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시죠? 책 제목을 '줍줍'하는 사람을 말입니다.
#기획자의 독서법
기획 일을 하는 모든 분들을 위한 '책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기획자라고 했지만 마케팅, 브랜딩, 광고, 컨텐츠, 상품,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 만들고 - 내놓는 일을 하는 분들을 위해 글을 씁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브랜드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때는 브랜드라는 단어조차 잘 몰라 ‘메이커’라고 부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각종 브랜드의 이름이나 문구(카피)에 유독 집착하곤 했습니다. 발음도 잘 안되는 해외 자동차 제조사들을 줄줄이 외우는 것을 시작으로 옷에 붙은 종이 택들의 깨알 같은 단어들도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딱히 얻는 정보는 없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90년대는 흔히 말하는 ‘세기말’ 감성이 퍼져 있던 때라 아무 의미 없는 단어들이 제멋대로 나열된 경우도 많았거든요. 그런데도 왜 그런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텍스트뿐 아니라 TV 광고 마지막에 나오는 성우의 내레이션도 꼭 한 번씩 따라해 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더위사냥’ 아이스크림을 친구와 반씩 쪼개어 먹는 꼬꼬마 주제에 입으로는 ‘커피도 인생도 한 박자 천천히, 테이스터스 초이스’ 같은 문장을 시도 때도 없이 외고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약간 괴짜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성인이 되어서 그 버릇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자막들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특히 예능 자막의 한 획을 그은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은 일부러 다운로드를 해서 봤습니다. 놓친 자막이 있으면 뒤로 돌아가 다시 볼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자주 쓰는 유행어가 자막으로 입혀지고 그렇게 방송을 탄 자막이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되어가는 사이클이 신기했습니다.
영화 포스터에 담긴 부제나 카피도 좋은 먹거리가 아닐 수 없었죠. 영화의 한 줄 설명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찾아 본 작품도 꽤 많았습니다. 포스터에 쓰인 카피가 영화와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 아쉬운 경우에는 제 마음대로 문장을 바꾸어 새로 써보기도 했습니다.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그 작업이 참 신났습니다. 그때는 잠깐 광고 카피라이터의 꿈을 꾸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제 텍스트 인생(?)의 최애 취미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책 제목을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이죠. 사실 어릴 때는 책도 많이 읽지 않았을뿐더러 책 제목들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 눈엔 유난히 지루하고 뻔해 보이는 것들이 바로 책 제목이었거든요. 대부분이 명사 한 단어로 끝나는 것들이었고 ‘~에 대하여’처럼 학술적인 이름들도 흔했습니다. 간혹 특이한 소설 제목들이 식빵 속 건포도 마냥 드문드문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내용만큼 제목에 큰 힘을 주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전환의 계기는 대학교 때 한 강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기웃거리다가 3학년 무렵 사회학과 수업을 하나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수업의 강의 계획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매주 진행될 수업의 주제가 모두 한 단어로만 작성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1,2주 차 – 존재 / 2,3주 차 – 관계 / 3,4주 차 – 사회 / 5,6주 차 – 규칙’ 이런 식이었던 거죠. ‘대체 저 단어들만 가지고 무슨 수업을 한다는 거지?’ 수강신청을 취소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냥 듣기로 했습니다.
수업은 생각보다 꽤 재미있었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2주간 수업을 진행하는데, 교수님이 칠판에 그날의 주제어만 큼직하게 써놓고 나머지는 학생들과의 자유토론을 통해 이끌어갔습니다. 한국인의 DNA 특성상 처음엔 그 누구도 먼저 발언하지 않고 눈치를 보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면 서로 말을 가로막는 수준에까지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재미에 비례해 불안함도 조금씩 커졌습니다. 다음 수업 때도 분명 열띤 이야기가 오고 갈 텐데 다리 하나라도 걸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밑천’이 있어야 했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이라도 있어야 주장을 하고 대충 냄새라도 맡아 봤어야 근거를 댈 수 있으니까요.
