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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Dec 11. 2023

타인의 언어는 나의 세계를 넓혀 주는 법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59

01 . 

최근 황석희 번역가님이 쓴 ⟪번역 : 황석희⟫라는 책을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세이 중에서도 직업 에세이를 참 좋아하는 편인데, 자신의 직업 세계를 풀어놓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그 사람이 일과 삶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저의 책 취향을 두고서 친한 친구는 '직업적 관음증'이라는 음침한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의미를 따지고 보니 딱히 부정도 못하겠더라고요. 


02 . 

책을 좋아하는 분들 중에 유독 에세이를 멀리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왕이면 도움 되는 정보나 지식을 얻고 싶지 굳이 한 개인이 미주알고주알 자기감정을 풀어놓는 이야기에 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드러나는 거죠. 

어떤 말씀을 하고 싶은 건지 저도 일견 이해가 갑니다. 저 역시 에세이를 고르면 열에 서너 편은 실패(? )하거든요. 글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걸까?' 싶은 생각과 마주치는 순간도 있고 말이죠. 아무리 에세이가 개인적인 글이라고 해도, 글에서조차 감정 컨트롤이 안되는 사람이 실생활에서 보여줄 모습을 상상해 보면 절로 고개가 가로 저어질 때도 많습니다. 


03 . 

대신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세이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남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읽는 이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는, 가장 기초적이고도 본질적인 고민이 묻어나는 글이 저는 참 좋습니다. 그럼 설령 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나름 예의 있게 서로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거든요.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지는 알겠는데 저는 또 생각이 좀 다릅니다' 같은 말을 속으로 나즈막이 읊조리며 책장을 넘기는 게 되니까요, 글쓴이의 배려가 읽는 이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는 거죠. 


04 . 

두 번째는 글의 목적성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에세이입니다. '아니 에세이에 목적이 있어?'라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에세이야말로 작가로 하여금 펜을 들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존재하는 분야죠. 심지어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끄집어 내게 만드는 힘을 생각해 본다면 그 목적성이 어디로 향하느냐는 꽤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하지만 많은 글이 이 목적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게 참 안타깝죠. 그래서 어떤 글은 읽는 내내 글쓴이의 속임수에 놀아나는 느낌마저 듭니다. '이걸 이야기하려고 하나' 싶으면 또 막상 그 얘기는 온데간데없고 '혹시 저걸 말하고 싶은 건가'하면 그마저도 최종 목적지와는 1도 상관없기 때문이죠. 이런 사태가 반복되면 일종의 에세이 포비아에 빠지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05 .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자신만의 언어가 있는 에세이입니다. 저는 이 포인트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 한 토막이라도 그게 그 사람이 가진 언어로 전달될 때는 전혀 다른 에너지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뻔히 아는 이야기더라도 마치 다른 차원을 탐험하는 것 같은 황홀한 시간과 조우하게 되죠. 저는 이게 언어가 가진 매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이야기하는가, 그 사람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 그리고 그 언어는 우리를 어떤 세계로 안내하는가. 이 세 가지 물음에 매력적인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글은 읽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으니 말이죠.  


06 .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자기 언어가 있다는 것이 마치 말을 유려하게 잘한다거나 글을 화려하게 잘 쓰는 개념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업무를 함에 있어서도 말과 글을 다룰 일이 많은데요, 그때마다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오히려 번지르르한 말이나 글에 훨씬 큰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과도한 의미 부여, 정도를 넘어서는 비유와 상징, 자기감정에만 기대서 추출한 표현들을 '본인의 언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수렁에 빠지는 참사가 일어나거든요.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꽤 괜찮은 글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도 쉽게 다가갈 수조차 없습니다. 그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니까요. 


07 . 

대신 자신만의 좋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은 늘 타인의 세계와 자기 세계를 구분할 줄 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타인이 주는 메시지도 자신의 언어로 해독할 줄 알고 반대로 자신이 발신하는 메시지 역시 타인의 언어로 번역해 줄 줄 아는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이들은 늘 적확한 단어를 찾고 좋은 화법을 개발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므로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이 정리되고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입니다. 저는 이게 좋은 언어가 주는 선순환이라고 생각해요.


08 . 

조금 다른 얘기지만 책을 내고 나서 듣는 칭찬 중 가장 기분 좋은 칭찬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네 글을 읽으면 마치 네가 옆에서 얘기해 주는 것 같다'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도영님만의 언어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라는 말이죠.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면 '글에서의 나와 평소의 내가 크게 이질적이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감정과 '그럼에도 내 나름의 언어 세계를 다른 사람 역시 느끼고 공감해 주는구나'라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떠오릅니다. 그럴 때면 글쓰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09 . 

그렇다고 누구나 의도적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게 좋으니까요. 다만 나만의 언어를 갖추고 있다는 건 타인의 세계에 작게나마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한 번쯤은 기억해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군가는 그 언어를 통해 자칫 뻔할 수 있던 이야기도 큰 감동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영향으로 간직할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죠. 


10 . 

어쩌면 제가 에세이 읽기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가끔은 제목과 작가 프로필만 봐도 어떤 이야기를 할지 훤히 유추되는 글도 많거든요. 그럼에도 기쁜 마음으로 책장을 펼칠 수 있는 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궁금하고 그 언어로 안내하는 세계가 궁금해서인지는 아닐까 싶네요. 

그러니 여러분도 한 번쯤은 누가, 어떻게 말하는지에 주목하며 글을 읽어보는 것도 꽤 괜찮은 시도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하는 건 결과적으로 내 세계를 넓혀주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때로는 누군가의 언어에 나를 온전히 맡겨보는 것도 흥미로운 여행이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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