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영 Jan 26. 2021

코로나가 20년 전에 왔다면 어땠을까?

가정법은 늘 반론을 부릅니다. '만약에'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유쾌한 상상이 되기도 하고 도피성 현실 부정이 되기도 하는 법이죠.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너와 나 지금보다 행복했을까'라는 싸이의 노래 가사처럼 작금의 순간에서 바라보는 과거는 묘한 감정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만약에.. 만약에..' 


코로나는 이제 일상 용어가 된 듯합니다. 20세기 이후 전 세계를 이렇게 하나의 이슈로 묶어버린 것은 코로나가 처음이죠. 1,2차 세계대전 때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던 국가들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인류 역사에 깊이 눌러쓴 한 대목이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 와중에 BBC를 통해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나왔습니다. (벌써 작년이 되었군요)

Coronavirus: What if this had happened in 2005?  이란 제목의 이 기사는 작성 시점을 기준으로 15년 전에 코로나 사태가 벌어졌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하는 가정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을 그 기준점으로 잡고 있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2005년은 페이스북이 막 첫돌을 맞이한 시점이었고 곧이어 다음 해에 유튜브와 트위터가 차례로 세상에 나왔으며, 2년 뒤인 2007년엔 디지털 역사상 가장 큰 전화점 중 하나인 아이폰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니 IT, 소셜, 경제, 인류학적 관점에서도 2005년이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인 것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 세계를 범위에 두고 소셜 미디어적인 관점에 집중해 다룬 기사입니다. 그만큼 크고 둥근 기사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보다 5년 더 전인 2000년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면 우리는(특히 우리나라는!) 과연 어땠을까 하고 말입니다. '불과 20년 전이면 그래도 휴대폰도 존재하고 인터넷도 되고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왜냐구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드리죠. 



#. 재택근무, 원격수업은 없다. 


당연한 말이죠. 2000년 당시에는 광케이블이라는 개념으로 등장한 인터넷 전용회선 도입률이 전체 가구의 약 50%도 되지 않았습니다. 즉 대한민국의 절반 가까이가 인터넷이 아예 없거나 전화선만으로 이용하던 시절이란 얘기죠. 참고로 대학교의 수강신청도 인터넷 접수, 현장 접수를 복수로 실시했습니다. 당연히 현장 신청 비율이 훨씬 더 높았구요. 

(지금은 미국인이 되신) 스티브 유께서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를 아무리 외쳐대도 학교 수업을 원격으로 따라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겁니다. N세대 대표주자 전지현 누님께서 컬러 복합기와 함께 테크노 댄스를 춰도 우리는 아날로그로 살 수 밖에 없는 거죠. 

회사는 어땠을까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지금은 일반화된 주 5일 근무제가 2002년에 이르러서야 시범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화상회의는커녕 코로나를 뚫고 주 6일간 회사를 나가야 했거나 아예 경제활동 전체가 멈춰서는 악몽의 시기를 겪었을 겁니다. 


'음성메시지 전송'을 신기술로 홍보하던 시대였는데요... 재택근무라뇨.



#. 택배요?... 아 소포요?


그렇습니다. 택배보다는 소포라는 말이 더 일반적이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같은 물류 시스템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 상거래, 전자 상거래라는 이름으로 택배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이긴 하였으나 인구의 90% 이상은 현장 소비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현금 지급률이 70%(1999년 기준)에 육박했다고 하니 아마 화폐를 주고받는 행위를 통한 접촉 감염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을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세균 덩어리인 돈을 매번 소독할 수도 없고 카드 사용내역처럼 트래킹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판매, 구매행위 자체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겁니다. 



#. 4강은커녕, 월드컵이 열리지 못했을 수 있다. 


코로나로 1년 연기된 도쿄 올림픽이 최종 취소될 수 있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자 그럼 20년 전으로 가보겠습니다. 역사상 첫 아시아 대륙 월드컵이자, 공동 개최에 의한 월드컵인 2002 한일 월드컵 준비가 한창일 때입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때도 일본은 타격을 받는군요) 

하지만 현재를 비추어 보면 당시 월드컵 개최 역시 불투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게다가 만약 그때의 코로나 바이러스도  발원지가 중국이라면 본선에 진출한 각국 선수단이 아시아행을 꺼려 했을 수 있죠. 여러모로 악재가 예상되는 시나리오입니다.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인 박지성도, 그를 보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운 손흥민도 어떤 방향으로 인생을 틀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아.. 이걸 못봤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안돼요!




#. IMF 이후 2년 만에 다시 글로벌 경제 위기를 맞는다. 


