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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an 18. 2024

여러분의 조직에는 코어 시스템이 작동하나요?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69

01 . 

저는 운동을 정말 좋아합니다. 남들은 제가 글 쓰거나 책 읽기 위한 시간을 따로 빼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운동을 위한 시간을 별도로 확보해두고 그게 끝나야 책을 읽거나 글을 쓰죠. (죄송합니다 편집자님...)

운동 자체를 즐기다 보니 때로는 운동을 통해서 배우고 느끼는 점도 꽤 많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시스템'에 관한 부분입니다.


02 . 

사람들이 흔히 '코어 근육'이라고 부르는 근육의 실질적인 역할은 사실 시스템에 가깝습니다. 복부의 힘으로 척추를 바르게 지탱하고 그 힘이 엉덩이와 허벅지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바른 자세를 유지시켜주며 신진대사와 호르몬에도 좋은 자극을 주거든요. 그러니 따지고 보면 코어 근육은 '코어 바디 시스템'이라고 불러야 더 정확한 것일지 모릅니다.


03 . 

일을 하다 보면 조직에도 이 '코어 시스템'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꼭 필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해야겠죠. 그래야 일에 대한 기준이 바로 서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것에 더 집중하고 투자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우리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걸 '체계'라고 부릅니다. 네 맞습니다. '우리 조직은 체계라곤 찾아볼 수 없어요'라고 말할 때 그 체계, '몇 번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체계를 갖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고 할 때 그 체계가 바로 이것이죠.


04 . 

잠깐 이 이야기를 미뤄두고 다시 운동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 몸에 코어 시스템이 잘 갖춰져있으면 가장 유리한 점이 무엇인지 혹시 아시나요? 바로 '유연함'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저 스트레칭할 때처럼 쭉쭉 늘어나고 활처럼 휘는 그런 유연함이 아니라 잠깐 코어에서 이탈해도 다시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 구심력 같은 게 마련되는 거죠. 그래서 이른바 치팅데이라고 불리는 식단도 몸에 코어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정도 식단에 자유도를 주더라도 나쁜 요소들이 몸 전체에 영향을 주기 전에 우리 몸이 본래의 중심으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죠.


05 . 

그럼 조직과 업무의 체계는 어떨까요?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이는 우리 몸의 체계와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조직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될 때마다 주로 자유도와 자기 계발, 성장 구조에 대한 주제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위대한 기업일수록 직원들에게 자유와 책임을 훨씬 많이 부여하고 끊임없는 지원으로 개개인이 성장하도록 해주며 실패해도 쿨하게 용서하고 다음 도전을 응원하는 문화로 소개돼 곤 하니 말이죠.


06 .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들 내부에 존재하는 매우 단단한 코어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입니다. 칼날처럼 정확한 성과 측정 시스템과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도록 만드는 교육 인프라, 인풋과 아웃풋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동기 부여 장치들과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정의하게끔 유도하는 관리 프로세스가 탄탄히 뒤를 받치고 있거든요. 때문에 겉으로는 한없이 자유로워 보여도, 설사 실제로 극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고 해도 늘 가장 중요한 중심으로 빠르게 돌아올 수 있는 기초대사량을 각자 확보하고 있는 셈입니다.


07 . 

반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조직들은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특성을 보입니다. '일단 해보자', '우린 뭐든 할 수 있다', '자유로움을 보장하자'라는 분위기를 바탕으로 체계화된 시스템 없이 일을 하다가 호되게 한 번 데이고 나면 이제는 단점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단속을 위한 체계만을 만들기 급급하거든요. 그러니 자유로움을 확보해야 하는 부분에선 억압과 규제가 작동하고, 코어 시스템이 들어차야 할 부분에선 여전히 개인기에 의존해 많은 것들이 운용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겁니다.


08 . 

그런데도 조직을 이끌거나 조직 문화를 설계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상한 아나키즘에 빠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준을 세우는 걸 두려워하고, 선언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일단 조금 진행해 본 다음 나머지는 상황 봐서 결정하는 것이 미덕인 사람들이 대표적이죠.

물론 허울뿐인 시스템을 만들어 조직원들의 손발을 묶는 것 역시 최악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중심을 잡는 것 자체를 회피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팔굽혀펴기 몇 번 했다가 금방 스쿼트로 자세를 바꿨다가 괜히 덤벨 몇 번 들고나서 어느새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있는 사람이 코어 근육을 갖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 말이죠.


09 . 

개인적인 의견이긴 합니다만 저는 좋은 체계를 갖추는데 번번이 실패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체계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체계를 만들려고 해봤으나 잘 안되더라. 오히려 역효과만 나는 것 같다'라고 회피해선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럴수록 더 집요하게 매달려서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조금씩 체계를 갖춰가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10 . 

이상적인 조직이란 늘 만장일치로 합의를 하거나, 누구 하나 모난 사람이 없거나, 대부분이 큰 불만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조직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진 않을 겁니다. (실제로 이런 조직이 존재할 리도 없고요...) 

대신 늘 다이나믹하게 튀어나가려는 원심력 속에서도 구심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고, 그래서 자유도와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더 존중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구성원 스스로가 무엇이 우리의 중심이고 핵심인지를 인지하고 있는 조직이 이상적인 조직에 해당되는 게 아닐까요? 시스템이란 건 그래서 중요하고, 기준이라는 건 그래서 무섭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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