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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Feb 05. 2024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73

01 . 

회사를 다니다 보면 필연적으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게 됩니다. 팀이 바뀌어서 절친하던 동료와 서로 다른 조직에 근무하는 경우도 생기고 누군가가 퇴사를 함에 따라 더는 함께 일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죠. 슬프고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 사람에게 새로운 도전과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는 일이라면 박수 치며 떠나보내는 때가 훨씬 많은 게 사실입니다.


02 . 

그럼에도 가끔씩 아주 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기억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에 기대어 '요즘은 뭐 하시나? 잘 지내시려나?'와 같은 생각도 들지만 대다수는 특정한 상황과 맞물려서 그 대상이 떠오르는 때가 더 많죠. 바로 '이런 상황에서, 그 사람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순간들입니다.


03 . 

저는 일을 잘하고 성품이 훌륭했던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이 질문의 대상자로 자주 선정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역량도 부족하고 심보가 고약했던 사람이 나에게 긍정적인 힌트를 가져다줄 확률은 아주 낮거든요. 대신 더는 함께 일하지 못하는 그 사실이 아쉬울 정도로 큰 힘이 되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도 여전히 제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이라는 측면에서도, 태도라는 측면에서도 말이죠.


04 . 

개인적으로 페르소나라는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직업적으로 자주 사용해야 하는 숙명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품이든, 서비스든, 브랜드든 간에 그 대상 안에 담겨있는 인격적인 요소들을 살펴보고 이해하는 게 저는 무척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인 페르소나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마치 레퍼런스로 활용하기도 꽤나 좋았던 기억입니다. 나라는 사람의 페르소나 속에 다른 대상의 훌륭한 페르소나들을 끼워 넣어 볼 수 있는 거니 말이죠.


05 . 

그런 의미에서 '이 상황에서,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건 내가 동경하는 페르소나를 하나 꺼내서 내 눈앞에 놓인 순간에 대입하는 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뭐가 최선의 방법일까?'라는 다소 막연한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그 사람의 대응법을 예측해 보다 보면 조금씩 더 올바른 답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문제만 멍하니 바라보는 게 아니라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일견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고요.


06 . 

물론 제 기억 속에 있는 그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결론을 내렸을지, 그렇게 행동했을지를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하물며 여전히 함께 일하며 그런 상황을 같이 맞닥뜨렸다면 오히려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보게 되었을 지도 모르죠. 사람이란 늘 한결같을 수 없고 본인 역시 처음 겪는 일들에 대해 매번 올바른 리액션을 보일 수 없는 거니까요.


07 . 

하지만 내가 리스펙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해 본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일하며 느낀 한 가지는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은 반쪽짜리 성장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설사 남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의 역량 키우기에만 올인 했다고 해도 만약 그 사람이 주위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더 큰 성장을 했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중에 좋은 사람들을 레퍼런스 삼아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면 그 결과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예상이 되실 거라 봅니다.


08 . 

예전에도 글을 통해 한 번 설명한 적이 있지만 '페르소나'란 그리스 로마시대 때 연극에서 사용하던 용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당시는 무대장치 등이 발달하기 전이라 그저 가면을 바꿔써가면서 등장인물이나 역할을 규정했는데요, 이때 가면을 바꿔쓰는 행위 자체를 페르소나라고 불렀던 겁니다. 그러니 페르소나란 누군가의 인격을 빌려 새로운 나를 창조하는 것의 의미일 수도 있는 거죠.


09 . 

협업이란 것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생활에서는 이 페르소나를 잘 활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첫째는, 좋은 페르소나를 가진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는 것. 둘째는, 그들의 페르소나를 활용해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보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 좋은 페르소나를 줄 수 있는 레퍼런스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이 세 번째야말로 페르소나 활용의 궁극적인 목표인 것 같고요.


10 . 

결국 자기다움이라는 것도 허울뿐인 말로 존재하는 워딩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서 그 사람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 관점과 태도, 가치와 사고의 집합체라는 걸 되새겨 본다면 '나답다'는 말이야말로 내가 평소 쌓아온 모든 페르소나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만약 누군가가 어떤 문제를 눈앞에 두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로써 나를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인생 참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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