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야기] 성인애착의 중요성에 대해

상처 받은 우리가 다시 사랑을 찾고 회복해나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by Moonlight journal

* 사실 심리 전공자인 나도 '성인애착'의 중요성에 대해 잘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막연히, 한 번 생긴 불안정 애착은 큰 기복이나 호전 없이 그냥 쭉 가는 것이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살아가는 수 밖에 없는 게 아닌가 정도로 대략 생각하던 시절이 꽤 오래. 그러던 어느 날, 수퍼바이저 선생님이 수퍼비전 도중 환자 분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성인애착은 기존의 애착 외상을 치유한다"는 맥락의 말을 해 줬는데, 그 말을 통해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인지적 통찰과 완전히 합일되는 경험을 한 기억이 있다.


** 나의 이야기

* 나는 명백하게 불안정 애착인 사람이다. 상담자들 중 대다수가 그러하듯. 지금의 어머니는 그렇지 않지만, 내가 어린 시절의 젊고 아름답고 유약하고 슬프고 미성숙했던 본연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그녀는 나에게는 아름답지만 차갑고, 유머러스하지만 냉소적이고, 나보다는 본인이나 나의 다른 형제에게 더 많은 애정을 주는 대상이고 쉽게 곁을 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 어린 시절의 나 또한 타인에게 애정을 갈구하기 위해 나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느니 차라리 깊은 동굴 안에 혼자 외롭고 그러나 안전하게 지내는 것을 더 원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양육과 기질의 조합은 기본적으로는 회피형인 듯하지만 사실은 애정을 갈구하는 불안형이기도 한 혼합된, (엉망진창의) 불안정 애착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 그 즈음에 만나게 된 한 남자. 한 학년 위의 선배였다. 처음엔 그저 좀 귀엽고 멋있고 상냥하기도 하고. 좋은 사람 같긴 한데 생각보다 은근 만나기도 어렵고 파악하기도 어려워서 애매하게 신비주의를 표방하는 거야 뭐야 싶어 어이 없으면서도 궁금하고. 뭐 외모도 쫌 내 스타일이고. 똑똑한 것 같은데 냉소적이지는 않고 부드럽고. 그래서 마음에 들어 먼저 다가가서 사귀게 된 사람이었다.


* 그리고 또 그 시기의 나. 중학교 후반부터 시작된 심각한 우울증을 전혀 치료하지 못하고 방치한 채 살아오다가 대학에 입학하고나니 뚜렷한 목표(공부, 대학 입시 등)가 사라지며 급격한 방황의 시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대학에 오니 수많은 날고 기는 천재들 사이에서 나는 정말 필부이자 범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유일하게 나의 자존감을 지탱해주던 '공부 잘하는 애'의 축이 무너지며 급격히 자존감이 저하되며 우울감은 최대치에 달하게 되었다. 물질남용, 자살사고, 자살충동에 사로잡힌 채 하루하루를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 삶의 중요한 과제였던 근 1-2년의 시간이 있었고, 그 기간은 공교롭게도 그 남자와 처음 사귀게 된 시기와 겹치기도 한다.


* 그런 둘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새드 엔딩이어야 마땅하지만 놀랍게도 해피 엔딩(?)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남자는 섬세하고 자상한 면은 있지만, 특정한 부분에서는 상당히 무던하고 덤덤하기도 했다. 내가 울고 불며 괴롭다고 난리를 칠 때면 그저 토닥토닥하고 좀 달래주고, 그러다가 또 본인이 할 일이 있으면 하고(주로 게임이었지만ㅋㅋ) 졸리면 자기도 하고. 그러면 나는 좀 고맙기도 하고, 때로는 황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뻘쭘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럽고 공허하기도 하고, 그 어딘가를 왔다갔다 하며 혼란스러워했는데, 그런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아 이런 허무맹랑한 행동으로는 이 사람의 애정을 이끌어낼 수 없구나' 하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사실 내가 하는 자살충동의 기저에 누군가의 사랑, 관심, 위로를 받고 싶은 욕구가 존재함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부끄러워 인정하고 싶지 않던 그 경험을 명확히 직면하게 해 주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안정되고 솔직하게 나의 욕구를 드러낼 때 더 잘 받아주었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적당히 관심과 걱정을 주면서도 과잉 반응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런 일들이 반복됨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늘 비슷한 태도와 텐션과 관심을 유지하며 곁을 지켜주었다.


