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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Sep 06. 2023

재미로 하는 일에도 '체계'가 있으면 좋습니다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40

01. 

누구든 지금 하고 있는 본업에서 지치는 순간을 만날 때면 잠시 곁눈질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걸 '딴짓'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게 일의 형태를 띠게 되면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용어로 커지기도 하죠.  

본업이 전도될 정도라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적당한 수준에서의 분위기 환기는 본업에 다시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리프레시가 될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구글처럼 업무의 30% 정도는 비업무적인 일에 몰두하라는 곳도 있으니 말이죠.  


02. 

이런 딴짓 중에서도 그저 '재미로 하는 일'이 있습니다.  돈이 되는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이로움을 가져다 줄지조차 쉽게 예측되지 않지만 일단은 흥미가 생기고 관심이 가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인 거죠.  


03. 

사실 저는 이런 일을 하는 것에 엄청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누군가는 '그거 뭐 하러 해?'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본인이 하는 일들을 따져보면 또 딱히 의미가 있어 보이는 일이 많지도 않더라고요.  

무엇보다 현대인인 우리에게 새롭게 집중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게 참 행복한 일임이 분명합니다.  


04. 

여기에 한 가지 팁을 얹자면, 저는 재미로 하는 일에도 적당한 수준의 '체계'가 있으면 꽤 놀라운 변화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래도 재미있던 일이 훨씬 더 재미있어지거나 의외의 유용함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더불어 흥미가 조금 떨어질락 말락(?)하는 그 순간을 만날 때 쉽게 포기하지 않고 조금 더 호흡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재미로 하는 일에 계속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05. 

체계라고 해서 아주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아래 세 가지 방법 정도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체계가 만들어진다고 보거든요. 

첫째는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입니다. 보통 재미로 하는 일을 두고는 '내가 좋아서하는 거지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거 아니야'라는 자평을 내립니다. 물론 이런 관점 자체도 존중하지만 때로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은 채 그저 꾸준히 공개만 해두는 것이 예상외의 결과를 가져다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내가 좋아해서 한 일을 누군가가 좋아해 준다는 사실은 정말 큰 힘이 되거든요. 또 새로운 소재를 탐구하거나 의미 있는 피드백을 받게 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러니 타인에게 공개하는 게 아주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면 작은 용기를 내어보는 것도 좋다는 말씀을 드려봅니다.  


06. 

두 번째는 '생산량과 시점을 일정하게 가져가는 것'입니다. 사실 재미로 하는 일은 그 관심이 빠르게 타올랐다가 짜게 식어버릴 확률이 큽니다. 그리고 또 다른 먹을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일을 반복하게 되죠.  

때문에 혹시라도 조금 더 꾸준히 오랫동안 흥미를 붙여보고 싶으시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점을 정해두거나 '일주일에 하나, 혹은 한 달에 몇 개' 정도로 그 생산량을 책정해 놓는 것도 좋습니다.  

특히 위에서 설명드린 첫 번째 방법과 연계해서 타인을 위해 일정 기간 동안 하나씩 공개하거나 연재하는 방식을 쓰면 금상첨화죠. 이러면 스스로에 대한 동기부여가 될 뿐 아니라 그 일을 이어가는 데 있어 내가 어떤 호흡을 가져야 하는 지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07. 

마지막 세 번째는 '이름 짓기'입니다.  

이게 뭔 소리냐 하실 수 있겠지만, 사실 내가 하는 일에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 즉 네이밍을 한다는 것은 의외로 새로운 시각과 신선함을 주는 일입니다.  

혼자 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 프로젝트에 이름을 붙여주거나, 그 프로젝트에 임하는 나에게 새로운 부캐를 설정해 준다거나, 그 일을 하는 작업 공간을 네이밍 해본다거나, 나의 결과물을 봐주는 사람들을 뭐라고 칭할지를 상상해 보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시도입니다.  


08. 

나이가 들고, 업력이 쌓일 수록 느끼는 건 의외로 이 이름이 가진 힘이 꽤 크다는 사실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재미로 지은 이름이라고 해도 그게 불리고 전파되기 시작하면 이게 체계가 되고 문화가 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런 현상은 나 스스로가 그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마음가짐을 바로 잡게 만들고, 의외의 애착과 보람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쉽게 놓지 못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09. 

주변 사람들이 하는 일이 흥미로워 보여 이것저것 질문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에이 별로 대단한 거 아니에요. 그냥 재미로 하는 일이에요.' 그럼 저는 다시 대답하죠. 

'그래서 묻는 거예요. 재미로 하는 일이니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그럴 땐 상대방도 뭔가를 작게나마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라고 말씀드린 것은 아닌데 말이죠...) 순순히 본인의 흥미로, 거대한 조건이나 명분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진짜 대단한 일이다라는 건 제 평소의 지론이기도 하거든요.  


10. 

그러니 여러분도 '재미 삼아 하는 일'을 평가절하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대단한 일을 조금 더 오래, 잘 유지하고 싶으시다면 나름의 체계를 가져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나에게 재미와 애정을 가져다주는 일이라면 나도 그 일을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작은 노력들을 해주는 게 일종의 예의일 수 있으니까요, '아무 생각 없이 해보자', '하다가 안되면 또 다른 거 해보자'라며 시작한 일이더라도 그 불씨를 조금 더 키우고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도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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