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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Oct 09. 2023

거울치료가 의미 없는 사람들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44

01.

요즘만큼 '거울치료'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가 있었나 싶습니다. 자신과 동일한 행동을 하는 상대방을 보며 반성하는 행태를 흔히 거울치료라고 하죠. 19세기 들어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실제 치료 방식으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미 그 옛날부터 '반면교사(反面敎師)'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를 강조한 것 보면 기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오래된 개념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화된 동물인 인간의 적절한 학습 행태이기도 한 것 같고요.


02.

하지만 이 거울치료라는 건 그 효과가 극과 극이라고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정신분석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이유고 무엇인고하니 자기객관화 능력이 적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이 거울치료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죠. 오히려 자신과 동일한 방식의 잘못된 행동을 보여주면 그 순간부터 본인과 타인을 완벽히 분리해서 자신의 과오조차 다른 사람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행태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독일계 심리학자 레온 빈트샤이트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03.

비슷한 사례를 10여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예능인이 평소 본인이 탐탁지 않아 하는 후배 예능인과 함께 심리 상담을 받았는데, 서로를 싫어하는 단점을 쓰라고 하니 두 사람 모두 동일한 이유를 써낸 것이죠. 

이를 두고 심리 상담을 진행한 전문의 선생님은 '상대방의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본인 역시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불균형'이라고 했습니다. 이 또한 거울치료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란 것이죠.


04.

사회생활 속에서도 똑같습니다. 가끔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는데, 바로 자기가 가진 단점은 보지 못한 채 그 단점을 가진 타인을 나무라는 사람을 만날 때입니다.

본인은 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누군가 상대방에게 생채기를 내는 발언을 하면 마치 만나서는 안될 사람을 마주한 것처럼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경우를 봅니다. 혹은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의 뒷담화를 하거나 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동의도 없이 퍼뜨리면서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혐오의 끝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죠.


05.

굳이 이런 긴 얘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협업하고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 그렇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렵습니다만...) 늘 스스로 자기객관화를 위한 의무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 중요성을 인식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적어도 때때마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 역시 거울치료가 통하지 않는, 이른바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밟을지 모르기 때문이죠.


06.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주는 누군가의 단점을 기준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뭐 잠자리에 들기 전 반성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도, 매일 감사일기를 쓰라는 그런 뜻도 아닙니다. 

대신 적어도 '아 저런 사람 진짜 별로다', '저런 행동을 왜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드는 그 타이밍에 화살을 나 스스로에게 한 번 돌려보는 겁니다. 반면교사, 타산지석이라는 교훈이 생활 속에 녹아들게 만드는 것이죠.


07.

심리학을 전공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가끔 사람들이 말하는 메시지들이 너무 크게 다가올 때가 있어'라고 했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거 오히려 좋은 거야. 정신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가 아니라면 그런 감정이 있어야 자기객관화가 가능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저 모든 순간에 양팔로 자기 스스로를 감싸며 '잘했다, 고생했다, 너는 소중한 사람이다, 내 마음이 다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무조건적으로 자존감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08.

오히려 끊임없이 스스로를 확인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타인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자기 확신의 순간을 더 잘 감지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유럽에서는 부모들이 어린아이를 훈육할 때 '울지 마'라는 상황종료형(?) 말 대신에 '이게 왜 울 일인지 나한테 설명해 봐'라고 이야기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리 어려도 자신의 상황을 우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다음 비로소 자신의 감정 표현을 하게 만드는 교육 방식인 겁니다.


09.

그래서 저는 여러 명이 모여 특정한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만들어낼 때 의도적으로 이런 말을 해보려고 합니다. '저도 무심코 그런 행동하지 않게 조심해야겠어요'라고 말입니다. 그럼 대부분은 '에이 그럴 리 없어요'라며 편을 들어주는 얘기를 해주지만 그것만큼 걸러들어야 하는 말도 없더라고요... 누군가 우리의 언행으로 상처 입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조용히 아파하고 있을 확률이 훨씬 크기 때문이죠.


10.

그러니 매일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사는 삶은 살 수 없더라도 거울치료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뻔뻔한 삶을 살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자존감도 좋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것도 다 필요한 삶의 지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정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올바르게 볼 수 있고, 고쳐야 되는 부분은 먼저 나서서 정비하고 고칠 수 있는 능력. 그 능력만 가지고 있어도 타인을 대하는 일의 절반은 이미 해결된 상태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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