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25
01.
본질과 현상은 때때로 헷갈릴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일상 속에 '본질은 여기까지, 현상은 저기까지'라며 칼같이 구분하며 살 수는 없기 때문이죠. 대신 비슷한 현상이 반복되거나 특정한 현상에 대해서 사람들의 불만이 제기된다면 그때부터는 무엇이 그 현상을 야기하는지, 수면 아래 잠겨 있는 본질은 무엇인지를 들여다봐야 마땅합니다.
02.
마이크로 매니징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아티클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아마 제가 읽어본 것만 해도 얼추 20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어요.) 거기다 경영과 리더십의 문제 같은 커다란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면 아마 웬만한 매니지먼트 책에서는 이 마이크로 매니징의 문제점을 한 번씩은 다 언급하고 지나갔을 것 같네요. 그만큼 오래된 이슈이자 여전히 핫하게 회자되는 이슈라는 얘기겠죠.
03.
일부에선 마이크로 매니징을 그저 간섭의 문제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먹이사슬을 붕괴시키는 행위'라고도 보거든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실 테지만 대부분의 업무 조직은 늘 '과제'라는 먹잇감이 있습니다. 누군가 줘서 떠안게 되는 먹잇감도 있고, 스스로 발품을 팔아 찾아내야 하는 먹잇감도 있죠. 그리고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일반적인 스탭이 다뤄야 하는 먹이와 그 조직을 관리하는 리더나 매니저가 다뤄야 하는 먹이는 반드시 달라야 합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죠...
04.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일행을 이끌고 산을 넘어야 하는 리더라면 어떤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할까요? 아마 무슨 수를 써서든 산 너머에는 어떤 지형이 펼쳐져 있는지 파악하고, 거기까지 닿는 여정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예측하며, 그럼 우리는 무슨 전략과 계획을 세워서 움직여야 하는지를 고민할 겁니다. 그래야 본인을 따르는 팔로워들에게 신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05.
하지만 꽤 많은 리더들이 마치 산속에서 먹이를 찾지 못해 아래 마을 민가에까지 내려오는 호랑이 마냥 멤버들의 숟가락 하나, 젓가락 한 짝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이크로 매니징의 진짜 문제는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간섭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리더의 초점 자체가 아래로 향하는 데 있을 겁니다. 당연히 멀리 예측하고, 주변을 관찰하는 임무와는 점점 동떨어지고 그저 본인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만 더 지엽적으로 파고드는 악순환이 반복되죠. 그래서 마이크로 매니징은 생각보다 꽤 무섭고 고질적인 이슈입니다.
06.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리더의 도메인, 다시 말해 전문성 부족이었죠. 사실상 모든 리더는 자기 증명을 해야 합니다. 왜 내가 여기에 존재해야 하는지와 왜 내가 지금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해 보여야 하죠. 그런데 자신이 가진 도메인이 약하면 무엇을 예측하기도, 누군가를 설득하기도, 특정한 역량을 검증하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07.
그러니 '저 사람은 대체 하는 일이 뭐야?'라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리더로서의 생명력이 끝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서서히 먹잇감을 찾아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오는 결정을 하는 것이죠. 멤버들이 만든 결과물에 지극히 개인적인 피드백들을 덧붙이거나, 심지어 업무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분야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며 본인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려 하는 게 전형적인 마이크로 매니징의 특징인 이유입니다.
08.
그럴 때마다 이런 반론을 펴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마이크로 매니징 엄청 했다고 하던데요?'라고 말이죠. 하지만 이건 팩트가 아닙니다. 잡스가 아이폰의 버튼 위치 하나, 아이맥 바탕화면의 아이콘 사이즈 하나에까지 관여를 했다는 걸 두고 마이크로 매니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엄연히 소비자가 만나게 될 최종 결과물에 대한 리뷰이자 '왜 이런 방식을 택했는지'와 관련해 담당자의 근거를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본인이 구상하는 큰 그림에 가장 근접한 산출물을 마련하고자 멤버들의 전문성을 극대화시키는 과정이었던 것이죠.
09.
그러니 사실 마이크로 매니징은 어떤 측면에서도 쉴드가 불가한 이슈이긴 합니다. '꼼꼼히 본다'라는 이유를 들이밀자면, '굳이 리더가 꼼꼼히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뽑아야지'라는 비판을 듣게 되고, '직접 나서서 챙기는 엄마 리더십의 일환이다'라는 변명을 갖다 대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챙김이 아니라 병목이다'라는 공격을 받기 때문이죠. 매니징의 스타일을 매크로와 마이크로로 구분하기 불가능한 대표적인 근거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0.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덧붙여보겠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 가장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을 때가 앞을 바라보고 무리를 이끌고, 위를 향해 개선 의지를 불태우는 리더 밑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의 조직장을 맡았던 분이 한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너는 너의 전문성을 키워라. 나는 나의 전문성을 키울 테니. 서로 겹치는 건 비효율이자 마이너스다.'
저는 이 문장이 소위 말하는 조직 내 역할들을 대변하는 명확한 한 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마이크로 매니징의 반대말은 없다고 봐요. 이건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에 더 가까우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