그날부터 열심히 학교 도서관을 들락날락했습니다. ‘존재’, ‘관계’같은 단어처럼 살면서 크게 고민해 본 적 없는 대전제를 가지고 그에 맞는 책들을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대체 ‘존재’를 무엇이라 이야기하고 있는지,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을 통해 ‘인간’을 말하고 싶었는지 ‘관계’를 강조하고 싶었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책을 찾았습니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으니 최대한 제목 빨(?) 잘 받는 책들을 골랐습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를 통해 현대 사회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문명의 재건이었는지 모릅니다.”와 같은 멘트가 난무하는 수업 현장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한 학기가 끝나자 찾아만 놓고 읽지 못한 책들이 이내 아쉬웠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살면서 한 번쯤은 읽을 수도 있으니 제목이라도 정리해보자 싶었습니다. 그렇게 주제별로 주욱 정리해놓은 책 리스트를 보니 놀랍게도 흐트러져 있던 생각들이 조금이나마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거대한 담론 아래 사람들이 각자 어떤 시각으로 그 문제에 다가가는 지가 보이니 마치 지도 하나를 완성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책의 제목이 주는 힘을 느꼈습니다. 그 후로는 원서의 제목도 꼭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책에 쓰인 부제도 가능하면 꼭 기억해두고자 합니다.
책 제목을 하나 둘 모으는 저의 취미는 좋은 시대를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습니다. 지루하기만 하다 느껴졌던 책 제목들이 언젠가부터 굉장히 화려해지는 트렌드를 보인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약 10년 전부터, 그러니까 2010년을 즈음해 그런 흐름이 뚜렷해졌다고 생각합니다. SNS 활동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스마트폰 만으로도 짧은 글을 유통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트위터 시인, 페북 작가처럼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글이 실제 책으로 출간되었고 제목도 이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웹툰의 등장이 만화 산업 전반의 변화를 가져왔다면 출판계에서는 SNS가 그와 비슷한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책 제목의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했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저에겐 참 좋은 세상이 온 것이죠.
물론 이런 흐름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고로 책은 책다워야 하는 것인데 장난스러운 제목들로 책이 출간되는 것을 못 마땅해 하는 것이죠. 뭐 그럴 수 있습니다. 모두가 개인의 취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런 트렌드가 재미있습니다. 제목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그 주제의식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 속 시원합니다. 예전의 책 제목들이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형태로 지어졌다면 지금은 한 줄 문장으로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이러한 분위기는 자신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낼 줄 아는 밀레니얼과 Z세대의 공감에 힘입어 날개를 달았습니다.
그 중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과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는 무려 ‘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라는 부제까지 달려있습니다. 스스로를 씩씩하고 자주적인 인간으로 마주하되 외부로부터 오는 비상식적이고 불필요한 자극들에는 냉정 해지라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입니다. 반향은 컸습니다. 학교든 직장이든 심지어 가정에서든 예절과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묵인되어온 수많은 꼰대 문화들에 시원한 한 방을 날렸습니다. 저는 그중에 제목의 역할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책의 제목과 부제에서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절반은 끝낸 느낌이었거든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역시 에세이 트렌드에 큰 영향을 준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가벼운 우울감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기분부전장애’를 가진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와 나눈 이야기를 엮은 책입니다. 중증 우울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행복하지도 않은 채로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죠. 잠자리에 들 때 내일 아침 눈을 뜨지 못해도 딱히 아쉬울 것 없다는 감정과 그 와중에도 작은 것 하나에 잠깐 그 우울감을 잊기도 하는 우리들의 복잡 미묘한 본능을 제목 하나에 오롯이 담아냈습니다. 덕분에 ‘죽고 싶지만 OOO은 하고 싶어’라는 많은 패러디를 낳았습니다. 한 편에서는 인간의 삶에 ‘떡볶이’가 차지하는 중요도와 위상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떡볶이 바로 세우기 운동까지 벌어질 기세였습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책 제목을 조금씩 비틀어 보거나 제멋대로 다시 써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책만큼은 그럴 엄두를 못 냈습니다. 단짠의 조합이 완벽히 맞아 입에 착 달라붙는 떡볶이의 그것과 똑같았으니 말입니다.
