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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Sep 23. 2016

어느 학과 출신인지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취업 전선에서 '출신 학과'가 갖는 의미










얼마전 모교에 취업설명회를 다녀왔다. 

IT 분야의 마케터와 컨텐츠 담당자를 꿈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 특강이었고, 그리 많지 않은 소수 정예의 학생들을 멘토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덕분에 모처럼 진솔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강의 신청 접수 기간 동안 학생들은 사전 질문을 등록할 수 있게 되어 있어, 강의 며칠 전부터 미리 질문을 살펴 볼 기회를 얻었다. 


취업과 관련한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질문들부터 막막하고 두려운 앞날에 대한 호소도 있었다. 

하지만 취업 특강이나 진로에 관련한 강의를 할 때면 끊임 없이 이어지는 질문이 있다. 

바로 '출신 학과'에 대한 걱정이다. 특히 문과생들에게 있어 학과는 입학 때부터 졸업 때까지 (혹은 그 후에도) 애증의 관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 제 학과가 글로벌 미디어학부인데요, 영상제작과 편집, 간단한 프로그래밍까지 전공으로 다룹니다. 

그런데 막상 졸업할 때가 다가오니 누군가 제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물어보면 덜컥 겁부터 나요. 

뭐랄까. 공대생도 아니고 미대생도 아니고 문과생도 아닌 느낌이랄까. 처음엔 재미있는 과목들을 많이 배울 줄 알고 왔는데.. 지금은 막막하기만 해요. " 

                                                                                        - S대 글로벌 미디어학부 4학년 Y양


" 국문과를 다니고 있고 3학년 때부터 정보사회학과 복수전공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입학 당시에는 신방과나 언론홍보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점수에 맞추다보니 국문과를 왔어요. 지금은 광고, 마케팅 위주의 직군의 취업을 희망하고 있구요. 근데 자소서를 쓸 때 출신 학과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야할 지가 걱정이에요. 딱히 제가 원하는 직군과 관련있는 학과도 아닌 거 같아 어필하기도 그렇고... 하지만 마냥 감추자니 그것도 찝찝하고.. "

                                                                                               - S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P양



사실 나도 고민이 많았다. 나는 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3학년 때부터 졸업 때까지는 경영학을 복수전공했다.) 어디가서 정외과를 다닌다고 하면 어김 없이 다음과 같은 질문이 튀어나왔다.


"정치 할 거야?"

"아뇨."

"그럼 외교관 될 거야?"

"아뇨."

"그럼 너 뭐 먹고 살래?"


정외과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그런 학과였다. 

뜬구름 잡는 학문. 대학교만 보고서 수능 점수에 맞춰가는 학과. 졸업과 동시에 백수직행 열차를 타는 전공. 

사실 취업 시장이 어렵고 사실상 많은 후배들이 여전히 고군분투를 하고 있기에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실 한 번쯤은 툭 터넣고 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긴 했다. 





그래서 정말 취업할 때, '학과'를 보나요? 



기다, 아니다를 논하기 전에 상식적으로 생각을 한 번 해보자. 기업이 생각하는 좋은 인재에 대해서 말이다.

현재 기업에서 인사, 마케팅 등의 직무를 담당하고 있는 지인들 그리고 소위 '인재'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좋은 인재에 대한 기준은 상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맥상통하고 있는 게 하나가 있는데, 바로 '무엇(What)'보다는 '어떻게(How)'라는 관점으로 사람을 본다는 것이다. 즉, 그 사람이 무엇을 해봤는지에 주목하기 보다는 어떻게 해왔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훨씬 주의깊게 본다는 얘기다.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유통관련 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는 내 지인은 면접 때 지원자들에 '왜 그 학과를 들어갔나요?'라고 질문하지 않고, '왜 그 학과를 졸업하셨나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이 질문을 하면 항상 지원자들이 당황하며 '네?'라고 되묻는다고 한다. '들어갈 때는 잘 모르고 들어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학과가 어떤지 감이 오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과로 전과하거나 하지 않고 그 학과를 졸업한 이유가 있나요?'라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인단다. 하지만 그래도 돌아오는 대답은 대충 얼버무리는 식이 많단다. 


