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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Oct 04. 2023

하반기의 하반기 2023년은 이제 시작일 지 모릅니다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43

01. 

10월의 첫 영업일(?)이 되었습니다. 출근 일이 시작되었다는 얘기죠. 제가 쓰는 글을 주욱 봐 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이맘때쯤 되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드디어 올해의 4쿼터이자 마지막 분기인 10월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죠.  


02. 

(이제 좀 지루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언제나 정해진 기간을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쪼개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일 년을 크게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누고 그중에 하반기가 도래하면 다시 하반기의 전반전과 후반전을 나누죠. 그러니 지금은 하반기에서도 후반전, 잘 아시다시피 2023년의 마지막을 장식할 4쿼터에 들어선 셈입니다. 


03. 

10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새로 뭔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촉박한 것 같고, 그렇다고 남은 기간에 온 힘을 쏟아붓기엔 또 서글픔이 밀려오는 시점이기 때문이죠. 제 친구에게 이 얘길 했더니 10월은 마치 '스물아홉 살'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뭐 했다고 벌써 스물아홉 살이 되었나' 싶다가도 한편으론 '나도 이제 30대를 준비해야 하는구나' 하는 시점을 몸소 체감하게 되는 지점이라는 거죠. 이 말에 굉장히 크게 공감한 기억이 있습니다. 


04. 

좀 다른 얘기지만 2007년에 방영한 '9회 말 2아웃'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이제 거의 15년이 훌쩍 지난 작품이죠. (너무 고전이군요... 암튼) 거기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내 인생 최고의 사치는 오늘 이 자리가 아니라... 이미 경험해 버린 걸지도 몰라. 당연하게 지나쳐 온 청춘 그 하루하루였었을지도 모르지. 청춘과 안녕을 고하려는 이제야 그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어. 언제나 그래.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는다는 거." 


05. 

네. 꽤 잔인하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의 처지와 참 닮았을지 모릅니다. 아마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지고 스타벅스에서 플래너를 나눠주기 시작할 시점이면 지금 이 10월의 초반이 그리워질지 모릅니다.  

'차라리 그때라도 뭘 해볼걸', '그때라도 방향을 틀어서 다른 선택지를 바라볼걸', '그 즈음부터 신발끈 조여매고 달렸었더라면 지금은 뭐라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같은 생각을 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런 관점을 갖지 못합니다. 왜냐면 우린 이 계절을 즐기기에도 바쁘기 때문이죠. 


06. 

일본 극작가인 '요시이 이사무'는 "우리가 한 계절만 앞서 살 수 있어도 저무는 오늘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텐데..."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을 조금 각색해 보자면 '우리가 한 쿼터(1/4)만 먼저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어도 연말에 그렇게 후회하지는 않을 텐데'로 바꿔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여름에서 가을을, 가을에서 겨울을 가늠할 수 있다는 건 두 발을 땅에 딛고도 다가오는 내일을 맞이하는 담담함을 가진 거란 얘기일 테니 말이죠. 


07. 

말이 좀 돌고 돌았지만 저는 추석 연휴가 끝난 지금, 그리고 4분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지금이야말로 우리 자신에게 연하장을 보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발송한 연하장은 12월이 되어서야 우리에게 다다르겠지만 그 기간이 눈 깜짝하면 지나있을 시간이라는 건 모두가 동의할 테니까요, 적어도 남은 3개월 남짓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08. 

그마저도 벅차다면 또 하나 옵션이 있습니다. 바로 남은 이 4분기 역시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구분해 보는 겁니다. 오늘부터 딱 11월 15일까지 할 수 있을만한 것들을 리스트업 해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싶어요. 그럼 11월 14일에 남은 후반전을 맞이하는 느낌은, 그걸 기획해 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만큼 클 테니 말이죠. 쪼개고 쪼개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의 수준에 이른다고 해도 전반전과 후반전이 주는 매력은 여전히 유효할 거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거든요.  


09. 

저는 '간절기'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계절과 계절 사이라는 이 말은 어찌 보면 일종의 그레이 존(Gray Zone)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잘 알다시피 그레이 존은 활용하기 나름입니다. 누군가는 그냥 지나쳐가는 지점일지 몰라도 또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기회가 될 수 있거든요. 이 간절기의 끝을 붙잡고 얼마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리스트업 해보는 것도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고 봅니다. 어쩌면 그게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10. 

절반을 의미하는 'half'는 그 어원이 불분명한 단어로 구분되지만, 언어학계의 추론에 따르면 '자르다'에서 왔다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보충 설명을 하자면 반으로 쪼개는 것에 집중한 게 아니라 뭔가를 자른다은 지금 내 앞에 남아있는 것에 집중한 게 'half'가 되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1,2,3 분기 모두 시원하게 말아 드셨더라도 지금 내 눈앞에 남아있는 이 4분기, 마지막 쿼터에 힘을 실어볼 수도 있는 겁니다. 그게 내 몫이자 내 결과물일 수 있을 테니 말이죠.  

그러니 연휴가 지난 이후 후유증이 오려고 할 때쯤엔 이런 마인드를 가져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제 진짜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마지막 half and half가 남았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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