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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an 22. 2024

속에 든 것만큼이나 '겉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70

01 . 

다른 사람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 평가임에도 나에겐 그다지 달갑지 않은 평가들이 있습니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그 평가를 두고 존재하는 각자의 시각 차이가 가장 큰 이유겠죠. 제게도 그런 평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도영님은 포장을 잘 하시네요'라는 칭찬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좀 쎄하죠..? 저 역시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가끔 이 얘기를 들으면 몸서리를 칠 정도로 싫었습니다. 마치 제가 본래의 의도나 본질을 감추고자 그럴싸한 포장을 하는 사람처럼 여겨졌으니까요.


02 . 

물론 그분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칭찬에 해당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죠.

제가 하는 업무 중에는 가장 기초적인 것들에 해당하는 상위 기획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이 어느 정도 만들어 놓은 것들을 매력적인 메시지로 묶어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브랜딩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데 정작 만든 본인들도 잊고 있거나 발견하지 못하고 있던 가치를 끄집어내어 최상단에 배치하고 매력적인 요소로 가꾸어내야 하죠. 이처럼... 나름대로... 힘들고 어렵고... 그렇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포장'이라는 단어로 퉁치려고 하시니 서운함이 생겼던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03 . 

하지만 이런 제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겉보기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대부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속에 든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겉보기로 평가하지 마라',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말도 종종 하죠. 저 역시 이 말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이 문장들과 마주할 때 우리가 꽤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게 꼭 필요하죠.


04 . 

겉으로 보이는 것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우리는 속에 든 것을 보여줄 기회조차 잡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진짜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일단 상대를 우리 가까이에 오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상 그 역할의 99%를 하고 있음은 부정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러니 속에 든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그게 어떻게 보일지 역시 매우 신중하게 고민합니다. 동시에 포장의 가치를 아주 높게 평가해 주기도 하죠. 겉치레는 눈속임에 불과하지만 포장은 '본질의 바구니'이자 '메시지를 향한 출입문'이기도 하니까요.


05 . 

조금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한 지인이 제게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나는 TV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평소에는 동료 연예인들에게 막말하고 센척하는 이미지로 밀고 나가다가 가끔 인터뷰 같은데 등장해서 '원래는 되게 여리고 상처 잘 받는 타입인데 사람들이 센 캐릭터로만 바라보는 게 속상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잘 이해가 안가. 내 옆에 있는 친한 친구조차 평소에 보여주는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데 대중에게 이미지를 판매하는 연예인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 일 수밖에 없는 거잖아."


06 . 

그 말을 들으니 겉과 속의 관계, 본질과 이미지의 관계가 더 분명해지는 것 같더군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직업상 '보여지는 것'을 기획하는 사람들이기도 한데 이 말인즉슨 '어떻게 말을 걸어 우리가 가진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지 '겉으로는 이렇지만 속은 정반대입니다'라는 반전을 주기 위함은 아니거든요. 때문에 사람들이 '뭐야.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잖아'라는 건 포장에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의미도 됩니다. 반대로 포장에 성공하면 겉과 속을 잘 이어줬다는 평가를 받는 셈이고요.


07 . 

'우리 제품은 너무 훌륭하고 멋진데 브랜딩(혹은 마케팅)이 문제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제품과 브랜딩 사이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마치 '알고 보면 나는 너무 좋은 사람인데 왜 나를 매력 있게 알려주지 않느냐'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거든요. 더불어 제품과 브랜딩을 너무 먼 거리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제품 완성 후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보자기 하나 덮어씌우는 방식이라고 받아들이면 사실상 답이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겉치레에 불과하니 말이죠.


08 .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고 나면 '포장을 잘한다'는 말은 대단한 칭찬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제게는 포장을 잘했다는 의미가 '고객들이 본질과 만날 수 있도록 잘 이끌고 왔다'는 말이자 '우리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주목시켜줬다'는 말로 들리거든요. 브랜딩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한 칭찬도 찾기 힘들죠.


09 . 

그래서 저는 '내실을 다진다', '내면을 단단히 가꾸겠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집니다. 

'내적인 실속은 외적인 성장과 같이 발을 맞춰야 하고, 내면의 단단함은 외면의 유연함과 결을 맞춰야 한다' 말이죠. (물론 실제로 하지는 않습니다... 괜히 남의 목표에 초를 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10 . 

저는 내면과 외면의 밸런스가 좋은 것들을 애정 합니다. 거기엔 물건과 브랜드도 포함되지만 실제 사람이 보여주는 인격이나 캐릭터도 해당되죠. 다른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면과 외면의 밸런스가 좋은 대상을 만나면 그 대상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무척 편안하고 즐거워집니다. 한편으론 배신감도 줄어들고 의구심도 사라지죠. 

그러니 혹시 누군가가 '저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알고 보면 속은 전혀 다른데...'라는 말을 한다면 한 번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걸 내가 지금 좋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아니면 정확히 구분하고 넘어가야 하는 건가'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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