서론이 너무 길었으니 본론부터 이야기해보자. 사실 채용담당자들에게 학과는 사실상 개인의 '취미'나 '기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지원자의 학문적 기호이자, 다른 일반인보다 그 분야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도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하지만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마치 '학과'가 본인의 역량이나 가치와 직결된다고 믿는다. 나아가 '마케팅을 하려면 경영학과를, 방송일을 하려면 신문방송학과를 나오는 것이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연결짓기의 함정에 빠진다. 


사실 나도 취업을 준비하며 복수의 면접을 보았지만, 막상 '정치외교학'이란 내 전공에 대해 크리티컬한 질문을 한 면접관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흥미롭게 생각하고 정치외교학과에서는 어떤 공부들을 배우는지,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수업은 어떤 것이었는지 등 캐쥬얼한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결론 짓자면, 내 개인적인 견해로도 그리고 다수의 채용담당자들의 대답을 참고해보아도 '학과에 대한 압박감을 갖는 것은 미련한 짓'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학과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태도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면접관들도 적지 않다.  

   

"나는 자기 학과 이야기하면서 창피해하는 사람들 별로야. 그거 타인의 시선에 사로잡힌 행동이야. 그런 사람들은 회사에 와서도 팀 이름, 직책 같은 게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들면 되게 부끄러워해."

                                                                                             - K 화장품 업체 인사팀, S 대리


"예전에 역사학과 출신 지원자가 면접을 보러와서, 역사학이 얼마나 재미있는 학문인지를 알려주는데 내가 정말 푹 빠져서 들었어. 학점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본인 나름대로 그 속에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다양한 경험을 해 본 것 같아서 면접 때 좋은 점수를 주었던 기억이 나."

                                                                                               - W 식품 기업 HR팀, Y 과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는 해야한다. 



그렇다고 마냥 준비 없이 자소서를 쓰고, 자신감만 가진 채 면접에 임하라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내용 없이 무조건 출신 학과에 대한 애정만 강조하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은 증명이 아닌 설득의 과정이다. '내가 이렇게 잘났어요, 내가 이런 것들도 해봤다니까요'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앞으로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거에요.'라고 면접관을 설득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출신 학과를 소개하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경영학을 전공했으니 마케팅에 대해 남보다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면접관은 없다. 비인기 학과를 졸업했으니 업무능력이 낮을 거라고 생각하는 인사담당자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니 출신 학과를 소개할 때는 남들이 생각하는 이미지 대신 '자신이 정의하고 재해석한'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면접 때 '정치학'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치학은 사람과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해 정의로운 문제 해결에 다다르는 과정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마케팅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마케팅 하려면 그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고 좋은 마케터로 성장하려면 결국 소비자가 가진 문제점들을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장난 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고 이를 정치학과 연결시켰다. 


다시 말해, 내가 4년 동안 애정을 가지고 공부해 온 학문을 나만의 시각으로 정의내려 보는 것이 필요하단 얘기다. 더불어 그 속에서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가치까지 뽑아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자격지심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2년 전 대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을 간단히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 때 한 학생이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대외활동했는지를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저는 학과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았고 그 중 하나가 공모전에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되물었다. '학과가 좋지 않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그제서야 실수했다고 느꼈는지 이런 저런 변명을 덧붙였지만 한 번 생채기가 난 그 학생의 이미지는 좀처럼 아물지가 않았다. 


단언컨데 자격지심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그리고 취업의 문턱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자신감을 가지라는 말 만큼 도움이 안되는 말도 없다지만, 그래도 때때로 무모한 자신감도 필요하다. 

그래도 그냥 달래기 위해 하는 말 같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도 같아서 아주 절친한 지인 분의 말씀을 첨부하며, 이 글을 마친다.


" 솔직히 말해서 대학교 학사 공부 정도로 그 직무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담당자는 한 명도 없어. 누군 대학을 안다녀봤나. 사실 제 아무리 인기학과를 졸업했다고 해도 그 분야에 관심 가지고 관련 책을 많이 읽은 친구들이 더 나을 때도 많아. 

인기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메리트가 있을 거란 환상도, 비인기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불이익이 있을 거란 걱정도 다 쓸 데 없는 거야. 채용은 본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왔냐를 보는 과정이거든. "

                                                                                              - D 그룹 상품마케팅팀, J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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