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를 괴롭힐 고민
얼마 전 학교 후배 C에게서 연락이 왔다.
녀석이 입사한지 만 2년이 가까워 오고 있으니 적응 좀 했겠다 싶어 먼저 안부를 물었다. 멋쩍은 웃음과 함께 돌아오는 대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나 원하는 일을 못 할 때 오는 그런 답답함은 아닌 듯 해서 '눈치 없다'는 소리 들을 각오로 좀 더 케물었다.
"이게 정말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한 때는 이 일이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회사를 다녀보니 정말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심지어 내가 이걸 진짜 좋아하는 건 맞는지 고민이 되더라구요."
후배에 대해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는 학창시절 '능력있는 마케터'를 꿈꾸며 이를 위해서는 물불 안가리고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친구였다. 각종 공모전을 휩쓸고 다니고 스스로 동아리나 소모임을 만들어 리더 자리를 도맡아하는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어려운 취업난 속에서도 꽤 순조롭게 취업을 했고, 심지어 신의 아들만 선택 받는다는 '복수(複數) 합격'의 기쁨을 누려, 최종적으로 회사를 골라서 들어간 녀석이었다. 그렇게 회사에서 20개월 정도를 보내고 난 후배의 목소리는 직장인으로서의 안정적인 당당함보다는 대학시절보다 더 떨어진 자신감과 불안감으로 가득 쌓여있었다.
"모든 게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요. 일도 사람도.. 심지어 '저 자신'조차 제가 생각해왔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에요. 그렇다고 회사에서 혼이 나거나 일을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닌데, 그냥 계속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사회인이 된다는 것
후배 C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건,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이 꽤나 많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저 회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취준생 시절이나 그보다 더 어린 대학생 시절에나 하는 고민인 줄 알았는데, 이게 직장인이 되어서까지 우리의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그 때는 내가 바라는 직장에 가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지, 내가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몰라서 허둥대는 날이 올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은 곧 현실이 되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TV프로그램의 한 패널이 이야기한 것처럼 '대한민국 청년은 대학 전에 이미 끝내야 하는 고민을 대학에 와서야 시작한다'는 말이 사뭇 더 뼈저리게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한다고 여겼던 것들이 어쩌면 막연한 환상 속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는 그것은 아니었을지.
대한민국 남자로 (물론 남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남자인 것일 뿐) '사회인이 된다'는 의미는 입학과 동시에 선배들로부터 '너희가 졸업할 때면 경제는 더 힘들거다'라는 노스트라다무스급 예언을 한 귀로 흘린 채, 1년 남짓한 자유 아닌 자유를 누리며 새로운 교우 관계와 연애, 경우에 따라서는 자취를 경험하다 군대를 다녀오고, 곧장 학점관리와 취업에 대한 압박 속에서 본인을 옥죄다, 쥐구멍에 발가락부터라도 들이미는 심정으로 회사라는 곳에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은 학자금을 갚아나가는 것 부터라지.
나를 알아간다는 것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하려고 펜을 든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감정적으로 글이 흘렀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 없이 연구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단언컨데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대상은 '나'임에 틀림 없다. 이기적이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를 알아야 남도 이해할 수 있다.
취준생 시절 우연히 들은 강연에서 꽤나 울림있는 한 구절을 마음에 담아왔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잘 안다는 것만큼 큰 경쟁력은 없습니다.'
맞다. 정말 그렇다. 사회인이 되어보니 더 그렇다. 세상을 살다 가장 막막해지는 순간은 나조차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다. 적어도 그런 위험하고 비극적인 순간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끊임 없이 노력해야한다.
직장인이 되기 전에 시간과 경제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가능한 많은 것을 해보는 것이 좋다. 알바와 학점 관리, 영어 공부에만 매달리기도 벅찬 청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것'을 쌓는 것에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내 것'이란 남의 기준으로 평가받는 스펙이나 타이틀이 아니라, 오로지 내 가치관으로서 평가했을 때 나에게 의미있는 일들을 말한다. 그게 무엇이든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히 해보기를 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 C에게서 연락을 받고 3주 정도가 흘렀을 때 그의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동시에 작게나마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았다고 전했다. '좋아요'버튼을 눌러주고 난 다음, 아무리 그래도 '멋지고 장하다'는 내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치고는 너무 성의없다 싶어 카톡이라도 하나 보내줄까하다 이내 접었다.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본인의 확신과 가치를 따라가야 하는데 괜히 응원이랍시고 사족이 붙여질까 겁이 났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집단이 월급쟁이라지만, 그렇기에 가장 녹록치 않다.
누군가의 돈을 받으며 일한다는 것은 부정하고 싶어도 나의 자유와 생각과 결정권을 일부 양도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내일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테고 윗사람이 온 메일을 읽고 자료를 찾고 보고서를 만들어서 다시 그 사람에게 '전송'버튼을 눌러야 한다. 짓기 싫은 미소를 지어야 하고 동의하지 않아도 끄덕여야 한다. 필요에 따라 야근도 해야하고 필요치 않아도 야근을 해야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 다움'을 양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기 전까지 '나'에 대한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정확히는 연구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니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그 순간에도 그리고 나중에 스스로 독립하거나 누군가를 거닐고 일을 할 때도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상투적인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도 늦.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