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이 망가진 후에 항상 하는 말은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지겹지만 그 말은 진짜다. 끊어진 부분이 아쉽지만, 그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그냥 구멍으로 두고, 모른 척 눈 딱 감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시치미를 뚝 떼고. 물론 나의 몸과 정신은 안다. 그것이 한 번 멈췄고, 생각보다 오랜 기간 멈췄고,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을 갖자면 또 뭔가를 극복해야 한다는 걸. 나같이 우울증 트레이트가 강한 사람에게 이건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런데 누가 안 힘들겠어. 마음먹었던 일이 실패했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일을 해내지 못했고 그렇게 자꾸 내 한계를 봐야 하는 일인데. 요즘은 존경하고 사랑하는 최애가 한 말은 크게 힘이 된다. "힘들어도, 자신 없어도, 하기 싫어도, 떨리고 무서워도 '한다'. 그러한 순간들 너머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있으니까. 다른 방법은 없으니까" 정확히 이 워딩은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해 풀어쓰면 그렇다.
내가 아는 애 중에 정확히 꼬박꼬박 가장 잘 다시 시작하는 애는 자궁이다. 매 번 임신에 실패하지만 또다시 시작한다. 사실 자궁의 목표를 계속해서 실패시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인데, 이 개체가 인생에서 누리는 이익과 유전자의 이익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몸은 개의치 않고 26일~29일마다 자궁을 헐었다 지었다를 반복한다. 그 사이클이 영향을 미친다. 루틴을 망가지게도 하고, 루틴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도 한다. 지겹지만, 다행이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알게 하는 몸을 갖고 태어났다. 더 단순해지지 않는 것이 속상할 때도 많지만, 복잡한 존재로 태어난 것을 부정하거나 비하하고 싶진 않다. 언젠간 끝나겠지만, 내 의지로 끝나지는 않는 일이라, 그리고 실제로 닥치면 어떨지 모르겠어서, 좀 더 기쁘게 받아들여 보기로 한다.
이번 재시작은 살짝 더 의미 있다. 오랜 기간 공백기를 갖고 있던 최애가 공식활동을 시작한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이다. 또 실패하겠지만 잘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 더 든다. 11월에 시작했던 운동 루틴은 2월 말에 운동 100일을 맞고는 멈췄다. 루틴을 업그레이드하려다 역풍을 맞았는데 통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통증과 그로 인한 의욕 저하가 이유가 되어 흐지부지 2주 정도를 날렸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어제로 운동 루틴을 피트니스 복싱과 함께 다시 잡기 시작한 지 다시 16일째가 되었다. 필라테스를 30회 재등록하고 주 2~3회 레슨으로 바꾸었는데 어제가 10번째 수업이었다. 유튜브의 매운맛 복근 운동 콘텐츠를 따라 하기 시작한 지는 4일이 되었다. 어제 월경 시작 직전에 그러니까 복근 운동을 하고 나서 샤워하기 전에 잰 체중은 57.4kg. 전날 "다시 57킬로그램을 향해!"라고 결심하자마자 이렇게 달성해버리니 좀 웃겼다. 뭐 이렇게 쉬워. 하지만 이 달 말까지 56을 보는 게 목표다. 57.5~56.5 왔다 갔다 해야 57kg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목표 체중 달성! 운동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긴다고 심한 다이어트에 걱정하는 팬들을 향해 했던 최애의 대답을 잘 이해한다. 나도 처음엔 60kg 이하로 가기만 하면 이후의 체중엔 신경 안 쓰고 싶었는데, 막상 목표 체중에 도달할 것 같은 조짐을 보고 있으니 욕심이 생긴다.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무척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고, 몸을 바꾸는 건 정말 천천히, 천천히. 몸을 바꾸는 건, 신경계에 새겨진 '정상상태'의 기준을 바꿔나가는 일이라, 정말 신중하고 천천히 해야 한다. 작년 말~올해 초 100일의 분투 덕에 쉽게 살이 다시 찌진 않는 몸이 되긴 했다. 운동을 안 하면 불편한 하루가 되었고, 사람들이 왜 운동을 아침에 하는 지도 알게 된 것 같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 가능하면 샤워 전에 하는 게 좋아서, 샤워 두 번 하기 싫어서 라는 걸. 어쨌든 잘하고 있다. 성공적인 재시작이다. 성공의 경험을 떠올리는 것은 다시 시작하는 데 정말 큰 자원이 된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일은 글쓰기다. 몸은 회복에 들어섰고, 앞으로는 실패하더라도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으니 다음 차례는 자연스럽게 정신과 지성을 회복하고 싶겠지. 운동을 결심할 때도 그랬지만 깊게 생각하고 결심한 것은 아니다. '회복'이라는 말에 내 상상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어떤 이상적인 상태로 복귀한다는 뉘앙스를 담으면 안 될 것 같다. 삶의 이상적인 상태란 그저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요즘은 영화에서도 그런 식으로 삶을 다루지 않는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현재를 사는 사람으로 어떤 이상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어 본 적은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나만 알지. 나는 쉽게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같은 의미로 쉽게 만족하지 않는 사람인데, 과거의 나는 이미 충분히 대상화되어있고, 더 이상 살아있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뿐이다. 그런 이치다. '회복'이란 단어에 오해가 없어야겠다.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작하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것이다. 무엇을 유지하는가. 다시 시작하는 것을 유지한다. 힘이 달리면 심호흡을 하고 내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고 쉰다. 쉼이 있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 동적인 상태가 회복이다. 인생은 머무른 것처럼 보여도 역동적 평형상태(Dynamic Equilibrium)다. 다른 사람의 삶은 종종 원래 그랬던 것 마냥 평형상태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항상 역동이 있다. 타인이 모를 뿐이다. 이 역동적 평형상태를 유지하게 할 매일의 운동, 매일의 글쓰기. 역시 운동처럼 100일 정도를 꾸준히 해볼 계획이다. 매일 마감, 월 20회 이상 발행, 오전 9시 발행, 7개 문단 이내, 2000자 이상을 목표로 잡고 있다.
사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때마다 부끄러움이 함께 온다. 그 부끄러움은 나 자신을 보는 바깥의 자아를 향한 것이다. 어쩌면 어렸을 때 나를 보던 양육자의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참을성이 없다고, 너무 쉽게 지겨워하고, 쉽게 포기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로부터 몇십 년이 지난 후에는 "꾸준하고 진득하지는 않은데 계속 다시 시작하는 게 기특하다"는 말을 들었다. 꼭 내가 내 자궁에게, 내분비 체계에 하는 말 같다. 그 부끄러움을 토닥여주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줄 수 있는 바깥 자아의 시선은 성인이 되어 알게 된 많은 용기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찾아냈다. 다시 시작한, 꾸준히 다시 시작하고 있는 사람들을 나는 존경과 응원의 시선으로 본다. 최근에는 좋아하는 웹툰 <카산드라>의 이하진 작가의 블로그 포스팅이 그랬고,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의 글이 그랬고, 올해 현대문학상을 탄 <우리 여기 마주>의 최은미 작가의 수상소감이 그랬다. 그들을 바라본 경험으로 다시 나를 보며 격려한다. 결국 꾸준함은 다시 시작하는 것을 무수히 반복하는 일이고, 인생에 닥치는 어려움들을 받아들이면서도 꾸준한 방식으로 해결해나간다는 뜻이다. 내겐 그 정도면 된다. 무한히 다시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