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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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데스커 라운지에서 진행하는 Letter to Worker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데스커 측에서 후배님의 사연을 받아 그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선배를 연결해 서로의 편지를 주고받는 방식인데, 영광스럽게도 제가 선배로서 답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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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질문 편지를 보내주신 후배님은 작지 않은 고민을 떠안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쭈욱 이어온 전공과 연결된 직업을 가지게 되었지만 때로는 그 전공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도 같다는 고민이었죠. 모든 걸 훌훌 내려놓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엔 조금은 겁이 나고 그렇다고 하던 것을 계속 이어가기만 하자니 이 또한 뾰족한 답이 되지는 않을 것 같은 고민의 기로에 선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적지 않은 분들께서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편지에 답장으로 쓴 일부 내용을 한 번 옮겨 소개해 보겠습니다. (*혹시 몰라 후배님의 이름과 전공은 드러내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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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후배님께서 갑자기 본인의 전공을 등지고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이기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분야에서 10%의 새로움을 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 보면 좋겠어요. 저도 마찬가지였거든요. 남들은 '브랜딩 일은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면 하기 힘들다'고 얘기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베이스로 조금씩 브랜딩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하자 작게나마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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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10%를 새로 추가할 때마다 동시에 어떤 10%를 정리할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경험을 쌓아가는 건 여행 가방을 싸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맘 같아선 필요한 걸 다 들고 가고 싶지만 결국 우리는 허락된 크기 안에 중요한 것들만 담을 수밖에 없죠.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남겨둘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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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내가 해온 것을 모두 던져버리기엔 아깝고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는 건 겁이 날 때, 후배님도 스스로의 경험을 여행 가방이라고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세상은 너무나 쉽게 '도전하라', '부딪혀봐라'라고 이야기하지만 10%의 새로움을 채우고 익숙한 10%를 반납하는 것도 우리 같은 직장인에겐 꽤나 큰 도전임을 절대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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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후배님의 질문을 받고 나니 어쩌면 나의 한계를 단정 짓지 않는 방법은 방 한구석에 늘 여행 가방을 펼쳐두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여행을 떠날 날짜는 꽤 많이 남아있더라도 여행 가방이 보일 때마다 필요한 물건을 넣고 또 불필요한 물건은 빼내면서 내가 담고 싶은 경험의 순간을 미리 세팅해 보는 것도 괜찮은 습관일 테니까요, 후배님께서도 우선 가방부터 펼쳐놓고 한 번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그 가방에는 지금껏 잘해온 것들 사이사이로 작지만 새로운 경험들이 알차게 자리할 수 있기를 진심을 담아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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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을 다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제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조금이나마 전달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지는 사실 중 하나는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겁니다. 가끔은 우리 스스로가 짊어진 고민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게 느껴져서 모든 걸 다 털어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상상을 하곤 하지만 그건 정말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거죠. 우리라는 존재를 모두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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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위에서 소개해 드린 편지의 내용처럼 늘 내가 새로 받아들일 10%에 관심을 기울이고 또 정리해야 할 10%에 과감함을 드러내는 습관을 들여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도 유연한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보거든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한순간에 인생이 뒤바뀌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지만 사실 실전에선 삶의 각도를 1도 트는 것도 정말 힘든 법이죠. 어쩌면 우리는 이 법칙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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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한국 나이로 치자면 저 역시 올해 마흔 살이 됩니다. 그런데 40년 가까운 인생을 살아오다 보니 대놓고 '변화'를 외치는 사람보다 뭔가를 '사부작'거리는 사람들이 늘 현명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부작'은 전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꽤나 부지런했고, 또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판을 한 번 과감하게 갈아치우는 용기로 이어지기도 했죠. 대신 '변화'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저 옷 몇 번 바꿔 입고서 다시 싫증을 느끼기를 반복하고 말더라고요. 저는 그 점이 참 씁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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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여러분도 올해는 어떤 지점에서 +10%와 -10%를 실천할 수 있을지 한 번 고민해 보면 어떨까요. 아니 꼭 올해라고 한정 짓지 말고 당장 이번 달, 이번 주를 목표로 삼아도 크게 무리될 건 없을 겁니다. 한자리에 고여있지 않으려면 결국 졸졸 흐르는 수도꼭지라도 틀어놔야 하고 그게 차고 넘치지 않게 하려면 또 적당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물 흐르듯 지치지 않는 변화를 준비해 보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