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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Nov 24. 2023

협업을 위한 적정 온도 유지하기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55

01 . 

며칠 전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 박진영 님이 출연한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무심코 틀어놓고 멍 때리며 보고 있는 와중에 영상이 끝날 무렵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건 협업을 숙명으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고하는 일종의 애티튜드 바이블과도 같았죠. 그래서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그의 말들을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로 발언한 관계로 일부는 자막 인용 대신 의역하여 전해드립니다.)


02 . 

"회사를 이끌면서 느낀 한 가지 사실은 제가 우울해하거나 슬퍼하거나 혹은 기분이 다운되어 보일 때면 저와 관련한 모든 사람들이 이를 불편하게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있더라도 저는 농담을 하고 때론 우스꽝스럽게 보이기까지 해야 하죠. 그건 모두가 다 편한 마음으로 일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건 저 뿐만 아니라 저희 아티스트들에게도 강조하는 포인트입니다. 스트레이 키즈나 트와이스 같은 어린 친구들 역시 늘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죠. 하지만 저는 '네가 우울해 보이고 슬퍼 보이고 다운되어 보이면 그건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라는 걸 기억해. 이건 우리의 숙명이기도 해. 아무리 힘들 날이 있어도 우린 농담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주위 사람들이 편하게 일하고 있는지 체크해야 해.'라고 말합니다."


03 . 

발언 자체만 두고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한편에서는 '어떻게 내 마음이 문드러지는 와중에 내색은커녕 억지로 웃고 농담까지 던질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다른 사람 편하게 맞춰주다 정작 나부터 무너질지 모르는데...'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이 발언의 취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협업을 위한 적정 온도'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04 . 

회사와 같은 공식적인 조직이든 아니면 여럿이 함께 모이는 커뮤니티 같은 모임이든 늘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공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으면 같이 웃고, 내가 싫으면 같이 비판하고, 내가 화나면 내 편을 들어주고, 내가 짜증 나면 나를 달래줄 사람을 바라는 케이스가 다반사죠. 다 같이 생활하는 공간임에도 본인 추울 때는 보일러를 틀고 다시 더워지면 냉큼 창문을 열어야 직성이 풀리는 유형인 셈입니다. 


05 . 

저도 11년 넘게 일을 하며 적지 않은 유형의 인간 군상들을(?) 만나봤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본인의 감정 온도에 타인을 맞추게 하려는 사람치고 좋은 협업 태도를 갖춘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오히려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더 깊은 진흙탕으로 밀어 넣고 함께 으쌰으쌰하는 순간에도 곳곳에 소금을 뿌려대기 바빴으니 말이죠. 


06 . 

더 무서운 건 본인은 그런 자신의 태도를 아주 솔직하고 뒤끝 없는 스타일로 규정하고 있더라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뒤끝은 없겠죠... 앞에서 그렇게 다 보여주는데... �) 물론 회사 같은 조직 생활 안에서 갈등을 회피하는 것 역시 큰 문제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게 좋다는 태도도, 나는 큰 문제에 휘말리기 싫다는 태도도 환영받지 못하는 건 똑같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스스럼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솔직한 피드백이고 타인이 본인에게 반하는 주장을 하거나 하물며 본인의 기분을 맞춰주지 못하는 것은 불편한 피드백이라 치부하는 것은 협업하는 관계의 기본조차 모르는 행위일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는 단 한 명도 없을 테니 말이죠. 


07 . 

그래서 저는 박진영 님의 말이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조금 기분이 언짢거나 그날 하루가 유난히 버겁더라도 일단 모두를 위해 적당한 배려 정도는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게 요지니 말이죠. 특히 본인이 조직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는 더더욱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등한 위치에서도 타인이 발산하는 불편한 감정은 고스란히 전해지기 마련인데 지위고하의 차이가 커질수록 리더 한 명이 내뿜는 부정의 기운은 조직 전체를 집어삼키기 때문이죠. 


08 . 

멀리 갈 것도 없이 제 과거의 기억에 비춰봐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조직원들을 위해 최소한의 감정 컨트롤이 가능한 리더에게는 오히려 저희가 먼저 다가가 문제 해결을 돕고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고 싶었던 것 같거든요. 반대로 자신의 감정 표현이 우선인 리더 앞에서는 그저 서로 '제발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나가라... 적어도 나한테는 불똥이 튀지 않았으면...'이라는 마음만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일의 본질보다는 그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게 조직원들의 주요 관심사였고 말이죠. 


09 . 

어쩌면 우리가 협업을 위한 온도를 신경 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춥다고 당장 보일러 앞으로 달려갈 게 아니라 우선 외투 한 겹 껴입고 양말에 슬리퍼부터 챙기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전체의 온도를 방해하는 일은 줄어드니 말이죠. 그래서 저 역시도 예전엔 '표정을 못 숨긴다',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 자신이 투명한 사람인 것마냥 칭찬해 주는 것 같아 나쁘지 않은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은 뜨끔한 마음이 앞섭니다. 저의 성급함으로 이 협업의 장을 교란시켜 놓은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니까요. 


10 . 

자신의 의사를 당당히 표현하라는 게 누군가를 매너 없이 쏘아붙이라는 말은 아닐 겁니다. 남 의식하지 말고 본인을 소중히 생각하라는 말 역시 배려의 기본을 팽개치고 네 멋대로 살라고 가르치는 게 결코 아닐 거고요. 그러니 저는 '나의 편함'과 '상대의 불편함', '나의 불편함과 상대의 편함' 사이의 온도를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어야 비로소 협업이라는 게 가능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변온 동물이 생존에 유리한 이유도 단순히 외부 환경에 본인을 맞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온도를 감지하고 나는 어떤 수준을 유지해야 하나 하는 그 영특한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일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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