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38
01.
프리미어리그의 절대 강자인 맨체스터 시티를 이끌고 있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2019년 라커룸 토크에서 했던 말입니다.
"나는 너희를 통제(control) 하는 사람이 아니야. 니네가 뭘 먹든 하루에 훈련을 몇 시간 하든 내가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없어. 너희는 프로니까 그런 건 알아서 해야 해.
나의 정확한 역할은 우리 팀을 장악하는(supremacy in the team) 것이야.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하는 대신 너희들 각자가 '내가 우리 팀을 위해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끔 하는 게 내 일이야.
너희에게 그런 마인드를 심어주고 행동으로 옮기게 하기 위해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거라고."
02.
사실 과르디올라 감독의 이 말은 당시 맨시티의 경기 흐름이 매우 좋지 않던 상황에서 나온 것입니다. (딴소리지만.. 맨시티도 경기 흐름이 안 좋을 때가 있나 보죠...? 암튼)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소름이 돋았던 것은 그 어느 필드보다 터프하고 거칠고 잔인하다는 스포츠 리그에서, 그것도 게임이 마음대로 잘 풀리지 않는 그 순간에, 선수를 다루는데 가장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있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입을 통해서, '통제'와 '장악'의 개념을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03.
우리는 흔히 '리더십', '카리스마', '경영 스타일' 등의 단어를 논하며 통제와 장악을 뭉뚱그려 해석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모든 것을 자신의 레이더 속에 위치하게 하며 그저 통제의 통제를 거듭하고 있는 것을 두고 '조직을 완전히 장악했다'라는 생뚱맞은 해석을 할 때죠.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적어도 조직 관리의 측면에서 보자면 '통제'와 '장악' 이 두 가지 개념은 확연히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이 개념들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그 리더를 어떻게 대하느냐의 차이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04.
통제는 '일정한 방침이나 목적에 따라 제한하거나 제약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나마 '일정한 방침이나 목적'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저 리더 개인의 선호나 취향에 따라 제한과 제약을 반복한다면 이는 통제 중에서도 아주 퀄리티가 낮은 통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을 '카리스마 리더십'이라거나 '디테일한 매니지먼트'라고 칭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죠. 성과를 내야 하는 조직에서 무엇인가를 통제하기만 하는 부정적인 기운을 뿌리는 것도 모자라 그 행동의 근거 또한 신뢰받을 수 없다면 이는 실패한 문화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05.
반면 장악이란, 잘 아시다시피 '손안에 뭔가를 잡아 쥔다는 뜻으로, 무엇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는 형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다뤄야 할 대상에 내 모든 영향력이 미칠 수 있고, 이를 통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이끌어갈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 바로 '장악'이죠.
아마 과르디올라 감독이 말했던 것 역시 이 맥락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감독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미쳐야 하는 대상은 바로 선수 한 명 한 명이고, 그 개개인의 선수들 각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깨닫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을 갖게 해준다면, 팀이라는 존재는 이미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도 남을 테니 말이죠. 통제가 아닌 장악을 화두에 올린 이유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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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직을 이끌다 보면 통제의 필요성이 체감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규정해야 하는 순간에는 이 통제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기도 하거든요.
다만 통제는 모든 구성원들이 납득하고 합의 가능한 상태의 것이어야 하고,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가서는 통제의 명목으로 모든 가능성을 다 잃어버린 채 서로 눈치게임만 하는 형국이 되고 말기 때문이죠.
07.
크기와 형태에 상관없이 어떤 조직을 맡고 있는 리더라면 통제는 가장 기본적인 에티켓 정도로 남기고 '무엇을 어떻게 장악해 나갈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통제하는 리더는 항상 무엇인가를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자신의 약점, 내부에서 불거지는 이슈들, 외부로부터의 정보나 반응, 조직의 형세나 앞날에 대한 비전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속시원히 공유하는 것을 본 적이 없거든요. 오히려 모든 것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지엽적인 것을 들여다보다 더 깊은 굴을 향해 제 발로 들어가는 케이스가 많았습니다.
08.
대신 장악하는 리더들은 늘 뭔가를 먼저 제시하는 사람들이었죠.
구성원들이 불만이나 궁금증을 던지기 전에 먼저 한 스텝 앞서 그들의 고민을 예측하고 거기에 대한 솔직하고도 적확한 답을 하는 유형이었거든요. 그러니 조직원들 입장에선 언제나 새로운 미션과 타깃을 공유 받게 되고 결국 그것이 각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해주었습니다. 구차한 방법과 교묘한 술수 없이도 자신의 영향력이 뻗쳐야 하는 곳에 적절한 씨앗을 심어주는 진정한 의미의 '장악'을 가능케 한 거죠.
09. 조금 잔인한 얘기지만 비전과 역량 없이, 오직 리더라는 타이틀만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통제에 매달릴 확률이 큽니다. 그게 아니고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더 정확히 얘기하면 구성원들이 알아서 잘 움직이고 발전해가는 상황을 생각하면 벅찬 감정보다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를 들이미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인지심리학의 거장 '스타니슬라스 드앤' 박사의 견해와도 일치합니다.)
10.
그러니 리더십을 논하기에 앞서 먼저 냉정하게 고민해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그저 타인과 조직을 통제하면서 나만의 만족을 추구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물음과 함께 '그런 짜치는(?) 행위에서 벗어나 조직원 각자가 생명력을 가지고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거죠.
식물이 꽃잎을 새로 피울 때마다 가차 없이 똑 떼어내 버리면서 '나 참 관리 잘 한다'라고 자평하는 건 누가 봐도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니까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통제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 장악을 위한 것인지 매 순간 확인하는 지혜부터 길러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