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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Aug 13. 2023

좋아하는 콘텐츠는 다양한 포맷으로 즐겨보자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31

01. 

말 그대로 콘텐츠를 '소화하기에도 힘든'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유행하는 드라마나 영화쯤은 봐줘야 하고, 타인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을 내 인풋으로 사용하기 위해 반은 재미 삼아, 반은 일에 대한 고민을 무게 삼아 봐야 하는 콘텐츠도 있기 때문이죠.  


02. 

당연히 저도 콘텐츠 보는 걸 참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저는 꽂히는 콘텐츠가 있으면 그 하나를 무한 반복해서 즐기는 걸 무척이나 애정 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인터뷰이로 참여한 영상이 있으면 그냥 무심코 틀어둔 채로 할 일을 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최근에는 오펜하이머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들에 꽂혀서 그의 인생 이야기들을 들으며 화장실 청소를 하기도 합니다....)  


03. 

재미있는 포인트는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다양한 포맷으로 즐겨보면 의외로 재미도, 인사이트도 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남이 만든 콘텐츠에 내 나름대로 변주를 줘서 즐기기 시작하면 '좋았던 포인트들이 또 다른 이유로 좋아지게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제가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비주얼에서 사운드로, 사운드에서 다시 텍스트로 옮겨가며 즐기는 방식이죠.  


04. 

저는 즐겁게 본 유튜브 콘텐츠나 방송 프로그램이 있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혹은 운전을 할 때 소리로만 재생해서 그 콘텐츠를 만나봅니다. 마치 팟캐스트를 듣는 것처럼 다른 보조적인 장치들을 모두 제외하고 소리로만 즐겨보는 거죠.  그럼 의외로 비주얼과 함께 시청했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의외의 순간들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이 말을 할 때 이런 감정으로 이야기했던 거구나'하는 포인트를 느끼는 게 가장 멋진 일인 거 같아요. 출연진의 표정과 휘황찬란한 자막들에 묻혀 놓친 작은 감정의 부스러기들이 이제 우리 레이더에 하나씩 포착되고 마니까요. 


05. 

이 정도로도 만족이 안되면 저는 가끔 텍스트까지 파내려(?) 가보곤 합니다. 아마 이건 어릴 때부터 대본집을 좋아했던 기질에서 발현된 것 같기도 한데요, 제 경우엔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 광고까지도 시나리오 파일이나 콘티 파일을 찾아 직접 눈으로 읽어보고 지문 하나하나를 확인해 보는 걸 정말 좋아했거든요.  왜 그런가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 결과물의 원형을 찾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된 것 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저는 대체 시나리오 상에는 어떻게 쓰여있길래 저런 연기와 감정과 상황과 설정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거든요. 그러니 내 손에 들려진 정제된 콘텐츠가 아니라 상상으로 휘갈겨진 그 원형의 기원이 찾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거겠죠. 


06. 

그래서 정말 좋아하는 영상의 경우에는 클로바 노트처럼 보이스 노팅 프로그램을 하나 켜놓고 영상의 말소리들을 녹음한 다음 텍스트로 변환하여 읽어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놀라는 건 '정말 사람이 말하는 것들을 그대로만 받아 적어도 책 한 권에 버금가는 작품이 나오는구나'는 감탄을 하게 된다는 거죠.  


07.

또한 영상으로 보거나 소리로 들을 때는 몰랐던 대화의 흐름이 눈으로 하나하나 읽힌다는 게 참 매력적인 지점입니다. 마치 상대와 만나서 얘기할 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감성이 메시지로 주고받을 때는 세세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포맷이 달라지면서 그 톤 앤 매너가 확 뒤바뀌는 경험이 너무 좋은 거죠.  


08. 

이 얘기를 했더니 지인 중 한 분은 '저는 음악을 들으며 가사 하이라이팅을 해요'라고 하시더군요. 그건 뭐냐고 묻자, 본인은 가사에 좀 심취해서 음악을 듣는 타입인데 어느 날부터 좋아하는 곡에서 제일 좋아하는 문장을 하나씩 골라 메모 앱에 저장해두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음악으로 만날 때도 좋지만 우연히 메모 앱을 열어 한 줄 문장으로 만나는 노래들도 무척이나 반갑다고 했습니다. 그럼 다시 음악을 들을 때는 그 가사가 또 색다르게 들린다고 해요. 마치 그 한 문장을 듣기 위해 음악을 재생하게 되는 것도 같다고 하고요.  


09. 

아마 여러분들도 비슷한 순간들이 있을 겁니다. 물론 한번 본 콘텐츠를 다시 보기보다는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 모험하는 걸 즐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살다 보면 예전에 경험한 뭔가를 다시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때는 오리지널 그대로 즐기는 것도 좋지만 나만의 작은 변주를 줘서 또 새로운 형태로 만나볼 수도 있는 거죠. 저는 그게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큰 매력이자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 가진 권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10. 

좋아하는 햄버거에 치즈 한 장 더 올려 먹는 것, 부먹찍먹 논란 대신 소금에 콕콕 찍어 탕수육을 맛보는 것, 맘에 드는 향수나 디퓨저를 블렌딩해 쓰는 것, 이 모두가 나만의 재해석이고 재창조의 즐거움이라는 걸 상기해 본다면 책도, 음악도, 영화도, 유튜브 영상 한 편도 내 마음대로 즐길 수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니 이번 한 주의 시작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소비하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도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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