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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ul 10. 2023

'몸에 맞는 공'을 던지는 사람들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26

01. 

야구 시즌이다 보니 가끔 시간이 나면 그날의 하이라이트 영상들을 몰아보곤 합니다. 스포츠와 우리네 인생이 닮아있다는 얘기는 수없이 많이 들었는데, 또 어떤 장면을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와- 저런 포인트도 사람 사는 것과 비슷하네'라고 생각되는 순간들이 있죠. 특히 야구는 정말 다양한 조합과 확률과 변수가 존재하는 스포츠인만큼 그런 요소들이 더 많이 느껴지는 것도 같습니다. (그나저나 응원하는 팀이 잘 좀 해야 할 텐데 말이죠..) 


02. 

야구를 보다 보면 가장 아찔한 장면 중 하나가 '몸에 맞는 공'입니다.  예전에는 데드볼(dead ball) 혹은 사구(死球)로 불리다가 십여년 전 'hit by pitched ball'이란 단어가 공식적으로 정착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말 그대로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에 몸에 맞는 것을 일컫는 용어죠.   

문제는 이런 투구의 65% 이상이 고의성 또는 보복성 투구라는 점입니다. 물론 야구는 매너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상대의 비매너적인 순간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비매너를 비매너로 대응한다는 점과 하물며 그 비매너를 상대팀이 주관적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환영보단 비판받는 지점이 훨씬 많은 투구가 바로 '몸에 맞는 공'입니다.  


03. 

그런데 일을 할 때도 마치 야구 경기에서처럼 이 '몸에 맞는 공'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보복성 피드백이죠. 사실 가족이나 연인보다도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는 직장 동료 사이에 감정적인 순간이 안 생기는 게 더 희한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상식선에서 매너 있게 상대를 대하거나 가급적 사람보다는 일 자체에 집중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조직이 잘 굴러갈 수 있는 거겠죠. 


04.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오- 감히 나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다니?', '방금 한소리는 나 들으라고 한 소리인가?', '나의 결과물을 지적했다면 너도 당해봐야지. 다음 타석에서 상대해 주마'라는 식의 유형들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너무 안타깝지만 이런 사람들과는 사실상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기가 참 어렵죠. 근거 있는 반론이나 취향 차이로 발생하는 이견조차 자신에게 날라오는 위협구로 느끼고 언제나 보복성 언행으로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05. 조직 내에 이런 사람 한 명만 있어도 그때부터는 모두가 기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게 됩니다. 

우선 대부분이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전달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뒷담화로 문제를 이슈라이징 하기 시작하고, 애티튜드가 맞는 동료들끼리만 더 끈끈해져서 정보의 비대칭은 물론 협업의 비대칭까지 발생하게 되거든요. 무엇보다 정말 해야 할 말도 하지 않게 되는 문화가 만들어 지는게 가장 안타깝고도 화가 나는 지점이라 할 수 있죠.  


06. 

예전에 광고계에서 일하시는 대선배님 한 분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사회생활에는 기싸움도 필요해. 근데 말야. 그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참지 말고, 상대가 이기적이거나 비상식적으로 나올 때 마냥 받아주지 말라는 얘기지, 어딜 가서 먼저 센 척하라는 얘기가 아니야.  '저흰 이런 식이면 일 못합니다', '그렇게 하셔서 좋을 거 없어요'라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깡패들이 문신 보여주며 협박하는 것과 뭐가 달라?" 


07. 

저는 그때 이게 흔히 말하는 애티튜드의 기준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사실 일을 하다보 면 마냥 나쁜 사람만큼 마냥 착한 사람도 늘 문제가 있죠. 그러니 괜히 저자세일 필요도 괜히 고압적일 필요도 없지만 적어도 둘 중에 더 나쁜 것 하나를 고르라면 '저를 물면 저도 반드시 당신을 뭅니다'라는 으름장을 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만큼 커뮤니케이션의 기회와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태도도 없을 테니 말이죠.  


08.

여기에 속시원히 '그래서 저는 이런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얘기해 드리고 싶지만 사실 뾰족한 답이 없는 게 두 번 속상한 일입니다.  야구에서도 마찬가지거든요. 누가 봐도 고의성 사구인데 투수는 '손에서 볼이 빠진 거다'라고 발뺌하는 장면을 수없이 자주 보기 때문이죠. 하물며 하루에도 서로서로 거듭되는 회의와 협업과 컴을 반복하는 우리에게는 매 상황을 정확히 꼬집고 비판하기가 더 힘든 법일 겁니다.  


09. 

다만 그럼에도 유일하게 해볼 수 있는 노력이 있다면 조직 내부에서부터 '쿨한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명확한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들, 각자의 의견과 취향이 존재할 수 있는 부분들, 지적이 아니라 개선을 위해서 알려주는 포인트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팩트로 받아들이자는 걸 상기시키는 것이죠. 그래야 은연중에라도 '우리는 보복성 멘트나 피드백을 지양합니다'라는 팀 문화를 느끼게 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10. 그러니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게 싫어서 괜히 나도 한번 훅 들이 받았어'라는 걸 자랑스럽게 얘기하기 전에 딱 한 번만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누가 봐도 상대가 비상식적인 언행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타자를 향해 150km짜리 괘씸(?) 패스트볼을 날린 것은 아닌지 말이죠.  어불성설이란 게 딴 게 아니더라고요. 남이 던진 건 '몸에 맞는 공'이고 내가 던진 건 '몸 쪽 꽉찬 직구'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이미 어불성설의 초입에 들어서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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