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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Mar 26. 2021

당신의 인생에도 정오표가 있나요?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혹시 지금 맡고 있는 업무 중에서 너무 하기 싫은 일이 있으신가요? 이 일만 없어져도 개인적으로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일 말이에요. 

저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과거형이네요) 웹 서비스 쪽 마케터로 일할 당시였는데 잦은 장애와 오류로 인해 사과문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저는 그 일이 정말 하기 싫었습니다. 사과문의 '사'자만 들어도 이미 마음은 도살장행 달구지에 올라타는 소와 같았죠.  

사실 IT 업계에서 사과문은 흔하디흔합니다. 가벼운 버그나 업데이트 장애는 꽤 자주 발생하는 편이고 간혹 과금 장애나 윤리 이슈 같은 심각한 문제가 화두에 오르기도 하니까요. 그만큼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내용의 톤 앤 매너도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렇다 보니 아주 건조하게 사과하고 넘어가는 사례도 부지기수죠. 


하지만 제게는 그 어떤 글보다 쓰기 어려웠습니다. 이미 사용자들이 화가 잔뜩 난 상태로 읽을 거라 생각하면 팩트를 설명하는 것마저도 모두 옹졸한 변명같이 보였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넘길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케터는 사용자 커뮤니케이션의 끝단까지 책임져야 하는 만큼 누가 봐도 제 일이긴 했거든요.  


근데 참 아이러니하죠. 그렇게도 싫은 일이었지만 늘 남들은 사과문을 어떻게 쓰나 싶어 두리번거리는 제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겁니다. 버스 정류장 한편에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며 시작하는 마트 폐점 공지문도 꼼꼼히 읽어보고, 밥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 붙은 '재료값 폭등으로 부득이 500원을 인상하였습니다'라는 안내문도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미안함을 전하는 수많은 글들이 어떤 말로 시작해서 어떤 말로 끝나는지, 각각의 화법과 분위기는 또 어떻게 다른지 보고 다니는 게 작은 일상이 된 거죠. 




조금 뻔뻔한 사과문


그러다 우연히 '정오표'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단어가 생소하신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주로 책이나 잡지 같은 출판물에서 잘못된 글자나 정보를 바로잡아 제공하는 표를 '정오표'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틀린 내용을 정정해서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죠. 문제집 같은 기능 서적에는 맨 뒤에 따로 첨부되는 경우도 있고 요즘은 아예 출판사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정오표' 섹션을 만들어 제공하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증쇄를 찍을 때는 잘못된 글자들이 대부분 수정되기 때문에 그마저도 아주 한정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소소한 재미라는 게 이런 걸까요.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정오표들을 보다 보니 묘한 중독성이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정오표가 큰 정보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대부분이 별 특징 없이 주로 세 가지 정도의 공통 항목을 제공하거든요.  


영역(페이지), 수정 전 내용, 수정 후 내용. 


아주 간단하죠. 어느 부분에서 무엇이 틀렸고, 그것을 이렇게 다시 바로잡는다는 내용이 다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제가 읽은 책들의 정오표를 찾아보며 흥미를 붙이는 수준이었어요. 그러다 가끔씩은 정오표를 먼저 보고 관심이 가서 그 책을 찾아 읽는 경우도 생겼죠.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잘못된 것을 먼저 접하고 제대로 된 것을 나중에 보는 게 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것이 있었습니다. 가끔은 꽤 심각한 오탈 자나 잘못된 정보들을 바로잡는 정오표가 올라오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아니, 어떻게 이 상태로 출간할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명적인 오류를 담고 있는 책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간략한 수정 정보만 정리해서 올린 정오표를 보면 조금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증쇄에 수정한다고 해도 이미 그전에 책을 읽은 독자들은 어떡하나 싶은 오지랖까지 발동하곤 했고요. 



요즘은 이렇게 정오표를 온라인에 게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처 : 위즈덤하우스>




그리고 마침내 그 경험의 끝을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2018년 1월, 도쿄 여행을 갔을 때였어요. 저는 일본에 가면 늘 츠타야 서점에 갑니다. 각 지역의 츠타야 서점은 매장 분위기나 에디팅 요소가 모두 다르기에 언제 가도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죠. 가끔은 하루에 같은 지점을 두 번 이상 방문할 때도 있습니다. 

