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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Sep 26. 2016

좋아하는 걸 해야 할까
잘하는 걸 해야 할까

확신이 서는 것 같다가 이내 원점으로 돌아오는 질문





참 어려운 문제다. 

좋아하는 것은 많은데 잘 하는 것이 없는 사람. 혹은 곧 잘 하기는 하는데 그 분야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

혹은 내가 대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 

이른바 취준생의 입장에서 이보다 큰 고민이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의외로 직장인 중에서도 이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광고회사에서 인턴을 하던 2011년 여름,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막내의 신분이었지만 팀장님은 내게 따뜻한 상담을 자주해주시던 분이었다. 그 분께 털어놓은 고민도 바로 그거였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할까요? 아니면 잘 하는 것을 해야할까요?'

꽤나 어려운 고민이어서 같이 심사숙고 해줄 줄 알았던 팀장님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오 대단한데? 넌 니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안단 말야? 난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 잘 모르겠는데..'

그 뒤로 나는 소심하게도 더 이상 그 고민을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조금 따끔한 일침을 먼저 두자면, 취준생의 입장에서 본인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그건 스스로 자신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다는 의미가 아니다. 스포츠 선수처럼 본인이 어느 특정 분야에 최고의 두각을 낼 수 있는 인재이거나 혹은 프리랜서로 일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예외로 하고서 이야기해보자.

취준생은 어쨌든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누군가의 밑에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해야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익숙치 않은 일, 좋아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구분하기 힘들만큼 혼재되어 있다


따라서 나는 취준생의 입장에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너무 일찍 규정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본인에 대해 꾸준히 이해하고 연구하는 과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금 명확히 말하자면 대학 시절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알아가는 과정' 정도로만 보내도 무방하다. 

(적어도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광고회사에 근무할 당시 내 지인은 예중, 예고 시절을 포함해 석사까지 모두 디자인 관련 공부를 해온 디자이너였다. 12년 가까운 시간을 디자인에 집중한 그녀가 어느날 광고 기획자로 직무를 변경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광고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직무를 변경할 정도인지는 몰랐다.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더니 너무나 쿨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면서는 딱히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매번 열등감에만 시달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광고기획 쪽으로 온 이후로는 정말 적성에 잘 맞아요. 오히려 (아트)디자인 쪽의 경험을 살려 더 좋은 결과물도 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는 너무나 잘 적응하고 있다. 



인정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이 뭘 잘할 수 있는지, 뭘 좋아하는지를 알아과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못하는 것'을 빨리 인정하는 것이다. 이건 쉽게 포기하라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내가 잘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꽤나 가벼운 마음으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번엔 시각을 바꿔서 조금 잔인하게 이야기해보자. 당신이 지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혹시 이 때까지 투자한 시간과 돈과 노력이 아까워서 그나마 그걸 제일 잘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물어봐야한다. 

영어영문학을 했다고 해서 남들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보장이 없는 요즘 시대에, 그나마 그게 제일 익숙하니 차라리 영어에 좀 더 투자해보자라는 생각은 어쩌면 미련한 것일 수도 있다. 

못하는 걸 빨리 인정하자. 자존심을 조금만 버리면 좀 더 나와 가까워질 수 있다


다음으로는 짧게나마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걸 추천한다. 사실 나도 광고쟁이를 꿈꾸던 시절에는 광고회사는 죄다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회의실에서 열심히 아이디어 회의하는 모습과 멋진 프레젠테이션으로 경쟁 PT에서 승리하는 모습만 떠올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광고회사에서도 정말 작고 루틴한 업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고, 의외로 창의력 보다는 끈질기고 성실한 성격이 광고쟁이의 필수 덕목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 여러 경험을 해보며 실제 그 일이 자신의 환상과 얼마나 다른지를 몸소 부딪히며 깨뜨려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좋다. 남들이 나를 보고 평가하는 말들은 극히 주관적인 것들이다. 흔히 자기소개서에도 '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흔히 OO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라고 자신의 장점을 설득하는 경우가 있다. 나쁜 방법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딱히 신뢰할 수도 없는 말이기도 하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능력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칭찬한다. 실제로는 그게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임에도 본인이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더 후한 점수를 준다. 

따라서 아무리 과한 칭찬을 듣더라도 본인 스스로 끊임 없이 평가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글의 서두에 언급한 지인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비극적이지만) 죽을 때까지 우리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지를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얼른 내가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확정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휩싸이다 보면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이만하면 남들보다 낫겠지, 그나마 이게 내가 좋아하는 걸거야라고 단정 짓고 시작하면 결국 나중에 가서 또 갈림길의 원점에 서게된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아니 조금 많이 늦어도 괜찮다.

지금은 그저 온전히 나를 바라보고 열심히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참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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