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열문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영 Sep 04. 2023

자기 객관화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노력들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39

01. 

어제는 친한 지인분들의 돈 주고도 못 들을 소중한 강의를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각자가 일하고 있는 현재와 그 현재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들을 이야기하는 자리였죠. 

모든 이야기가 다 보물 같아 매 순간 감탄하며 들었지만, 그중에서도 제 눈과 귀를 사로잡는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객관화'였죠. 


02. 

지인분의 발표에서 '나를 마치 타인처럼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저도 요즘 들어 정말 많이 고민하는 포인트기도 하거든요.  

특히 자칫 잘못하다가는 개인의 취향으로 흐를 수 있는 업(業)의 특성상 늘 내가 바라보는 관점과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메타인지'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매 순간 타인의 시각으로 나와 내 결과물을 들여다봐야 할 때가 정말 많으니까요.  


03. 

예전에 글을 통해서도 짧게나마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저는 몰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빨리 몰입을 깨고 나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애착이 크고 진짜 딥 다이브에서 바닥까지 훑어보다 보면 당연히 그 세계에 빠져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저 역시도 그럴 땐 짜릿함을 느끼곤 하는데요, 마치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바닷속 깊숙한 지점에서 남들이 모르는 신선하고 귀중한 자원들을 독차지하는 느낌이 들 때마저 있거든요.  


04. 

하지만 어쩔 때는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소름 끼칠 때가 있습니다.  

'왜 남들은 이곳까지 오지 않았을까?', '혹은 이 포인트를 알고 있다고 해도 왜 이 귀중한 것들을 가져가지 않았을까?' 같은 질문들이 어느 순간 머릿속을 꿰뚫고 들어오기 때문이죠. 그럴 땐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그냥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하는지 아니면 돌다리 하나하나를 모두 노크해 가며 '왜'라는 이유에 답을 얻어야 하는지 고민이 될 때가 많습니다.  


05. 

그럴 때 자주 쓰는 저만의 방법이 있는데요, 바로 타인에게 이 문제를 한 번 입혀보는 겁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묻거나 혹은 나를 분리해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닌 '저 사람이 나에게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왔으면 나는 어떻게 말해줬을까?'라는 걸 고민해 보는 거죠.  그게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 뭐가 다르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이건 정말 엄연히 또 명백히 다른 문제입니다.  


06. 

우리가 말로는 '자기 객관화'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지만 사실 대부분이 자기 객관화라는 그 중요성과 느낌을 상기하는 것뿐이지 실제로 나를 객관화한다는 건 무지무지 어렵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누군가에 비춰 그 문제를 바라보다 보면 조금 다른 시각이 생깁니다. '저 사람이라면 이걸 이렇게 끌고 갈 텐데, 그럼 그때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은 뭘까?'라는 게 보이기 때문이죠. 마치 우리가 매장에서 옷을 고르다 거울을 봐도 좀 알쏭알쏭한 순간에는 함께 간 친구에게 옷을 대보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아예 다른 사람에게 그 문제나 아이디어를 입혀보면 의외로 나라는 자아에서 쉽게 분리되어 나올 수 있습니다.  


07. 

그래서 저는 '타인의 맵'을 그려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거창한 용어 같지만 실천하는 건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이 뭔가를 아이데이션 하는 과정에 있을 때 'A라는 사람이라면 이걸 어떤 스타일로 가져갔을지', 또 'B라는 사람이라면 어디에서 허들을 만나고 그걸 어떻게 돌파했을지'를 간단한 맵으로 그려보는 거죠. 동그라미 몇 개와 선 몇 개, 단어와 몇몇 문장들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으니 품이 드는 일도 전혀 아닙니다.  


08. 

사실 '타인의 맵'을 그려보면 제일 도움이 되는 건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필요하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어쩌면 자신을 객관화 시킨다는 건 '이 정도면 다른 사람이 봐도 괜찮은 수준이겠지? 훗 나 좀 객관화 잘하네?'라고 넘어갈 게 아니라 '이 문제를 현명하고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어떤 자질과 역량을 갖춰야 하는가'를 살펴보는 과정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니 내 몸에서 유체이탈(?) 해보려는 시도보다는 아예 타인을 활용하는 게 훨씬 쉽고 빠를 수 있습니다.  


09. 

개인적으로 얻게 된 유용함이 하나 더 있다면 이 타인의 맵을 활용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훨씬 잘 관찰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사실 타인의 맵을 활용하려면 타인에 대한 정보와 예측이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이 문제를 입혀봤을 때 그 사람이 실제 어떻게 처리해나갈지에 대한 기본 데이터가 필요한 거죠.  

그래서 저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든 주변 사람이든 (혹은 좋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간에) 그 사람의 스타일에 대해서 더 심혈을 기울여 바라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획자에게 이런 시각은 큰 도움이 되어주기도 했죠.  


10. 

바야흐로 '나를 바라보는 눈'이 필요한 시대라고 합니다. 실제로 나에게서 나를 분리해 관찰하고 조명하는 노력은 정말이지 너무너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단계에 바로 접근하기 어렵다면 타인에 비춰 내 문제를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인간상과 그들의 다양한 스타일을 이해해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빨리 작동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니까 말이죠.

매거진의 이전글 '통제'하는 리더와 '장악'하는 리더의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