그날은 롯폰기에 위치한 츠타야 서점을 방문한 날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서점을 가도 대부분의 책은 무슨 내용인지조차 모릅니다. 그저 표지를 구경하고, 공간을 구경하고, 영어서적 코너를 두리번 거릴 뿐이죠. 그렇게 이곳저곳을 재미삼아 돌아다니던 중 여러 권의 책을 화려하게 진열해놓은 코너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커다랗게 쓰인 코너명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죠. 


「正誤表 新裝版 (정오표 신장판)」

정오표가 붙은 책이나 그 내용을 반영한 개정판을 모아 놓은 섹션이었습니다. 그중 '정오표'라는 세 글자가 너무도 또렷하게 제 눈에 들어온 거였죠. 그리고 곧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분명 정오표는 틀린 내용을 바로잡는 일람표이고, 그건 딱히 자랑하거나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닌데 왜 그게 특별 코너에 자리 잡고 있을까 하고 말이죠. 

더군다나 거기 있는 책들은 문제집 같은 기술 서적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신예 작가로 최고의 주목을 받았던 '야마자키 나오코라'의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같은 신작은 물론이고, 비교적 짧고 읽기 쉬운 문체로 알려진 '요시모토 바나나'의 <바다의 뚜껑> 같은 작품도 있었거든요. 이런 신간이나 가벼운 소설에도 고칠 부분이 있나 싶어 헛웃음이 났습니다. 그리곤 책을 집어 들어 맨 뒷장을 보니 무슨 간이 영수증처럼 무성의하게 붙어있는 정오표가 눈에 띠였습니다.  

압권은 따로 있었죠. 영화 <화차>의 원작자이자 미스터리 여왕이라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마술은 속삭인다> 같은 명작들도 함께 진열되어 있었거든요. 그 책이 1998년에 출간되었으니 무려 20년 된 작품에까지 정오표가 발행되는 것이죠.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미안하다는 사과문을 붙여놔도 모자를 정오표 판을 마치 새로운 시리즈가 출간된 것처럼 프로모션 하다니요. 그것도 도쿄 츠타야 서점 한가운데서 말입니다.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여행을 마친 후 일본 유학을 오래 다녀온 지인에게 제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에요. 일본은 과월 호 잡지에도 정오표가 발행되거든요. 제가 낚시를 좋아해서 유학생 시절에 낚시 잡지를 자주 사서 봤는데, 글쎄 '청새치 몸길이가 최대 4미터다'라고 되어있던 초판이 그다음에는 '최대 4.2미터다'로, 또 그다음에는 '최대 4.5 미터까지 발견된 사례가 있다'로 정오표가 붙더라고요. 심지어 작은 동네 서점에 가면 각 출판사들이 보내준 정오표들을 입구에 차곡히 정리해놓은 집도 있어요. 필요한 사람은 직접 가져가서 보고 확인하라는 거죠."


진심일 게 따로 있지 무슨 정오표 하나에 이렇게 진심인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사실 큰 의미는 두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저 일본의 출판 시장이 워낙 보수적인데다 여전히 종이책 시장이 건재하니까 존재할 수 있는 특유의 문화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알게된 정오표의 세계는 참 신기하더라고요. 제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깊고 재미난 세계였음은 물론이고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작가와 정오표의 관계가 그랬습니다. 실제 일본 출판계에서는 작가가 책을 출간한 이후에도 혹시 잘못된 부분이 더 없는지, 시간이 흘러 시대 상황과 맞지 않는 표현이나 단어는 없는지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한 직업윤리 중 하나로 여겨진다고 했습니다. 출간된 작품을 완성작이라 생각하지 않고 계속 다듬고 관리해 줘야 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죠. 

그리고 이 정오표는 작품이 독자를 만나기 시작하며 더 큰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 출판사에 계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도 독자들 중에 직접 정오표를 만들어 보내주는 분들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대학교수나 한 분야에 정통한 마니아들도 있지만 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독자들도 책의 곳곳에 숨어있는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며 전화나 메일로 알려주신다고 하더라고요. 어쩌면 위키피디아 같은 집단 지성의 시초가 이 정오표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정오표의 세계를 통해 저에게 꽤 큰 가치관의 전환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일을 하건 개인적인 업무를 하건 간에 약간의 결벽증 같은 게 있었습니다. 첫인상의 중요성에 심취해서인지 아니면 실수를 용납하는 게 너무 자존심 상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완벽히 잘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거든요. 어느 한구석에서 오류나 실수가 발견되면 그게 몇 날 며칠이고 신경이 쓰였습니다. 

