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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an 09. 2024

노력이야말로 재능의 영역이 아닐까요?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65

01 . 

잊을만하면 학생분들께서 DM을 통해 이런 질문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저는 기획이나 마케팅, 브랜딩 쪽에 관심이 많은데 제가 봐도 딱히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분야는 감각이 좋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훨씬 유리하다고 보는데요, 이런 부분이 노력을 통해서도 극복이 될까요?'라고 말이죠. 


02 . 

아직 현업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다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질문이자 걱정거리죠. 특히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외부로 드러나는 이미지나 그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들을 주워 모아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게 나름의 노력을 하며 조금씩 자신의 안테나를 기울여가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의 훈계를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분명합니다. (저희라고 어디 처음부터 알고 들어왔나요...) 


03 . 

다만 위에서 언급한 질문에 대해서는 찬찬히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이 질문은 크게 두 가지 오류를 가지고 있거든요. 

하나는 (이미 예상하셨을 수 있겠지만) 기획이나 마케팅, 브랜딩 분야의 종사자들이 모두 감각이 좋고 창의적인 사람들인 건 아니라는 얘깁니다. 이건 위로의 차원에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엄연한 팩트입니다. 물론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본인을 잘 브랜딩 해가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은 영역임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이 역시 하나의 스타일일 뿐 업무 역량에 있어 절대적인 유리함은 아닙니다. 


04 . 

제 주위에는 아주 잔잔한(?) 인생을 살면서, 무엇 하나 특이점이 없어 보이는 캐릭터를 가지고서도 너무 훌륭하게 일을 잘하는 동료들이 많습니다. 가끔은 브랜딩 쪽 일을 한다고 본인을 소개하면 깜짝깜짝 놀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 역시도 지극히 선입견에 불과하죠. 창의적으로 보일 법한 사람이 마케팅, 브랜딩을 잘할 거 같다는 1차원 적인 접근도 잘못되었지만 무엇보다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캐릭터가 이 업무에 훨씬 유리할 거라고 보는 전제 역시 스무스하게 연결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05 . 

두 번째 오류는 '노력을 통해서도 극복이 될까요?'라는 부분에서 발견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노력이야말로 지극히 재능의 영역에 속합니다. 아니 이게 무슨 성실한 사람들에게 찬물 붓는 말이냐 싶으시겠지만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치 노력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기회이자 자신의 의지와 실행력에 달려있는 문제라고 여기지만 시각을 좀 다르게 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거든요. 바로 노력의 개인차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06 . 

흔히 공부 잘하는 사람은 머리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이보다 훨씬 중요한 건 학습 DNA라고 말합니다. 그게 그거 아니냐라는 반문이 이어지겠지만 이 둘은 정말 엄연히 다르더군요. 뇌과학자나 교육 전문가가 말하는 좋은 학습 DNA를 가진 사람이란 단순히 지능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데서 느끼는 성취감이 큰 사람, 새롭게 습득한 지식을 바로 써먹어 보는 걸 좋아하거나 다르게 변형해 보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 외부 자극 속에서도 텍스트나 이미지 등의 시각 매체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추구하는 노력의 방향이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쪽으로 향해있는 케이스라고 보는 게 정확한 거죠. 


07 . 

따라서 '노력하면 될까요?'라는 질문은 마치 '먹으면 건강해질까요?'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누구든 '뭘, 어떻게 먹는지 말씀해 주셔야 건강을 위한 건지 아님 건강을 해치는 건지 가늠이 되죠'라고 답할 게 분명하듯 '노력하면 될까요?'라는 물음에 대해서 역시 '주로 무엇을 위해 어떤 스타일로 노력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줘야 대충이라도 판단이 서는 법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밑도 끝도 없이 '노력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습니다', '재능보다 노력이 훨씬 중요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못 미덥습니다. 그들이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할 줄 알고 그렇게 말씀하시나 싶어서 말이죠. 


08 . 

만약 누군가에게 '내가 이 일을 하기에 적합하느냐'라는 의미의 질문을 하고 싶다면 본인의 성향을 위주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입니다. 

예를 들자면 '저는 똑같은 문제를 받아도 남들과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걸 좋아하고, 그런 저만의 관점을 가지고 누군가를 설득하는 걸 즐깁니다. 이런 제가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하는데 유리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야 한다는 거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역량이란 재능에 관한 적합도가 아니라 노력에 관한 적합도거든요. 그 사람이 노력하는 스타일이 우리 쪽 일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높은 스타일인지를 판단해 보는 것이기 때문이죠. 


09 . 

좀 웃긴 비유이긴 하지만 예전에 '맛있는 녀석들'이란 프로를 보다가 김준현 님이 문세윤 님을 향해 이런 말을 한 게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남들은 '잘 먹는다'는 걸 그저 '많이 먹는다', '식탐이 많다'라는 의미로 이야기하지만 우리 같은 뚱뚱이들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음식에 대한 기-승-전-결을 모두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잠들기 전에 내일 먹을 걸 미리 상상하고, 맛있었던 기억은 어떻게든 까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어떻게 해야 이전보다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니까."


10 . 

어쩌면 우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노력했다, 노력 중이다, 노력할 거다라는 그 말에 담긴 심오하고 다양한 의미를 그저 우리의 선입견으로만 판단해 실체 없는 단어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거든요. 때문에 적어도 노력에 대해 언급할 때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노력할 때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 노력이 어떤 상황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지 정도는 계속 체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노력을 언급할 최소한의 자격을 가질 수 있는 걸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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