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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un 20. 2024

AI보다는 매력적인 페르소나를 가져야 할 테니까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04

01 . 

우스갯소리인 줄은 알지만 최근에는 시중에 이런 말이 나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투자자가 아리송해하거든 그 앞에 AI를 붙여라. 나도 그렇게 투자를 따냈다'고 말입니다. 어디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소리가 떠돌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일각에선 2000년 대 초반 닷컴 버블과 같은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어찌 되었건 우리는 AI의 시대를 살 것이 분명해 보이긴 하니까 말이죠.


02 . 

그리고 이에 뒤따르는 말 역시 늘 비슷비슷합니다. '그럼 앞으로의 시대에서 우리는 뭘 해 먹고(?) 살아야 할 것인가'하는 거죠. 물론 여기도 논란은 존재합니다. 인터넷 시대와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파급력이 큰 AI 시대에는 무엇을, 어디까지, 얼마나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틀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 당장 뭔가를 칼같이 예측하고 날카롭게 움직이긴 힘들다는 견해도 있거든요. 마치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렵다기보다 어떻게 날도록 해줄지 그 규칙이 정립되지 못해서 현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 대목이었죠.


03 . 

저는 이 과정에서 저만의 조심스러운 예측을 하나 덧붙여보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이 말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얼마 전 아주 친한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죠.

"영화 'HER'를 보다가 든 생각인데 말야, 인간이 AI와 사랑에 빠진다는 게 꼭 영화에서만 일어날 일은 아닌 것 같아. 난 요즘 조금만 성격이 이상한 사람을 보거나 무례한 사람을 보면 '에잇, 이런 내 인공지능 비서보다도 못한 사람 같으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거든? 그니까 영화처럼 그런 이성적인 딥한 감정까지 느끼지는 않더라도 앞으로는 '당신하고 얘기하느니 차라리 AI와 이야기하는 게 낫겠네요'라는 평가를 받을 각오도 해야 하는 거지."


04 . 

그런데 저도 몇 해 전부터 AI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그 어느 때쯤에 친구와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AI가 지능적인 측면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혹은 정보력의 측면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것만 상상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보다 더 나은 성품을 갖게 되는 순간일 거라고 보거든요. AI와 성품이라는 말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조금만 따지고 보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겁니다. 아니, 오히려 앞으로 AI 서비스의 경쟁력 중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해야 더 맞겠죠. 


05 . 

단순히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과 대화하는 것보다 AI와 대화하는 것이 더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이야 대화라는 걸 할 수 있는 상대의 대부분이 실제 사람으로 규정되어 있다 보니 대화에서 느껴지는 기대치 역시 '저 사람도 인간인데 날 다 이해해 줄 수는 없지'가 기저에 깔려 있겠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좀 다를 수 있거든요. (약간 무섭기도 하지만) '대화'의 상대가 꼭 인간일 필요가 없고 심지어 내 주위에 있는 그저 그런 성품의 사람들보다 나은 수준이라면 인간 대신 AI를 택하게 되는 순간은 반드시 오는 것일 테니까요. 


06 . 

그러니 우리가 미래에 AI에게 받을 위협으로는 꼭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무서운 터미네이터가 물리적으로 사람을 공격하거나 인공지능 컴퓨터가 마음대로 핵무기 버튼을 누르는 것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 앞서 '인간의 기본적인 자질인 성품에서부터 AI에게 밀리는' 장면이 먼저일 수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그게 더 비참한 모습이라고도 생각되어 지고요...... 


07 . 

물론 짜증 내고, 화내고, 서운해하고, 후회하는 등의 다양한 감정 기복이 존재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고 매력임은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죠.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도 '그래도 AI와의 대화와 진짜 인간과의 대화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라고 생각할 분들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건 우리 세대까지의 이야기고 태어난 순간부터 AI 세상에서 자라날 다음 세대는 다른 기준을 갖게 됨이 분명할 겁니다. 그들에게는 어느 순간 AI가 내 삶에 들어온 게 아니라 사람과 AI가 함께 있는 세상 속에 본인이 그저 인간으로 태어난 것 뿐인 거니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더 오싹하죠...?)


08 . 

그래서 저는 AI 시대에 우리가 고민할 것은 AI에 밀려 직업을 잃거나, AI에 지나친 의존도를 가지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AI보다 더 의미 있고, 더 매력적인 페르소나를 유지하며 살 것인가가 아닐까 합니다. 즉, 인간으로서의 격, 말 그대로 내 인격을 잘 관리하고 가꿔나가는 게 한편으로는 AI 시대를 잘 살아가는 전략일 수도 있으니 말이죠. 


09 . 

아주 오래전에 봐서 어떤 영화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대사가 있었던 게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세상이 고도로 발달하면 우연한 것이 귀하게 대우받게 될 것이다."

곱씹어 보면 참 맞는 말입니다. 아주 미세한 단위까지 예측하고 통제되는 시대에서는 우연함이 발현될 기회가 점점 줄어갈 테니 예측 불가능한 조합들이 만들어내는 재미난 순간들도 현저히 적어질 수 있겠죠. 


10 . 

그리고 저는 거기에 이런 말도 하나 더 덧붙여보고 싶습니다. 

"인간을 대체할 것이 많아지는 세상에선 좋은 인간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배울 것이 더 많고, 얻을 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는 법인데 그 옵션에 사람이 아닌 것들까지 끼어든다면 그 경쟁은 얼마나 치열해지겠습니까. 더불어 그 경쟁에서 인간이 아닌 것들에게 '인격적으로(!)' 밀린다면 그것만큼 슬픈 것도 없겠죠. 그러니 페르소나란 것도, 성품이라는 것도, 인간다움이라는 것도 앞으로의 시대에서는 더더욱 중요한 위치에 오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게 우리의 경쟁력을 결정할 수도 있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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