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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Aug 13. 2024

그저 개인이 모인다고 조직이 되는 게 아니므로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15

01 . 

지난 글에 이어 조직 문화 이야기를 한 번 이어가 보겠습니다. 우선 저는 구체적인 조직 문화를 논하기 전에 개인과 조직의 차이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조직을 구성함에 있어서 가장 많이 하는 단순한 오해 중 하나가 '개개인의 합이 하나의 조직 특성으로 나타난다'는 거거든요. 하지만 커플이나 가족 간에도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하나의 작은 문화를 만들어 내듯 회사나 사회 안에 존재하는 조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몇 명이 모였건 간에 그 구성원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객체 하나가 만들어지는 공식은 유효한 거니까요.


02 . 

물론 개인과 조직의 본질 차이를 설명하는 기준은 셀 수 없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중에서도 리더십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즉 어떤 리더가 어떤 조직을 만드느냐에 따라 개인과 조직 역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는지를 살펴보자는 것이죠.

혹시 여러분은 좋은 리더 혹은 그렇지 않은 리더를 떠올려 봤을 때 어떤 이미지가 머릿속에 구체화되시나요? 언뜻 보기에는 인자하고 성품이 착한 리더와 커뮤니케이션이 날카롭고 수직적인 태도의 리더가 상반되게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03 . 

그러나 좋은 리더, 나쁜 리더를 딱 잘라 구분하기 전에 리더와 조직 간의 관계에 비춰 보자면 사실상 가장 위험한 리더는 자기 개인의 성향을 조직 자체에 그대로 반영하는 리더일 겁니다. 리더의 성향에 따라 조직이 특성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리더는 조직이 어떤 객체로 존재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고 그에 대한 전략을 짜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의 리더'가 아닌 '리더의 조직'만이 남게 되고 사실상 그런 조직은 불리한 요소를 꽤 많이 보유하게 됩니다. 그러니 리더 역시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가장 먼저인 거죠.


04 .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왜 리더의 특성이 오롯하게 반영된 조직이 그렇지 않은 조직에 비해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직이라는 것은 늘 디벨롭 되어야 하는 유기체인데 한 개인의 성향이 조직의 DNA를 좌지우지하게 되면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유입되는 게 아니라 리더의 성향과 취향에 맞는 사람들만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만에 하나 리더가 교체되거나 리더의 특성과 상이한 업무가 떨어지게 되면 조직은 다시 0에서부터 세팅이 되는 거죠. 조직 안에 좋은 문화나 유산이 남아있기 힘든 구조가 되는 것 역시 당연하고요.


05 .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단점이 있습니다. 이른바 '리더의 조직'에서는 리더의 강점은 강화되지만 팀원의 강점은 묻히게 될 확률이 크다는 거죠. 사실 저는 개인과 조직의 본질 중 가장 대표적인 차이는 강점과 약점을 관리하는 부분에 있다고 보는데요, 개인의 경우 계속해서 각자의 강점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적어도 조직 단위에서는 조직 공동의 단점을 잘 보완하고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장점은 그저 약점 정도로 여겨질 수 있지만 개인이 여럿 모인 조직에선 그 단점이 곧 리스크가 되기도 하니까요, 조직이 리더의 성향을 필두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이건 강점 강화 측면에서도 약점 관리 측면에서도 모두 실패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06 . 

그래서 저는 이상적인 조직일수록 공통의 약점을 잘 드러내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가끔 잘한 건 우리 조직이 잘해서고, 못한 건 누구 하나가 부족해서라는 식으로 지적하는 조직 문화와 마주하게 되는데요, 사실 이건 조직 문화에 있어서는 매우 위험한 징조일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매번 이런 평가가 반복된다면 결과적으로 개개인의 역량은 점점 묻히게 되고 공통의 리스크는 제대로 관리될 수 없기 때문이죠. 정리하자면 개인의 장점에는 책임과 권한이, 조직의 단점에는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셈입니다.


07 . 

⟪애프터 스티브 잡스⟫라는 책을 쓴 뉴욕 타임스의 트립 미클(Tripp Mickle)은 스티브 잡스보다 팀 쿡의 리더십이 지금의 애플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견 없는 천재였고 늘 혁신을 쫓는 사람이었지만 조직을 잘 운영하는 인물은 아니었다는 거죠. 반면 팀 쿡은 대중들에게 잡스만큼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지만 잡스가 남긴 긍정적인 유산은 영리하게 활용하고, 지금의 애플이 가야 할 방향에서는 어떤 사람과 조직이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지에 대해 전략적인 접근을 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합니다. 때문에 자칫 폐쇄적이고 독단적으로 비칠 수 있는 애플의 정책에 관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매우 공을 들이고 있는 거죠.


08 . 

뒤돌아보면 저 개인적으로 참 불안했던 상황은 리더 한 명이 바뀌자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질 때였습니다. 물론 새로운 리더가 등장함에 따라 변화와 환기가 뒤따라야 함은 잘 알고 있지만 그게 조직의 강점을 모두 무너뜨리고 개인의 성향을 탑재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닐 겁니다. 오히려 개개인이라는 인적 자원을 이용해서 어떻게 조직 전체를 더 강력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리더를 앉히는 거란 측면에서는 더더욱 개인의 특성과 조직의 과제가 분리되어 다뤄져야 함이 분명합니다.


09 .

이와 관련해 제가 참 좋아하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마이클 조던과 함께 90년대 시카고 불스 왕조를 이룬 인물이자, 10년 넘게 NBA 강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이끌고 있는 감독 그리고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미국 농구 대표팀까지 우승시킨 스티브 커(Steve Kerr) 감독의 말입니다.

“제가 감독을 맡은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 친구 어때?’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럼 저는 늘 같은 말로 대답하죠.‘개인 기량 (personal skills) 면에서요? 아니면 우리 팀의 일원으로서요?" 감독에게 주어지는 미션은 단 하나입니다. 이 선수들을 가지고 우리는 어떤 팀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죠.”


10 . 

맞습니다. 스티브 커 감독의 말대로 리더가 조직을 바라볼 때는 '공통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량과 성향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떤 팀이 되어야 하는가'가 조직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단 한 문장 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조직 문화라는 것도 그저 공동체의 분위기, 복지와 제도, 일하는 스타일이라는 것들에만 초점이 맞춰질 게 아니라 '우리는 개인과 조직을 어떻게 구분하고 이해하고 있는가'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그래야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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