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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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상에 뭔가 많이 올려두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집에서 쓰는 책상은 물론이고 회사 책상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가끔 팀 사람들이 '도영님은 퇴사하는 사람처럼 퇴근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던지고는 합니다. 출근하면 꺼내 올려두는 게 휴대전화, 에어팟, 노트, 필기구 몇 개 정도니까요. 그마저도 퇴근할 땐 장사판 접는 사장님처럼 말끔하게 회수해(?) 집으로 돌아가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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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가 유일하게 책상에 자주 올려두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책입니다.
물론 책상의 일부를 마치 책장처럼 활용하며 여러 권의 책을 꽂아두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최근 읽고 있는 책 한 권 정도만 책상에 둡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제 주위를 오가던 사람들도 제가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책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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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런 자랑(?) 용도로 책을 두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책상에 책을 올려두는 건 일종의 마인드셋에 가깝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기획 업무를 하다 보니 새로운 업무에 들어가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할 때와 자주 마주치는데 이때마다 저 스스로 어떤 관점과 마음가짐으로 그 업무를 대할지 첫 자세를 잡는 게 참 중요하더라고요. 어떤 때는 하기 싫은 일에 최대한 정을 붙여보려 노력할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꽤 재미있어 보이는 일이라 저 자신이 오버하지 않도록 최대한 차분해지려는 노력을 할 때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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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저는 그 순간에 필요한 관점을 담은 책들을 한 권씩 올려놓습니다. 그럼 왠지 그 책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이따끔씩 머리 회전이 잘 안되면 책을 펼쳐서 단 5분이라도 잠깐 읽는 과정을 반복하기도 하지만 사실 꼭 그러지 않더라도 내 가까이에 그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일종의 부적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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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제 나름의 이야기를 풀어놔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는데, 이때 저는 제 책상 위에 제현주 작가님의 ⟪일하는 마음⟫이란 책을 올려두었습니다. 몇 해 전에 꽤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라 언제 한 번 꼭 다시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책상 위로 불러들인 것이죠.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라는 생각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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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제로 다시 책을 펼쳐서 읽은 시간은 몇 분 남짓 되지 않았지만 그런 제목의 책이 제 책상을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마음을 다잡게 되더라고요. 저는 늘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건 잠깐이나마 그 작가의 생각을 빌어 살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책을 끼고 일을 시작하면 조금은 새로운 마음가짐을 장착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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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분이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그럼 도영님께는 책이 일종의 유니폼 역할을 하는 거네요. 왜 제복을 입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 옷을 입는 순간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하잖아요. 도영님이 책상에 책을 올려두는 것도 비슷한 의미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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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그 말을 들으니 진짜 제겐 책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았어요. 솔직히 가끔 죽기보다도 싫은 일과 마주쳐서 책상에 앉기조차 싫을 때, 문득 책상 한 켠에 있는 책을 보면 일종의 작은 죄책감 같은 것도 느껴지거든요.
'저 책 읽을 때만 해도 온갖 좋은 생각은 다했었는데... 현실에서 또 이렇게 투덜대고만 있을 수는 없겠구나' 하면서요.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가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함일 텐데 책 읽을 때 마음 따로, 책상에 앉을 때 마음 따로면 그런 나약한 애티튜드도 없겠다 싶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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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 당장 읽지 않아도 좋으니 책상 위에 책 한 권 정도 올려두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꽂아두지 말고, 여러 권의 책과 함께 두지도 말고 언제든 손을 뻗으면 잡힐 만한 거리에 딱 한 권을 두는 게 더 좋다고 권하죠.
더불어 마치 그곳에 영원히 있을 것처럼 두지 말고 업무에 따라 또 기분에 따라 다른 책으로 바꿔 가져다 두는 걸 반복해 보라고 말합니다. 정말 별것 아닌 일처럼 보여도 그 작은 행동이 주는 마음가짐의 변화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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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여러분도 한 주의 시작은 맘에 드는 책 한 권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것으로 출발하면 어떨까요? 혹시 친한 동료가 있다면 그 사람의 책상 위에 한 권을 선물해 주는 것도 좋고요. 그리고는 귀찮고, 힘들고, 짜증 나고, 하기 싫은 순간이 올 때마다 그냥 그 책 한번 집어 들어서 휘리릭 넘기고 맘에 드는 부분은 5분 정도 가볍게 읽어보는 겁니다. 마음가짐이란 게 거창해 보여도 사실 어떻게 책상 앞에 앉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그 순간에 맘에 드는 제목이 눈에 띄도록 세팅해두는 것 역시 어쩌면 내 마인드셋을 현명하게 관리하는 비법일지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