* 그렇게 1년, 2년이 지난 어느날, 나는 알게 되었다. 이제 더는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그리고 이 사람이랑은, 우리 둘 중 하나(그렇지만 아무래도 내)가 허튼 짓(신뢰를 져 버리는 짓)을 하지만 않는다면 어쩌면 결혼할 수도 있겠는데? 라는 걸. 그리고 이 이상하지만 굉장히 확실하게 다가온 이 사실은 결국 사실이 되었다.


** 다시 상담자의 이야기

* 연애 상담을 할 때마다 생각하고 실제로 말씀 드리기도 하는데, 연애는 운의 영역이 꽤 크다고 생각한다.

* 사람 보는 눈이 어쩌고 저쩌고, 애착이 어쩌고 저쩌고. 나는 사실 반 쯤 개소리(!)라고 생각하고,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있어서 라는 것도 너무 오만한 생각이라 느낀다. 나처럼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사람도, 어쩌다 이렇게 뒷걸음질치다 소 잡는 격으로 괜찮은 사람을 만나 좋은 연애를 하면서 애착외상을 치유받아 잘 살게 되었지만, 나보다 더 자원 있고 능력 있고 애착관계도 꽤 괜찮았던 사람들이,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미처 알 수 없던 어떤 지점을 알지 못하고 연인이 된 누군가와의 안 좋은 경험에서 상처 받고 고통스러워지는 경험을 자주 목격했기에. 그렇기 때문에 '너의 연애가 엉망인 건 애착이 애초에 잘못돼서 그런거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는 사실은 끼워맞추기 식 설명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 후에도 계속 비슷한 사람이 꼬이고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면, 그건 애착 문제이든 뭐든 심리적 문제에 기인할 가능성이 높아지긴 한다.


* 그렇지만 이와 달리 내가 확신하는 것 중 하나는, Love wins all, 사랑이 결국 모든 것을 이기고 치유하고 극복하며 이겨내는 힘이 된다는 사실이다.


* 사랑은 파국과 고통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이 모든 고통의 근본적인 해결책이자 유일한 치유방법이 되어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을 갈망하고,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움에도 기꺼이 그것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아닐까.


** 기억할 점!

* 애착외상은 치유될 수 있다. 좋은 연인/파트너, 좋은 교사, 좋은 친구, 좋은 자녀 관계를 통해 얼마든지. 그리고 애착외상이 없는 상태는 정서적인 강력한 안정감을 준다.


** 다시 나의 이야기로의 회귀

* 애착 문제가 있던 시기의 나는,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세상이 너무나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중력이 너무나 약한 느낌. 사소한 사건으로도 나는 금세 공중으로 치솟았다. 내가 발 딛고 설 이 땅이 너무나 연약해, 나는 이 땅에 발가락 하나라도 닿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쳐야만 한다는 사실이 극도로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웠고, 무엇보다 무서웠다. 조금만 문제가 더 커지면 망망대해의 우주로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느낌.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정감. 남자친구에게 기념일에 쓰는 편지마다 '네가 나의 땅이 되어줘서 고마워. 나도 네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고 싶어'라는 말을 무수히 반복해 썼던 기억도 난다.

* 그러니까 애착이 불안정한 시기의 나는, 심리적인 토양이 없는 채 지내는 존재와 마찬가지였다.


** 희소식.

* 그러나 결국 그 무수한 고통과 치유의 경험을 통해 나아진 나는 지금 너무나 단단한 땅의 감각을 느낀다. 심리적 토양의 단단함, 안정감에 대해 확신한다. 사소한 일들로 불안하고 우울하고 순간적으로 뛰쳐내리고 싶은 충동이 찾아오더라도, 그렇구나 인식하고 바라보고, 다시 이 땅에 닿은 내 몸의 감각을 기억한다. 그것은 참 별 것 아니지만 압도적이고 강렬한 변화의 경험이기도 하다.


** 애착. 그것이 우리 관계의 거의 전부이자 모든 것이기도 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음이야기] 상담을 하며 알게 된 명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