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야기] 감정일기를 씁시다!

상담자가 알려 드리는 감정일기의 목적과 기록하는 방법

by Moonlight journal

최근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배우 송혜교 씨가 나오셔서, 몇 년째 꾸준히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저도 상담을 하다 보면,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분들 중에서 감사일기를 써 본 적 있다는 내담자 분들을 종종 뵙기도 하고, 저도 십 여 년 전에 감사일기를 써 본 적이 있어요.


다만 저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당시에 쓰면서 마음이 조금, 어쩌면 꽤나 힘들었어요.

삶의 중요한 영역들에서 평균 이상의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어느 영역에서도 충분한 만족감, 안정감, 확신이 없어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고 불안한 시기였거든요. 그래서인지, 감사일기를 쓰면서도 스스로 기만하는 것 같이 느껴지고 감사하다고 쓰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더 의기소침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쓰면 다르게 느껴질 것도 같은데, 하여튼 당시엔 그랬답니다.


실제로 감사일기는 '긍정심리학'의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어서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기서 잠깐 알고 보면 쓸모있는 심리학 지식 TMI를 방출해보겠습니다.



현대 심리학, 특히 심리치료 영역의 발전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개인에게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크게 확장되기 시작한 것은 조금 역설적이게도 WWI, WWII를 통해 인류가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게 된 시기 이후입니다. 이 때문에 심리학의 주요 관심사도 대부분 인류가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나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거의 모든 초점을 기울이고 있었죠. 그러나 시대가 변화했고 냉전을 거쳐 표면적으로나마 평화로운 시기가 이어지고, 인간들이 단순히 고통과 결핍에서 벗어나는 것 이상의 무언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심리학의 관심사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1998년 당시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y Association, APA)의 학회장이었던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이 심리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였는데요. 심리학이 심리적 고통뿐 아니라, 잘 기능하고 큰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이 좀 더 의미 있고 충만하고 가치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돕는 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습니다. 이후로 성격강점이라든지, 행복에 대한 연구, 삶의 의미와 가치,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마음챙김 등이 더욱 각광을 받게 되었고, 감사일기 또한 이 맥락에서 널리 알려진 것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맥락 때문일 수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나 내담자 분들과의 임상 경험에서나 유사하게 느끼는 것이, 너무 괴로움이 크고 압도적인 상황에서 감사함에만 집중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물론 괴로움에 대한 수용과 이해와 감사함에 대한 집중이 병행된다면 그건 의미가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감사일기 대신 해 볼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제가 내담자 분들에게 일관적으로 자주 추천 드리고 누구에게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감정일기' 쓰기입니다.


감정일기는 종류가 다양하고 정말 일기처럼 줄글 형태로 적으셔도 좋아요. 그렇지만 저는 처음에 적을 때는 (1) 상황, (2) 생각, (3) 정서, 행동, 신체 반응의 3가지 영역으로 구분하여 적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특히 (1) 상황을 적을 때 아주 작은 한 씬을 적는 것이라 생각하고, 상황을 매우 작게 잘라서 구체적으로 적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어차피 나는 앞선 맥락정보를 다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상황을 구구절절 길게 쓸수록 거기에 섞인 생각과 감정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명료하게 보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해요. (2) 생각은 이 때 떠오르는 나, 대상, 세계에 대한 평가적인 생각들,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감정과 엮인 생각들을 적어주시면 좋아요. 마지막으로 (3)에는 이와 연결된 여러 감정, 행동, 신체감각 및 반응 등을 자세히 적어주시면 됩니다.


굳이 구분하여 적기 어렵다면 그냥 에세이처럼, 일기처럼 편하게 적으셔도 됩니다. 다만 세부적인 상황들도 좋지만, 그때 드는 생각, 감정, 욕구, 소망, 충동 등에 집중하여 적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여러분, 그렇다면 감정일기를 쓰는 목적이 뭘까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지만 제 생각에는 나에 대해 더 잘 이해/예측하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심리상담이라든지 심리학이라든지, 어쨌든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작업을 하는 것은, 결국 내가 평생 같이 데리고 살아가야 할 가장 중요한 사람인 '나'에 대한 애정이 섞여 있다고 생각해요. 감정일기를 쓰는 것도 상담을 받는 것도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는 작업을 하는 것도 결국은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고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이죠.


감정일기를 쓰다 보면, 내가 자주 하는 생각, 감정, 행동 반응의 연쇄 고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내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더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론에 따라 이것을 핵심감정, 핵심신념, 무의식, 자동적 사고, 심리도식, 특정한 part, 내면아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요. 결국 핵심은 하나입니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려 정신역동적으로 표현하자면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이고,

인지행동치료에 따르자면 "자동적 사고를 인식"하는 것. 조금 더 나아가면, "자동적 사고에 따른 자동적 반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에 따른 가치-지향적 행동을 하는 것"이기도 할 테고요.


그래서 감정일기를 적을 때 가장 중요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어요!


1) 감정일기를 쓰는 이유는 그 감정에 압도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감정을 관찰하기 위해서입니다.

2) 감정일기를 쓰는 이유는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살기 위해서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는 나를 약하다고 비난하고 한심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3) 감정일기를 쓰다 보면 자기 특유의 생각과 감정의 고리를 찾을 수 있어요. 그것을 찾아보세요.


3) 에서는 조금 더 후속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데요.

- 연쇄고리를 찾아냈다면, 그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 이 생각이 나에게서 온 것인지 다른 사람이나 외부세계에서 온 것인지도 다양하게 생각해 보세요.

- 그리고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나를 괴로운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느껴진다면, 불안과 괴로움에서 잠시 벗어나, 그 영역에서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관계에서 반복된 괴로움이 발생한다면, 한 발자국 물러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세요. 혹은 아주 먼 미래로 시점을 옮겨서 내가 삶의 끝에 있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죠. 그 시점에 나와 우리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어떻게 하고 싶을지 생각하면서, 중요한 나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어떠세요? 감정일기 한 번 써 볼만 하지 않나요? 적으면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하루에 한 번이나 며칠에 한 번도 좋고, 정말 어렵다면 일주일에 1-2번이라도 좋으니 딱 30분만 시간을 내어 감정일기를 적어보세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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