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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게 하고 싶은 말 하기

픽션이 있는 이유

by 라파

자신의 일상에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느낀 점, 하고 싶은 말을 잔잔하게 전하는 수필은 브런치 작가님들이 가장 먼저 접근하는 장르이다. 동시대를 사는 다른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것도 재미가 있고 공감이 가는 감정선이 따뜻한 말투로 조근조근 들리 듯한 문체는 부담이 없다.


너무 좋은 글, 재미있는 글, 공감 가는 글을 만나게 되면 좋아요를 남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님께 직접적인 감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작가님들 중 많은 분들이 직접 답장도 해주신다. 나도 나의 일상과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1명만 좋아요를 눌러주어도 기분이 좋다. 그리고 이 기분은 작가를 창작에 중독시킨다. 더 좋은 글을 쓰려고 애를 쓰고 가독성 좋게 문단도 잘 나누어 주고 글씨 크기도 시각적으로 매력 있어 보이게 만지게 된다. 노력 여하에 따라 좋아요 수는 반응한다. 당연지사 좋은 글과 꾸준한 독자층 확보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확실히 좋아요 반응에 영향을 주는 것이 있다. 브런치 수필에서 좋아요를 높일 수 있는 3가지를 공개한다.


1. 썸네일

빛은 소리보다 빠르다. 인간은 시각이 다른 감각에 비해 매우 발달하였고 반응도 즉각적이다. 썸네일을 잘 만들어야 클릭해 보는 사람이 많다. 그래야 좋아요도 함께 증가한다.


2. 제목

호기심. 이브는 호기심에 선악과를 먹었고 판도라도 호기심에 상자를 열었다.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클릭해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래야 좋아요도 함께 증가할 확률이 높다.


3. 일상

썸네일과 제목의 산을 넘어온 귀한 독자 손님들에게 "좋아요"를 누르도록 하는 마지막 단계는 내용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은연중에 기대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 수필에서는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하고 나와 다른 관점으로 인물과 사건을 해석한다. 비슷한 생각은 나와 다르지 않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다른 생각은 참신함을 느끼게 한다.


1번과 2번은 디지털 매체의 특징이지만 3번은 수필이라는 장르의 특성이다. 내가 글을 쓸 때도 일상을 공유한 경우 더 많은 좋아요가 생긴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 오픈할 수 있는 가? 오픈을 하면 할수록 고민이 되었다. 가족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가족사가 공개된다. 동네 이야기를 하면 내가 사는 곳이 공개된다. 회사 이야기를 하면 회사의 조직문화가 공개된다. 긍정적으로 포장해서 말하거나 부정적인 요소는 편집해서 내보내면 솔직함이 떨어지는 것 같다. 실수를 통해 크게 깨달은 사건을 수필로 옮기자니 우리 회사에 프로젝트를 맡기려던 사람이 내 글을 보고 망설일 수도 있다. 내가 만약 배우라면 누드씬까지 찍을 수 있는가? 나를 노출하는 것은 나의 장점을 알리는 것인 동시에 약점도 알리는 것이다.


자신을 노출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머무는 사람들이 많아져 층간소음에 대한 이슈가 커졌을 때였다. 에너지 넘치는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어떤 브런치 작가가 아래층 어르신과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묘사하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다. 갈등의 발단과 서로 이야기를 할수록 갈등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이었다.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브런치 작가는 피해자의 마음은 알겠지만 아이가 그럴 수도 있지 너무했다는 아래층에 대한 원망으로 끝나는 형태였다. 일부 저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공감을 하기도 하였으나 층간소음 피해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동안 받던 층간소음에 대한 비난을 댓글 기능을 통해 쏟아냈다. 브런치 작가는 해명과 사과의 글을 올렸으나 층간소음 피해자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더 많은 비난 댓글이 달렸다.


댓글이 아예 없는 나의 브런치 글에 비해서 뜨거웠으나 그런 형태의 뜨거움은 피하고 싶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난 글을 한동안 쓰지 못했다. 솔직하게 오픈하는 것이 유일한 표현방법이었던 초보 수필작가의 망설임은 글쓰기 중단이 되어 버렸다.


방송인들이 방송 콘텐츠 생태계에서 나름의 캐릭터를 잡아 포지셔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래는 진지한 성격이지만 방송 콘텐츠 생태계에서 "버럭"캐릭터를 맡는다거나 "바보"캐릭터를 맡는 것이다. 전략적 선택이다. 그렇다면 수필 작가도 마찬가지로 어떤 캐릭터를 설정하고 메서드 연기 하듯이 주제와 소재를 다루어 표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수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수필의 껍데기를 쓴 픽션이 아닌가?

어떤 버전의 '나'가 영원할 수는 없다. 나이를 먹고 더 많이 깨닫게 되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고 생각도 바뀌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다른 목소리를 표현하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여러 캐릭터를 만들어서 그 캐릭터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하고 그 결과를 그려나가는 것인가? 소설, 웹툰, 영화 같은 픽션이 나오게 되는 이유인가? 아니지. 소설, 웹툰, 영화는 흥행이라는 것을 바라고 생산되는 산업인 측면도 크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이유로 멋진 픽션이 태어날 수 있을까?


고민의 이어짐은 계속되었고 5년이 지난 나는 아직 소설 쓰기를 시작하진 않았다. 다만 글 쓰기는 이어간다. 타인이 보기에 거북하지 않은 수준의 일상을 기록하고 내 머릿속에 떠도는 불분명한 형체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그렇게 하면 부가적으로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엿볼 수 있다. 지금은 내가 부족하고 답답하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미래의 나는 어쩌면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아름답다고 말할지도 모르니깐.





이 글은 산체스커피 본점에서 타이핑하여 만들었습니다.

https://naver.me/5hucdD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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