아마도 사과문을 쓰기 싫었던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는 제가 담당하고 있는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하는 것도 너무 싫었고 이를 이해해달라며 사용자에게 고개 숙이는 것도 싫었던 겁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해놓고 다음에 또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면 꼭 제가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자괴감까지 들었으니까요. 


물론 오류를 당연시하거나 별것 아닌 것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게 훨씬 큰 문제겠죠. 다만 무엇이든 한 번에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문가들을 통해 수차례 교정을 거친 책도 어디선가 잘못된 부분이 발견될 수 있으니까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BIC 사의 광고입니다. 치명적인 오타를 수정 테이프로 지우라고 말하죠. 이 또한 '바로잡기' 입니다.




나는 정오표를 발행하고 있을까? 


정오표의 본질도 거기에 있습니다. 

정오표는 '잘못된 것(誤)'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로잡는(正)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사소한 것은 사소한 대로, 큰 것은 큰 대로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제대로 고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죠. 

그제서야 츠타야 서점 한가운데 놓인 정오표 붙은 책들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습니다. 그들에게 정오표판, 신장판이라는 것은 잘못을 바로잡아 더 좋아진 것,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계속 완벽해지고자 노력하는 것인 거죠.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그 책들을 독자들에게 빨리, 눈에 띄게 알려줘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졌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새 아이폰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의 단점을 보완해 더욱더 멋진 아이폰이 되었습니다'라고 외치는 애플처럼 말이죠.   


사실 기획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늘 딜레마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엎을까 말까' 하는 순간이죠.  

지금 내가 힘겹게 이끌고 있는 이 일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아예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게 더 빠르고 나을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브랜딩 분야는 그런 딜레마가 더더욱 심합니다. 초반에 각인이 잘못되거나 경험 설계가 어설프면 그 후유증이 꽤 오래가거든요. 그래서 이따금씩 차라리 지금 하던 것을 접고 새로운 브랜드로 탈바꿈 시키거나 또 다른 서브 브랜드를 둬서 돌파구를 찾아볼까 하는 고민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정말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적극적으로 정오표를 발행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죠. 끊임없이 잘못된 것을 찾고 이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는지 아니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으니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리셋 증후군'이 돋은건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진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이라는 개념이 있죠. 처음부터 완벽한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일단 무엇인가 하나를 만들어 놓고서 이를 끝없이 측정하고, 수정하고, 개선하며 발전시켜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매년 무수히 많은 히트 제품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고요.  

초정밀의 극한으로 불리는 우주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루트를 따라 목표물을 향해갈 것 같지만 실상은 비행 중에 수백만 번의 미세한 궤도 수정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정오표를 만들고 있고 그 오류를 바로잡는데 한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죠. 


저 역시도 이제는 정오표 쓰는 걸 크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끔은 정오표를 통해 놓치고 있던 부분까지 깊숙이 들여다볼 때도 있거든요. 의미 없는 완벽주의에 빠져서 스스로 곪아가는 것보다는 도려내고 꿰맨 자국이 남아도 건강하고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천만 배 나으니까 말이죠. 

어쩌면 큰 미사여구 없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이를 어떻게 고치겠다는 정오표의 약속처럼 정직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게 제일 큰 용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함께 해봅니다.  

그러니 '오(誤)'보다는 '정(正)', As-is보다는 To-be를 위해 살자고요 우리.   



여담 ㅣ

정오표에 대해 설명해 주시던 출판사 관계자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오표의 매력이 뭔 줄 알아요? '수정 전'과 '수정 후'를 표기하는 비율이 똑같다는 거예요. 창피하다고 해서 잘못된 부분을 작게 써놓거나 새로 교정한 부분을 크게 부각시켜 쓰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나란히 배치해서 무엇을 어떻게 바로잡았는지 정확히 보여주는 게 핵심이에요.
나는 그래서 매년 새해 목표를 쓸 때 정오표처럼 써요. 올해는 이런 부분이 아쉬웠으니 내년에는 이렇게 바로잡겠다고. 실수를 감춰서도 안되고 목표를 허황되게 잡아서도 안되니까, 정확히 내가 딱 고쳐야 하는 부분만 바로잡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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