먼저 닷컴 버블 얘기를 해보죠. 2000년 당시는 세계적으로 비현실적인 인터넷 거품이 생겼고 그로 인한 과열 투자 현상이 일어나던 시기입니다. 만약 그때 코로나가 세계를 덮쳤다면 닷컴 버블의 붕괴와 맞물려 세계 경제는 더 큰 피해를 입었겠죠. 그리고 대한민국은 혼신의 힘을 다해 IMF 외환위기를 벗어난지 채 1년이 안되어 또 직격탄을 맞아야 했을 겁니다. 절로 고개가 가로 저어지는 상상이죠. 

이때는 한국에서 네이버, 한게임, NC소프트, 넥슨, 넷마블 등 지금의 IT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주요 기업들이 태동했던 시기인 만큼 향후 20년을 좌우할 산업에 정말 막대한 치명상을 입었을 겁니다. 



#. 한류라는 단어는 사전에서 사라질 것이다. 


한류의 중심인 K-pop은 99년~2000년 사이 그 물꼬를 터 약 20년 동안 드라마틱 한 성장을 했습니다. 그 교류 국가는 다름 아닌 일본과 중국이었죠. 당시만 해도 대중문화는 일본이 우리를 크게 앞서있던 시절이라 한국의 콘텐츠는 중국으로 더 많이 건너갔습니다. 

1세대 한류 개척자라 불리는 N.R.G , 클론 , 이정현 같은 가수들이 대표적이었죠. 하지만 앞서 수차례 설명드렸듯이 2000년에 코로나가 터졌다면 한류라는 단어는 아마도 수년, 길게는 수십 년 뒤에야 나왔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으로 돌아가서, '20년 후에는 한국 가수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다'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너희가 미래다. (출처 : BBC)




#.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발생했을 것이다. 


2000년 당시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큰 폭으로 늘었던 시기였습니다.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매우 흔한 일이었고 인터넷 메신저, 메일, 커뮤니티 등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하지만 비용에 관한 구조는 지금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문자메시지는 한 건당 100-200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고 휴대전화의 기본 통화료도 비쌌습니다. 그제서야 겨우 가족 요금제, 커플 요금제 같은 맞춤 요금 체계가 고개를 들던 때였으니까요.

그뿐인가요. 은행 업무는 말할 것도 없죠. 당시만 해도 은행의 통장정리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고 내 앞에서 대기 번호가 끊기면 다음날 다시 은행을 방문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거기다 지금처럼 정부가 문자로, 전화로 알리는 확진자 대응 방식을 유지한다고 상상해보면 그 비용은 어마 무시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글로벌 K-브랜드의 등장은 한참을 기다려야 가능할 것이다. 


지금이야 미국에서 자동차를 렌트해도 10대 중 1-2대는 현대차이고, 유럽에서 길가는 사람 휴대전화를 봐도 삼성 갤럭시인 경우가 부지기수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2000년대 중반은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본 아이덴티티라는 영화에 2000년식 현대 소나타가 잠깐 등장하는데, 이를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몇 번씩 돌려가며 조명하던 시절이니 말입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대미 수출에 큰 타격을 받았을 테니 지금처럼 우리나라 브랜드가 승승장구하는 시절은 한참을 기다려 먼 미래에 겨우 가능해졌을지 모릅니다. 생각할수록 아찔하죠. 


지금은 딱히 신기하지도 않은 모습인데 말이죠.



아, 물론 이럴 수 있습니다. 

"야. 그러면 80년대에 왔으면 문제가 없고, 90년대에 왔으면 비극이 아니냐." 

맞는 말이죠. 그때는 그때대로 또 다른 영향과 피해가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20년 전에 온 것보다는 지금 온 게 낫지 않냐는 늬앙스의 말을 하고 싶은 것 또한 전혀 아닙니다. 

다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우리는(또는 후대는) 어떤 형태로든 지금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할 텐데, 그 시기에 대한 고찰은 분명 시간의 앞뒤를 고려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치 'OO을 하지 않았더라면,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몰라' 같은 가정법과 맥이 동일하죠.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만약에'라는 단어는 수많은 생각의 꼬리를 물게 만듭니다. 그 공간이 좁혀질수록, 그 시간대가 한정될수록 더 디테일하게 생각할 수 있죠. BBC의 기사가 그저 'SNS 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코로나가 왔으면 사회는 더 혼란스러웠을 거야'를 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입장으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부디 과거는 부정적으로 회상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긍정적으로 그릴 수 있기를 바라며 나름의 상상화 그리기를 마쳐봅니다. 혹 20년 전에 코로나가 생겼다면 또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예상되는 것들이 있다면 댓글로 이야기해봐도 좋을 것 같네요. 이건 '라떼는 말이야'가 아니라 '역사의 가정법' 같은 거니까 말이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