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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Oct 13. 2023

오마카세를 먹다 깨달은 '관심 비용'에 대해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45

01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스시 오마카세입니다. (뭐 다들 좋아하시죠.. 비싸서 그렇지..) 

음식이 맛있고 훌륭한 것도 있지만 저는 무엇보다 앞에 계신 셰프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먹는 재미가 참 좋더라고요. 재료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고,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지를 가이드 받는 것도 흥미로워 이왕이면 '다찌'라고 불리는 바 형태의 자리에 앉고자 노력합니다.


02 . 

어제도 지인분들과 식사를 하다가 앞에 계신 셰프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스시집에 가서 맛있게 대접받는 방법 중 하나는 내 반응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겁니다. 셰프는 그걸 보고 판단하거든요. 똑같이 '음~'이라고 하며 드셔도 그다음 초밥을 드렸을 때 '음!!!!!'이라고 하면 저는 그 손님의 미각에 대한 기준이 생기죠. 뭘 좋아하고 어떤 포인트에서 더 좋았는지를 체크할 수 있으니까요."


03 .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제법 음식의 가짓수가 쌓여가자 저도 모르게 각 순서마다 다른 리액션이 나오더군요. 그걸 보신 셰프님은 놓치지 않고 말씀하셨죠.

"제가 말씀드린 게 이런 거예요. 분명 아까도 맛있게 드셔서 제 기분이 좋았지만 이번 건 정말 맛있어하시는 게 훨씬 크게 체감되거든요. 음식을 만드는 중간에도 계속 손님의 반응을 체크해야 해요. 그게 이 일이 어려운 이유죠."


04 . 

그 말을 듣고 나니 순간 제가 하는 일로 관점이 좀 옮겨지더군요.

사실 다찌에서 스시를 만드는 장인이나 콘서트 장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 같은 직업이 아니고서야 소비자의 반응을 라이브로 감상하며 내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 흔치는 않습니다. 게다가 기획일처럼 아이디어 하나에서 출발해 그게 실제 눈에 보이는 작업물로 이어지고, 대중에게 알려지는 시점까지 가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죠. 그렇게 낸 결과물이 소비자의 호응을 얻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데미지는 훨씬 큽니다. 냉정히 얘기하면 공들인 그 긴 시간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05 .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많은 기획자들이 오로지 '지표'에만 매몰되는 현장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해 방지 차원에서 말씀드리면 지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10여 년 넘게 일하며 이른바 'Number talks'라고 불리는 지표 위주의 의사결정이 가져오는 합리성과 수익성을 제 두 눈으로 지켜보기도 했으니까 말이죠.


06 . 

하지만 새삼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지표를 봐야 하는 순간이 있고 현장감을 봐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일하던 부서에서 마케팅 일환 중 하나로 팝업스토어를 하느냐 마느냐로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 적이 있습니다. 팝업스토어 같은 게 브랜딩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지표로 확인할 수 없는 가치에 지금 당장 투자하는 게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죠. (아마 비슷한 사례들을 많이 겪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신입 연차의 한 동료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근데 저는 저희 사용자들의 표정이 보고 싶은데 그건 이유가 안될까요?"


07 . 

그때 정말 다 같이 얼어붙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용자의 표정을 관찰하며 우리 서비스를 이용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경험하고, 이야기하고, 피드백하는지를 실제로 보고 싶다는 얘기에 가치의 관점 자체가 달라진 것이니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팝업스토어는 무산되었지만 저희는 방향을 틀어 라운지 테이블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습니다. 사용자의 생생한 반응을 얻고자 하는 거라면 충성도가 높은 일부 사용자들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들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거죠. 


08 . 

그래서 저는 기획하는 사람들은 가끔은 의도적으로 다찌(?)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몇 명이 방문하고, 몇 접시를 팔고, 얼마나 재고관리를 잘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매출이 뛰는지를 분석하는 것도 너무너무 중요하지만 때로는 우리 고객이나 사용자들의 그 '음~'과 '음!!!!'을 구분할 수 있는 미묘한 감각을 길러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래야 지표 사이사이에 있는 아날로그적인 이음새를 발견하고 그 틈을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으니 말이죠. 


09 . 

"왜 테이블보다 다찌 자리가 1만 원이라도 더 받는지 아시나요? 어떤 분들은 다찌에 앉아야 서비스가 많이 나온다고 오해하시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다찌는 일종의 '관심 비용'입니다. 저희가 그 손님들에게 한 마디라도 더 설명할 수 있고,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드리며 잘 케어할 수 있는 비용이죠."

마지막 디저트를 내놓기 전 셰프님께서 제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10 . 

여러분은 혹시 각자의 영역에서 얼마만큼의 관심 비용을 쓰고 계신가요? 주방 깊숙한 곳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요리에 몰두하는 것도 존경받을 만한 일이고, 더 나은 매니지먼트를 위해 작은 것 하나까지 숫자로 관리하는 노력도 위대한 일이지만 저는 이 현장감을 만끽하고 분석하려는 자세 역시 리스펙 받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신경을 쏟고 관심을 기울일 때만 얻을 수 있는 그 본연의 맛이 또 있는 것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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