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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Feb 11. 2021

모두가 에디터인 세상

편집자적 시각을 가지기 위한 훈련들

혹시 동경하는 직업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존경하는 직업은요? 

저는 새로운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저와 비슷한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데도 전혀 다른 세상 속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고 아예 일하는 문화, 시간대, 방식, 철학이 모두 반대편에 있는 직업도 있으니까요. 그런 낯선 세계를 업(業)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항상 궁금합니다. 일종의 저만의 '탐구 생활'인 거죠.  

그렇게 어떤 직업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면 늘 두 가지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나도 저런 일을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동경심이, '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 일은 못하겠다' 싶으면 존경심이 생기곤 합니다. 


제가 하는 일 중엔 공간 기획 업무도 있습니다. 회사 내외부에 필요한 공간들의 컨셉을 기획하고 브랜딩 하는 일이죠. 덕분에 사내 건축팀과 밀접하게 일할 기회가 많은데요, 무척 어렵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뭔가를 손으로 만들거나 쌓는 일보다는 글이나 그림으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또래들이 죽고 못 사는 '레고'나 그 당시 유행했던 '과학 상자'같은 것에도 큰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대신 만화책을 보거나 잡지를 모으는 것에 더 흥미를 느꼈습니다. 

비록 제게 재능이 없는 분야라지만 저는 늘 건축가들을 존경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존경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특히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건축물을 볼 때면 감탄과 동시에 경외심이 들곤 하거든요. '저 웅장하고 멋진 외관 이면엔 얼마나 많은 수학 공식과 물리 법칙들이 신체 조직처럼 엮여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 절로 고개가 가로 저어집니다.

'역시 나는 못하겠다......'


반면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저는 '에디터'라는 직업 세계를 동경합니다. 사실 '에디터'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부터가 좀 애매할 수 있는데요, 과거에는 흔히 출판사나 언론사에서 편집 권한을 가지고 콘텐츠를 기획, 구성하는 사람들을 에디터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범위가 넓어져 누구라도 자신의 시각으로 선별하고 구성한 것이 있다면 이를 '에디터'의 영역으로 봅니다. 작은 소품 샵을 운영하는 주인이 자기가 직접 셀렉한 물건들로 공간을 채우는 일 역시 편집자, 즉 에디터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JOH에서 발행하는 직업에 관한 책 <JOBS : 에디터> 편에서는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이라는 표현으로 에디터를 규정하기도 했는데요, 개인적으로 '편집(edit)'의 영역이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좋은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제게 에디터에 대한 가장 큰 직업의식을 심어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을지로에 있는 어느 인쇄소 사장님이셨죠. 당시 저는 담당하던 서비스의 아카이빙 자료를 한데 모아 책으로 엮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지난한 편집 과정을 거치고 최종 산출물을 평가하기 위해 제작 업체와 함께 인쇄소를 방문했을 때였죠. 저희의 까다로운 요구들에 혹시라도 심기가 불편하진 않으셨을까 싶어 인쇄소 사장님께 먼저 죄송스러운 마음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뜻밖이었습니다. 


"걱정 말아요. 내가 왕년에는 신문 조판만 수십 년 했던 사람이라 이 정도 수정 요청에는 끄덕도 안 해요. 비록 나는 찍어내는 사람이지만, 찍다 보면 편집한 사람의 고뇌가 다 보이거든. 이 판 하나 살리려고 도려낸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그 고통 말로 못 하지. 

근데 또 그게 아이러니야. 편집하는 사람은 '자기가 버린 것'들 속에서 크는 법이니까. 맘에 쏙 들어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버려져야 했던 애들이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거라고."


무겁고 차가운 기계 소리들 사이에서도 사장님의 이 말들은 왜곡이나 이탈 하나 없이 제 귀에 들어와 박혔습니다. 마치 저희의 작업 과정을 옆에서 내내 지켜보신 것 마냥 말씀해 주신 덕분에 그 자리에 있던 담당자들이 서로 머쓱하게 웃기까지 했죠. 역시 편집의 영역은 피 땀 눈물 없이는 들여다볼 수 없다더니 그 말이 맞구나 싶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에디터가 단순히 '무엇인가를 모으고, 고르고, 추천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제게 에디터는 '버리고 또 버려야 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하나 추가된 것이죠. 이렇게 쌓인 직업적 단상들이야말로 그 세계를 동경하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또 하루를 열심히 일하게 해주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에디터는 모으고 고르는 것만큼 버리고 또 버려야 하는 사람



사실 저는 대부분의 사람이 '에디터'의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정확히는 더 나은 것을 찾고 선택하는 모든 일이 편집인 것 같아요. 매장 문을 열며 쇼윈도의 마네킹에 어떤 옷을 입힐지 고민하는 것도, 내일 구내식당의 식단을 어떻게 구성할지 논의하는 것도 모두 편집의 영역이죠. 

