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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 Jul 02. 2019

김연아가 내게 준 선물.

피겨선수 김연아를 사랑한 비보이의 깨달음


김연아 선수의 유나 스핀 by RAPA

2010년 김연아 선수가 한참 날릴 때,

유나스핀이라는 동작에 매료되었다. (최초로 어떤 동작을 하게 되면, 그 선수의 이름을 붙여준다. 유나스핀은 김연아 선수가 최초로 보여준 독창적인 동작이다.)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순간으로부터 약 10년 전.

1999년, 대한민국은 힙합 돌풍이었다.

그때부터 비보잉을 시작했다. 고난도 파워무브와 빠른 발놀림, 스피드와 공격성에서 뿜어지는 강한 에너지! 너무나 멋졌다. 교실 책상을 밀어 두고 윈드밀을 연습했고 아무리 못해도 3개월이면 완성할 수 있다는 윈드밀이라는 기술은 무려 11개월이 걸렸다. 빠르게 스텝을 밟고 싶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공격적인 바이브와 에너지를 표현하려고 했는데 할 때마다 어색했다. 난 상대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난이도, 스피드, 감정 모두 매력적인 요소였지만 덩치카 크고 온순했던 나는 다른 비보이들과는 조금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내가 추구했던 스타일은 "창의적인 스타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동작을 만들까?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흐름을 만들까,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관점으로 음악을 해석할까? 결과적으로는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고 몇몇 비보이들은 나의 창의적인 모습을 발견(?)해주고 칭찬해주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3가지 키워드로 창의적인 나의 댄스 스타일을 정의할 수 있었다.


1. 장르의 맛 (Taste of Genre)

비보잉이라는 장르만이 가지고 있는 동작, 호흡, 분위기가 있다. 이것을 잘 지킨다. 이는 비보잉이라는 게임에 참여하기 위한 입장권이면서 오리지날리티와  펑키니스를 극대화하는 요소이다.


2. 펑키니스 (Funkiness)

같은 16비트 음악에서 춤을 추는데 어떻게 흘러갈지 뻔히 보이는 무브가 있고, 1번의 놀라움과 1번의 미소를 만들어주는 무브가 있다. 다르면서 쿨함. 의외성과 위트. 다음 동작이 무엇일지 예측하기 어려우면서 동시에 멋이 있어야 한다. 예측할 수 있게 진행하다 마지막에 한방 반전을 줄 수도 있고, 끝없이 변화하는 작은 변주를 줄 수도 있다. 주의사항은 1번. 장르의 맛을 버리면, 게임에서 제외된다.


3. 오리지날리티 (Originality)

한국어로는 독창성이다. 장르가 가지고 있는 동작, 호흡, 분위기가 아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동작, 호흡, 분위기를 의미한다. 나의 오리지날리티는 다른 장르에 있는 동작을 접목하는 것에 있었다. 이를 테면, 힙합의 사이드 스탭을 탑락에 접목하거나 파핑 웨이브를 이용해 고다운을 한다거나 사물놀이 선반에 있는 자반뒤집기를 동작 중간에 넣기도 했다.


예상했겠지만 유나스핀을 무리하게 비보잉에 접목했다.

구상했던 동작의 흐름은 아래와 같았다.

(A) 풋워크 (식스 스텝/CC 등을 진행)

(B) 앉은 상태에서 발차기하면서 고업 (회전력 발생)

(C) 회전력 살려서 나인틴 들어가는 동작

(D) 물구나무서지 않고, 왼발로 땅을 지탱하고 유나스핀 시전


(C)와 (D) 부분은 아래 튜토리얼을 통해 동작을 이해해 보기 바란다.


병원에서는 6개월간 춤을 추지 않기를 권고했다.

사당동에 있는 연습실에서 최초로 이 동작을 시도했을 때, 같이 연습하는 비보이들은 흐름이 괜찮다고 칭찬해주었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더 강하게 회전을 넣었고 발에서 "뚝!"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비명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매우 큰 고통이었다. 운동화는 피겨스케이트와 다르게 뻑뻑한데 강한 회전력이 발 앞꿈치에 몰리면서 발이 뒤틀렸던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뼈에는 이상이 없지만, 근육이나 인대가 크게 다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해주셨다. 6개월간 춤을 참으라고 하셨다. 안 그러면 평생 아플 것이라고... 어쩔 수 없이 1개월은 참았지만 2개월 차에 또 시도 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접목이었지만, 계속해보니 방법이 나왔다. 발 앞꿈치가 아닌, 뒤꿈치를 이용한다거나 무릎을 이용해서 회전해보니 조금 더 안정적이었다. 결코 김연아 선수 만큼의 유연성을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비보이 스타일의 포즈로 승화되었다. 스핀이 아닌 프리즈로 변형해도 꽤 괜찮은 동작이었다. 그렇다  새로운 무브가 탄생한 것이다.


이 공식은 창의력이 필요한 다른 분야에도 적용된다.

최근에 창의적인 접근으로 성공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면, '무리한 접목'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경우가 있었다. 대리기사나 택시 앱은 새로운 만남을 원하는 남녀를 위한 데이팅 앱을 내비 앱에 접목한 경우이고  끝까지 진행하면 회비를 100% 환불해주는 피트니스 클럽 정책을 다이어트 앱이나 영어공부 앱에 접목한 경우이다. 업계의 장르의 맛을 잘 아는 상태에서 다른 영역의 컨셉을 융합해내면! 오리지날이 된다.


눈치챈 분들 도 있겠지만 접목을 위해서는 "맥"이 필요하다.

비보잉의 파워무브와 유나스핀은 "회전"이라는 맥이 있었고, 택시 앱과 데이팅 앱은 "만남", 피트니스와 영어공부는 "포기하기 쉬운 자기 계발"이라는 맥이 있는 것이다. 막 붙이는 것은 아니다.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힙합(한?) 공식

창의력은 단순한 다름이 아닌 다름을 통한 문제 해결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문제에 발을 붙인 상태여야 한다(장르의 맛). 뻔한 접근보다는 다름을 추구해보자(펑키니스). 최초가 된다면 더욱더 좋겠다. 한 단계 발전시킨 최초의 동작이 될 수도 있고 최초의 접목, 최초의 연결이 될 수도 있다(오리지날리티).


무리한 접목이라고 생각된다면, 오리지날리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비러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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