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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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요. 우리 사회에 '집중력'이 화두로 떠오른 게 말이죠. 제 기억이 맞다면 약 5-6년 전부터 유난히 집중을 키워드로 한 책과 콘텐츠가 유행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집중력을 도둑맞았다고 했고, 어떤 이는 신경 끄기에도 기술이 있다고 하더군요. 한편에서는 나를 넘어서는 마지막 힘이 몰입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곳에선 몰입을 빼앗긴 시대에 꼭 필요한 뇌 사용법이 인스타 브레인이라고까지 소개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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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과 몰입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개념들의 기원과 어원부터 시작해서 집중과 몰두와 몰입의 차이, 신경 쓰임과 산만함의 구분에 이르는 다양한 것들을 끄집어 내야 하니 오늘은 욕심내지 않고 '집중'과 '산만함'에 대해서만 한 번 다뤄보겠습니다.
우선 토막 상식 하나를 알려드리며 시작해 볼게요. 집중을 뜻하는 영단어 중 하나인 focus라는 말은 사실 그 기원이 아주 오래된 단어입니다. focus는 난로를 뜻하는 라틴어에서부터 유래했는데 불을 피우면 사람들이 난로 주위로 하나둘씩 모이는 현상에서 '집중'이라는 의미가 파생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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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집중은 크게 두 가지 성질을 가집니다. 흩어진 것들을 한데 모으거나 혹은 가장 필요한 것만을 남긴 채 나머지를 모두 지워주는 성질이죠. 그래서 대다수가 집중력을 논할 때는 어떻게 산만함을 관리할 것인가, 주의 신경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말 그대로 무엇에 '포커스'를 맞출 것인지 결정하고 나면 적어도 그 순간부터는 그 이외의 것이 여집합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포커스 되지 않는(unfocused)' 것들을 과감하게 날려버려야 하는 시점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집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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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나와있는 훌륭한 책들이 많으니 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한 번 접근해 보겠습니다. 그러려면 우선 새로운 관점 하나가 필요한데요, 저는 우리의 집중력이 쉽게 깨지는 이유 중 하나가 다른 무엇인가에 새로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집중력이 낮아진다는 의미는 내가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상태이기도 하지만 이는 다른 대상으로의 새로운 포커싱을 뜻하는 것이기도 한 거죠. 시험 기간에는 평소 거들떠도 안 보던 뉴스마저도 재밌어지고 책상에 모기 한 마리만 나타나도 즐겁다는 게 우스갯소리만은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의 집중은 책에서 뉴스나 모기로 새로운 초점을 향해 이동한 것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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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집중을 잘 하기 위해서는 산만함을 의도적으로 설계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나 자신의 집중력을 무한 신뢰하기보다는 집중력이 떨어질만한 그 시점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해서 어김없이 나를 찾아올 그 산만함을 현명하게 맞이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죠. 뜬금없는 말장난같이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이건 뇌과학자들도 꽤 유용하다고 인정한 방법이고 세계적으로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낸 인물들도 즐겨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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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투자자라는 명성만큼이나 콜라 매니아로 알려져 있는 워런 버핏의 경우 집중력이 흐려질 때마다 콜라캔을 강하게 흔든 다음 책상에 거꾸로 세워둔다고 합니다. 이는 현재 자신의 머릿속이 복잡하고 산만해진 그 장면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어서라고 하는데요, 마치 터질 것처럼 탄산으로 요동치는 그 콜라 캔 속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간다고 상상하면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잡념도 그 과정을 따라 천천히 집중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산만한 상황'과 '집중을 회복하는 상황'을 비주얼라이제이션 해보는 거라고도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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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 옹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저 역시도 나름의 산만함 관리법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 집중해서 뭔가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최대 30-40분 남짓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그 이상 계속 붙들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효율도 떨어지고 점점 관성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저 자신도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뭔가를 할 때 30-40분 정도가 지나면 의도적으로 2-3분가량의 간단한 다른 활동을 의도적으로 끼워 넣습니다. 즉 점차 집중이 흐트러질 바에야 내가 먼저 집중을 깨고 의식적으로 리프레시 하겠다는 다짐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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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가벼운 노래 한 곡을 듣거나 잠깐 책을 보면서 다른 텍스트를 눈에 담기도 합니다. 새로 커피를 내려오거나 룸 스프레이 같은 걸 뿌리는 행동도 자주 하죠. 가끔은 소소한 집안일을 미뤄놨다가 집중력이 약해지는 시간에 맞춰 의도적으로 손발을 움직이려 할 때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집중이 흐트러져 맘에도 없는 다른 것에 또 집중하게 되는 상황을 막고자 산만함의 길목마다 의도적인 미션들을 배치해두는 것이죠. 저는 이 방법이 꽤 잘 맞았고 하루 종일 긴 과제를 해야 할 때는 45분 뒤 15분 휴식(혹은 딴짓)을 하며 꽤 여유로운 텐션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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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집중력이 탁월한 사람, 무엇인가에 쉽게 몰입하는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일 겁니다. 저만해도 운동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처럼 저 자신이 뭔가에 푹 빠져 있는 순간에는 오히려 그 몰입이 깨지는 것이 더 걱정스럽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세상에 맘에 드는 일만 할 수 없듯 무엇인가에 에너지를 쏟아 집중해야 하는 때와 마주한다면 내 자신이 산만해질 수 있다는 걸 쿨하게 인정하고 그 함정을 역으로 이용하는 게 더 좋은 자세라는 이야기를 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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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에서는 즐길 거리가 너무 많아진 세상이 우리의 집중을 방해한다고 하지만 그게 꼭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휴대전화며 태블릿PC며 각종 흥미거리들을 반납한 채 책상 하나와 조명 하나만 놓여있는 방에 우리를 집어넣는다고 해서 100% 집중력을 발휘할 리는 만무할 테니 말이죠.
그러니 집중은 그 순간순간마다 무엇을 인정하고, 무엇을 포기하며, 무엇을 새로 설계할지에 대한 고민일지도 모릅니다. 맘 같아선 도낏자루 썩는지 모르고 집중할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의 비법을 알려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이 저 스스로도 개탄스럽습니다. 대신 이것 하나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현실에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달래고, 타이르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속여가며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집중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