하지만 '편집자적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취향과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나열하는 게 편집은 아니니까요. 많은 일들이 편집의 영역에 속해있지만, 편집을 제대로 해내는 것은 큰 과제죠. 따라서 좋은 에디팅(editing)을 위해서는 늘 훈련이 필요합니다. 


저는 편집자적 시각이 크게 3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

어디에 주목할 것인가?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


어떤 사람의 눈으로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지, 그렇게 선택한 것들을 어떻게 구성해내는지. 그게 바로 에디팅의 본질이니 말입니다. 이렇게 만든(made) 사람과 쓰는(use) 사람 사이에 '고르고 다듬고 정리한' 사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게 편집의 진정한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관점」 : 태도에 대하여 


흔한 얘기지만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대상도 달리 보이는 법'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쉽게 와닿지는 않죠. 새로운 시각을 갖고 싶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혜안이 생길 리는 만무하니까요. 그럼 말을 조금 비틀어볼까요? '어디서 바라보느냐'의 문제로 접근해보는 겁니다. 늘 내가 서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위치에서 무엇인가를 바라보면 새로운 면이 보이기 마련이죠.  


그래서 관점은 늘 태도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것이라도 다양한 위치에서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자세, 그 태도를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거든요. 간혹 일은 곧 잘하는데 늘 본인이 익숙한 방식으로만 문제에 접근하고 풀어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죠. 함께 일하면 편하긴 하지만 많은 가능성을 놓치게 되는 게 아쉽습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여기선 그게 안 보여요'라고 말하는 것은 관점의 모순이니까요. 


위치를 옮긴다는 건 바꿔 말해 다른 사람이 되어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 사람이 서 있는 위치에서 이걸 본다면 어떨까'. 그렇게 관점을 이동하며 문제에 접근하면 평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포인트들이 레이더에 포착되죠. 

이를 위해선 직접 사람들을 인터뷰해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인물이나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 그 사람들이 쓴 책 혹은 추천한 책들을 보며 관점을 이동시키는 연습을 합니다. 그들이 풀어놓은 이야기를 따라서, 그들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죠. 



나를 '위치 이동' 시키면 나의 관점도 새로운 세상을 맞이합니다.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님은 SNS를 통해 늘 책 이야기를 하십니다. 책에 관해 포스팅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김봉진 대표님이 책을 보는 관점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항상 '일'과 '사람', '사회'에 대한 밸런스를 유지하며 책을 읽으신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기업의 본질인 경영도 중요하지만 내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하고 성장시킬 것인지, 나아가 나와 우리는 사회에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흔적이 보입니다. 그래서 한때는 김봉진 대표님이 추천하는 책들을 따라서 함께 읽어본 적도 있어요. 그럴 때면 서로 다른 회사에 있지만 마치 카페에서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눈 사이처럼 그 사람의 렌즈를 잠시 빌려 쓴 느낌이 듭니다. 푸드테크 스타트업의 대표이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실천가이면서 책을 사랑하는 애독가로 저를 '위치 이동'시켜보는 거죠. 그럼 자연스레 관점도 따라 이동하게 됩니다.   



「주목」 : 선택에 대하여 


자, 새로운 시각으로 무엇인가를 바라보기로 마음 었다면 그다음 과제가 있습니다. 바로 '무엇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이죠.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이리저리 세상 구경을 하다보면 줌을 확 당겨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게 생깁니다. 그 찰나가 마음에 들면 셔터까지 누르게 되고요. 자연스러운 흐름 같지만 이 행위의 연속도 결국 편집의 과정입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담고 싶은지도 달라지게 되거든요.


여행을 예로 들어볼까요?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그 도시는 무엇으로 기억될까요? 누군가에게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흔적들로, 누군가에게는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의 경기들로, 누군가에게는 빠에야와 하몽과 샹그리아로, 누군가에게는 물감처럼 파란 하늘과 축제 분위기로 기억되겠죠. 

각자가 셔터를 누른 순간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이라는 것은 어쩌면 '내가 주목하고 선택한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한 포인트가 그 전체를 삼키는 마법이 일어나는 때이죠. 


이는 유형이든 무형이든, 편집된 무엇인가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도 같아요. 이 에디터는 왜 여기에 주목했을까. 어떤 특별함을 느꼈기에 여기서 출발해보자고 생각했을까. 그 과정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편집자적 시각을 한 뼘 더 성장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내가 선택한 것이든 남이 선택한 것이든 그 이유에 대해 늘 질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편집은 상호 소통이거든요. 다른 사람이 선택해놓은 것들 중에서 내가 다시 하나를 선택해야 하잖아요. 서로의 이유가 꼭 일치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확인하고 넘어갈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습이 반복되면 나 역시 좋은 에디터로의 자세를 갖게 되는 거니까요.  



「구성」 : 배치에 관하여


영화 <기생충>은 해석의 요소들이 정말 많은 영화입니다. 볼 때마다 새로운 감탄을 자아내죠. 저도 한 4번 정도 본 것 같네요.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는 영화 전반에 깔린 '수직 구조'입니다. 흔히 계급 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위아래'라는 비유를 실제 화면 속에서 모두 엮어낸 것이죠. 

