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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Sep 14. 2023

잘 포기하려면 '될 대로 돼라'는 마인드부터 버리기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42

01. 

예전에 북토크에 참여해 주신 분께서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까 말씀 중에 '가끔은 잘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하셨는데요, 잘 포기하는 것은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건가요?"   


02.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오래 기다린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크고 작은 성과에는 그 비결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여쭤봐주시지만 어떻게 포기하는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으시거든요. 대부분이 '아 그냥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어느 순간에는 놔주는 것도 필요한가 보다' 정도로 해석하고 넘어가는 눈치였습니다. 


03. 

그렇다고 잘 포기하는 것에 묘수가 있을 리는 만무합니다. 포기함에 있어 기가 막힌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릎에서 시도했다 어깨에서 포기하는 그런 타이밍의 예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죠.  

다만 포기를 대함에 있어 유일하게 해볼 수 있는 것은 결국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포기를 선언한 그 타이밍에 어떤 애티튜드를 가지고 있었느냐가 생각보다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이죠.  


04. 

얼마 전 지인분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쩔 수 없다', '내 손을 떠났다'라는 말과 '될 대로 되라지'라는 말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이죠.  

포기의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잡고 있던 그 끈을 '탁'하고 놓는 순간에 나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물론 '될 대로 되라지'라며 무심코 한 일이 더 좋은 방향과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건 행운이란 말로는 더 이상 포장할 단어를 찾기가 힘들더군요.  


05. 

특히나 '될 대로 되라지'라는 마음가짐으로 뭔가를 떠나보내는 건 더 이상 내가 이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포기하는 일에 내가 주인이 될 필요가 있냐는 그 마음에도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그치만 포기한 일이라고 해서 그 직전의 과업까지 나에게서 모두 해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두기 전, 포기하기 전까지는 온전히 나의 일이었고 나의 책임이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냉정하지만) 이 이름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합니다.  


06. 

뜬금없는 얘기지만 일본의 낚시 문화에는 '송화(送話)'라는 개념이 있다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 떠나보내며 하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뜻대로 고기가 잡히지 않아서 자리를 뜨거나 배를 돌려야 하는 그 순간 어부들이 바다를 향해 던지는 자조 섞인 메시지를 바로 송화라고 부르는 거죠. 

누군가는 '에이 JO졌네 이거!' 하면서 그날 하루를 마무리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내일 또 바다로 나와야 하는 그들의 숙명 속에서는 다음 날을 기약하는 좋은 말 한마디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오늘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었지만 우리 내일은 한 번 잘해보자'라는 그 마인드가 새로운 기회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07. 

그래서 저는 잘 포기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그 포기의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어떻든 간에 나 자신이 어떤 자세와 감정으로 그 대상과 이별했는지가 정말정말 중요하기 때문이죠.  

역도 레전드라고 불리는 장미란 선수가 은퇴 직전 마지막 대회에서 1,2차 시도를 모두 실패한 후 떠올린 말 역시 '역기가 나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라고 하더라고요. 스스로에게 그 정도 기억은 못 남길지라도 꽤 유쾌한 인사를 하며 보내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08. 

그 후로 저는 '이미 제 손을 떠났습니다'라거나 '더 이상 제가 손쓸 도리가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그만두고 싶습니다'라는 포기 멘트에는 그래도 긍정적인 화답을 하는 편이지만, '될 대로 돼라'는 식의 인사에는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것 같더라고요.  

전자는 내 것이 될 수 없어도 다음을 기약하는 '송화'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후자는 내일도 고기가 안 잡히든, 배가 뒤집히든, 태풍이 몰아쳐 바다가 아수라장이 되든 나는 상관없다라는 소리로 들리니 말이죠.  


09. 

그러니 여러분도 뭔가를 포기하는 순간에는 그 포기의 감정을 한 번 잘 되새기고 기억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했다거나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는 비교적 객관적인 분석 외에도 내가 어떤 자세와 태도로 포기에 임했는가를 한 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는 거죠. 그리고 저는 그 순간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다음 라운드에 뛰어들 새로운 힘을 가져다준다고 봅니다.  


10.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Give-up List를 미리 작성해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마지막까지 아등바등 들고 있다가 한순간에 감정적으로 내치기보다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되면 그때는 이렇게 포기한다'라는 일종의 목표적 포기, 계획적 포기가 있으면 한결 의미 있는(?) 포기가 가능해지거든요. 한편으로는 새로 집중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도 더 선명해지고요.   우리의 인생사에 성취만 있는 것이 아닌 만큼 현명하게 잘 포기하는 방법을 익히는 지혜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오늘 또 한 번 하게 되네요. 저의 이 마음이 여러분들에게도 오해 없이 가닿기를 한 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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