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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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엔 저희 독서모임의 멤버분들과 한 시즌을 마무리하고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이드 프로젝트'에 관한 간단한 세션을 진행하며 제 생각을 나누었는데요,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이제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이기도 하고 새해가 되면 모두가 각자의 본업에서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만큼 사이드 프로젝트를 주제로 던져본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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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허가되는 범위 안에서는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이따 끔식 강연도 하며 나름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그런 제게 '도영님은 그래도 리프레시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좋겠어요. 일 외에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게 부러워요'라고 말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이런 일련의 프로젝트들이 즐겁기도 하고 또 제가 지금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주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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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방금 그 말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마치 사이드 프로젝트가 일이 아닌 놀이처럼 할 수 있는 대상이란 뉘앙스와 그 과정이 늘 즐거울 거라는 관점이죠.
일단 사이드 프로젝트가 일이냐 아니냐부터 구분해 보겠습니다. 저는 이 부분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다른 분들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게 사이드 프로젝트는 철저하게 일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인데요,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게 '본업'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냥 재미 삼아 설렁설렁 여유롭게 접근했다가는 그걸 본업으로 하고 있는 분들과의 결과물을 비교했을 때 엄청난 퀄리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 사이드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디폴트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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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오늘의 주제인 '실행동력'에 관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제가 질문을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하고 덕분에 책을 낼 기회도 얻었는데요, 그런 제가 '와! 나 정말 글 너무너무 잘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과연 그때는 언제일까요?
바로 출판사로부터 계약금이 입금되었을 때입니다...... 이건 제가 속물이거나 자낳괴라서 드리는 얘기가 아니라 이 계약금이 주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계약을 하는 순간은 기쁨으로 가득차도 계약금이 들어오면 마냥 기쁠 수많은 없는 거죠. 그 현실의 무게가 두 뺨을 확 때리며 다가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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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원동력이라는 것과 실행동력이라는 것, 이 두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동력이란 말 그대로 어떤 움직임의 근본이 되는 힘입니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게 만들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근원이 되는 게 바로 이 원동력이죠.
저는 원동력에는 기대감, 만족감, 성취감, 자존감 같은 긍정적인 것들이 연료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즉, 내가 저 일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주어질지에 대한 달콤한 예상과 긍정적인 기대가 발동하는 거죠.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라도 제 글을 읽고 재미있어하거나, 작은 도움이라도 얻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기쁘고 두근거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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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를 책상 앞에 앉히고,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게 만들고, 그 글을 집요하게 고치게 하고, 더 좋은 단어와 표현을 고르게 하고, 편집의 마지막 순간까지 예민한 촉각으로 모든 요소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은 그런 달다구리한 감정들과는 좀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그건 오히려 의무감, 책임감, 압박감, 죄책감 같은 감정들이거든요. 다시 말해 내가 저 일을 제대로 못해내거나 실망스럽게 마무리했을 때 들이닥칠 후폭풍들에 대한 우려가 실제로 저를 움직이고 제가 하는 일을 완성하도록 하는 것이죠. 저는 이게 바로 실행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동력이 이상이라면 실행동력은 지극히 현실에 해당하는 영역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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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할 때는 이 현실과 이상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하고 그 답이 조금이나마 긍정적이고 밝은 면모를 갖추고 있을 때 우리는 좋은 방향으로 그 일을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원동력이 무너지면 우리는 성장에 대한 어떠한 욕구도 느낄 수 없을 거예요. 기대와 이상이 없는 곳에서 갑자기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길 리는 만무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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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바로 섰다면 이제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합니다. 가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 중에는 매번 새로운 것에 대한 아이디어만 방출하다가 그냥 공상과학 같은 의견들만 나누고 헤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상을 그렸으면 이제 현실로 내려와 실행동력들을 확보해야 하는 데도 여전히 열기구를 타고 더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버리고 마는 것이죠.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그런 방식을 통해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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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누군가 사이드 프로젝트에 관한 의견을 물어보면 '근데 이것도 철저히 일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셔야 해요'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혼자서 하는 프로젝트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하는 형태라면 더더욱 이 부분을 명심해야 한다는 첨언까지 곁들이죠. '우리 이렇게 모인 김에 재밌는 거 뭐라도 해봅시다'라는 것도 '그런데 우리가 이 목표를 실행하려면 최소한 이런이런 장치들은 마련해둬야 합니다'라는 부분이 뒷받침될 때 그 동력이 힘을 갖는 것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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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1월도 며칠 남지 않았고, 분명 12월도 어영부영 지나갈 확률이 높습니다. (악담은 아닙니다... 경험에 근거한 예측이랄까요...) 그러니 '와! 진짜 내가 새해부터는 새사람으로 태어나서 진짜 멋진 목표들 세우고 1월 1일부터 완전 다 뿌신다 진짜!'라고 외칠 게 아니라 무엇이 나의 원동력이고 무엇이 나의 성장동력인지를 구분해 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그러다 보면 '왜'라는 질문과 '언제, 무엇을, 어떻게'라는 질문 역시도 좀 더 선명해질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