가난한 사람들이 부잣집으로 가기 위한 각종 동선들은 물론, 소파 위에 앉아있는 부부와 바닥에 몸을 숨기고 있는 가족, 거대한 저택과 그 아래 또 다른 의미의 집까지. 영화 곳곳에 수직의 구조들을 배치해놓고 있습니다. 특히 부유한 계층을 상징하는 박사장(이선균)이란 인물은 극중 '선을 넘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신기하게도 영화 속 캐릭터들이 수평적으로 선을 넘을 때는 그나마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수직적으로 선을 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수평적으로 선을 넘을 때만 해도 해프닝으로 끝나죠. 스포 방지를 위해 말을 아낍니다. 



이처럼 에디팅의 화룡점정은 다름 아닌 '배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 놓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죠.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순서에 맞게 전시하고, 화살표를 이용해 동선에 따라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처럼요. 내가 선택하고 고른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면 좋겠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 빈부격차, 계급갈등이라는 한없이 오래된 소재도 봉준호 감독이 설계한 '수직 구조'를 따라가다 보니 또 다른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던 거죠. 


앞에서 설명한 '관점'과 '주목'의 단계가 다른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었다면, '배치'만큼은 에디터의 주도적 역할이 큰 단계입니다. 따라서 직접 배열하고 부수고 다시 배열하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함이 분명하죠.

 

저는 오히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방법들로 이 '배치'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 것 같습니다. 

가장 자주 하는 것은 바로 선곡 플레이리스트를 짜는 것이죠. 저는 출퇴근 길에 들을 음악을 틈틈이 정리해두는 편입니다. 보통 한 플레이리스트 당 15곡 정도를 고르는데 그날 그날 기분에 따른 테마를 생각하면서 선택하죠. 

이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배치'입니다. 첫 곡은 이 곡이었으면 하고 마지막 곡은 이런 느낌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요. 한 가수의 음악이 너무 자주 반복되지 않게도 해보고 간혹 예측하지 못한 곡들을 끼워 넣기도 합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드는 선곡표처럼 말이죠. 필요에 따라 해시태그를 붙여 저장해놓을 때도 있어요. (#여름밤_테라스에서_듣기좋은 #캐럴은_2월까지_아닌가 #월요일을_금요일처럼_바꿔줄_노래) 


또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해 줄 때도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을 엮어서 추천해 줍니다. 읽는 사람이 그대로 따라 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직접 에디터가 되어 '책의 동선'을 짜주는 것이죠.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해 우울해하는 친구에게는 여행이란 관점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들을 추천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이자 여행에 대한 본질을 일깨워 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한 권, 익숙한 것도 낯설게 바라보면 여행이 될 수 있으니까 그 메시지를 담은 책 <모든 요일의 여행>을 또 한 권, 마지막으로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을 아름다운 스케치들과 함께 녹여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도 한 권. 이렇게 책 리스트를 엮어서 건네면 마치 작은 독립서점의 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입니다. 흡사 '오늘의 책' 코너에 올려놓은 나만의 섹션을, 손님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심정과도 같달까요. 

평소의 순간들을 에디팅 하는 버릇도 어쩌면 이런 느낌을 자주 받고 싶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책이 에디팅 되어있는 모습은 늘 마음을 평화롭게 합니다.



바야흐로 트위터에 올리는 140자의 짧은 글도, 인스타그램에 차곡차곡 쌓이는 피드들도 모두 편집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누구나 에디터가 될 수 있고 그래야만 하는 세상, 편집된 것이 다시 편집되어 또 다른 의미를 갖는 세상인 것이죠.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편집자적 관점을 갖춘 사람들이 확실히 유리합니다. 


일본의 크리에이터이자 편집가인 스가쓰케 마사노부의 말입니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기자보다 편집자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다. (중략) 게다가 각 분야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져서 다양한 분야를 연결해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편집자는 이 좋은 재료를 활용할 줄 아는 요리사가 되어야 한다. 칼질 전문, 밥 짓기 전문처럼 장인의 방식이 아니라, 자르고 굽고, 짓고, 담아내는 모든 걸 해낼 요리사의 재능을 가진 사람의 가치가 비약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개인적으로 편집을 '기술'이 아닌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세련된 스킬이기보다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가깝고, 일인자가 군림하기보다는 다양한 스타일이 함께 공존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게 에디터의 세계니까요.  

아마 을지로 인쇄소의 사장님이 저희를 이해해 주신 것도 그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저 인쇄 일감을 맡기러 온 고객이기 이전에 나름의 치열한 고민을 거쳐 무엇인가를 편집해 낸, 한 명의 에디터로 봐주셨던 것이죠. 그때의 기억이 편집자적 관점을 갖는데 더 애착을 느끼게 한 것 같고요. 

이래서 자꾸 동경이 생기나 봅니다. 일도 멋진데 그 일을 하는 사람들도 멋지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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