요즘은 이런 에세이의 제목들이 재미있어 자주 메모해 놓습니다. 정확히는 차곡차곡 모은다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책의 제목을 모은다? 선뜻 이해가 잘 안되시나요? 물론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도 제목에 크게 집착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그 책 정말 인상 깊었어’라고 이야기하지 ‘그 책 제목 정말 잘 지었어’라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관심 가는 책의 제목들을 한 데 모아 주욱 읽어보면 왠지 한 시대의 트렌드가 옅게나마 보이는 느낌입니다. 우리가 ‘도전’의 시대에 사는지 ‘위로’의 시대에 사는지,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목소리가 큰지 스스로를 다독이고 감싸는 목소리가 우선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게 좋습니다. 같은 주제라도 반어법을 통해 얄미우리만큼 꼬아 얘기하는지 아니면 콜라에 넣은 멘토스 마냥 속에 있는 말을 다 내뱉어놓았는지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최근에는 ‘제목이 다했다’라고 느껴질 만큼 강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좋습니다. 자기만족 운동 에세이를 표방하는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나, 힘든 삶 속에서 농담이 가지는 존재감을 보여주는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도 인상 깊은 제목이었습니다.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상식으로 살고 있나요?>,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마음 번역기가 필요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힘든 나에게>,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등도 메모 앱 한 켠에 고이 모아둔 제목들입니다. 가수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 역시 그가 10여 년간 보여준 음악 세계와 가치관에 잘 어울리는 책 제목입니다. 마치 70년대 그룹사운드의 기타 선율로 시작되는 멜로디를 타고 ‘아니 뭐 크게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고 읊조리듯 노래를 시작할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이렇게 직설적인 책 제목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회사에서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 창작자와 관련된 업무였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들도 자유롭게 자신의 창작물을 공유하고 나아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드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맞습니다. 무지 어려운 프로젝트였습니다. 핵심은 아티스트들이 조금이나마 경제적 걱정을 하지 않고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반 문화를 다지는 것이었습니다. 길고 긴 회의를 거치고 몇 차례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수정 모델을 거쳐 드디어 상부에 1차 보고를 하는 시점에 다다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서의 제목이 ‘창작자 수익 개선 플랫폼 활성화 방안’이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게 ‘창작자’인지 ‘수익 개선’인지 ‘(우리 회사의) 플랫폼’인지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지 모르는 제목이었습니다. 파워포인트 첫 장을 열어둔 채 모니터와 눈씨름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보고자료의 제목을 바꿨습니다.
‘예술가는 언제까지 배고파야 하나요?’
이 한 문장을 크게 쓰고 아래에는 ‘음악만 해도, 그림만 그려도 먹고 살 수 있는 플랫폼 만들기’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런 분위기의 보고자료 제목을 본 적이 없던 터라 회의에 들어가는 내내 심장이 쫄깃했습니다. 다행히도 결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프로젝터 화면에 보고자료 첫 장을 띄우는 순간 회의실 안에는 웃음이 터졌고 이내 우리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단 번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기획자로서 그럴 때 참 짜릿합니다. 뭔가를 해서 칭찬 들을 때가 아니라 내가 날린 메시지가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날아가 꽂히는 순간, 그 순간이 정말 상쾌합니다. 전날 밤 에너지 드링크를 연거푸 들이켜도 맑아지지 않던 머릿속이 그때만큼은 피톤치드 가득한 대나무숲이 되는 느낌입니다.
물론 매번 보고자료 제목을 이렇게 쓸 수는 없습니다. 회사의 분위기나 보고 문화에 따라 각자 정해진 방식으로 제목과 부제를 달아야 하는 경우도 있죠. 보고받는 사람들의 취향도 당연히 고려해야 하고요. 다만 지금껏 내가 쓴 자료나 문서의 제목들이 그저 여러 단어의 나열로만 이루어진 임팩트 없는 제목들은 아니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간혹 이것저것 좋은 말들을 다 끼워 맞춘 제목의 문서들도 자주 봅니다. 대체로 자기만족일 뿐 화자는 어떤 워딩에도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이게 파일 제목인지 문서 제목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무미건조한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대세는 꾸안꾸라지만 소개팅에 회색 츄리닝을 입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죠.
서점에 깔린 수많은 책들 중에서 ‘이거 재미있겠는데?’라고 집어 들었던 책. 그 책의 제목과 마주하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안에 담긴 내용이 궁금해지고 이 글을 쓴 작가가 궁금해지고 왠지 나의 반나절을 이롭고 기분 좋게 채워줄 것 같은 그 기대감을 말입니다. 그 느낌을 떠올리며 제목을 써보세요. 혹시 위험부담이 있다고 판단되면 기존에 작성한 보고자료 제목에 센스 있는 부제 정도를 달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중요한 건 문서의 초입에 내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지, 이 문서를 읽고, 이 발표를 듣는 사람의 공감대가 하나로 합쳐질 수 있는지 이니까요.
바야흐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 한 장에도 센스 있는 태그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는 물론 명함에 한 줄 자기소개를 추가하는 회사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죠. 어떤 식으로든 온몸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우리입니다. 그 모든 콘텐츠가 빛을 낼 수 있도록 제목의 화룡점정을 찍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여담 (餘談)
몇 해전 예정에 없던 임신으로 축복과 멘붕을 동시에 겪던 입사 동기에게 <내가 엄마가 되어도 될까>라는 책을 선물한 적이 있었습니다. 동기는 책 제목을 보자 마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어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한 장 겉표지에 눌러 쓰인 제목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