는 걸레처럼 구겨졌다.
나를 좀처럼 사랑할 줄 모르는 아빠.
난 누구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