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루키'처럼 표현할 수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소설가가 바라보는 소설가란 어떤 직업인지, 어떤 자질과 태도와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에 대해 쓴 자전적 에세이죠.
그가 글을 쓰고 살아오면서 수없이 풀었다 묶었다를 반복했을 날 것 그대로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서 무척 좋아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또 에세이라고만 하기에는 현실 문학계에 뼈 때리는 말들도 군데군데 있고요)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고 다시 묻기를 반복하며 글을 끌고 가는데, 저는 그 방식이 적당히 혼란스러우면서도 적절히 수긍되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다가 이내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죠.
한편 이 책은 제게 직업관에 대한 중요한 생각들을 심어준 책이기도 합니다.
물론 소설을 쓰는 사람과 기획을 하는 사람은 언뜻 봐선 큰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인생의 큰 질문들과 마주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책의 흐름은 비단 기획자 뿐 아니라 어느 직업을 치환해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해체한 상태로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누군가에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한다면 그 본질과 속성을 이처럼 세밀하고 생동감 있게 묘사할 수 있을까 하는 자기반성을 하도록 만들거든요. 그렇게 들여다본 '나의 일'은 어떤 모습인지 기획이라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건 또 어떤 의미인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고요.
왜 가끔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다 보면 '가만있자... 근데 나는 잘 살고 있는 거 맞나?'하고서 갑자기 초점이 나를 향하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제겐 이 책이 비슷한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키 옹의 고민과 생각들을 잠시 빌려 우리의 이야기를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직업으로서의 기획자'이야기를요.
- chapter 1 :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종인가' 중에서
하루키는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본인 역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첫 등단했을 당시 '(소설을 쓰는 게)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건가?'하고서 반문했다고 해요. 하지만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사실 진입장벽이 없다는 건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기쁜 일이지만 이미 그곳에 자리한 사람에게는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자격 없이도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언제든 나를 저 밖으로 밀어낼 수 있으니까요.
저는 기획을 하는 사람들도 똑같은 처지라고 봅니다. 특별한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분야가 아주 명확한 것도 아니며, 기획의 과정을 차곡차곡 모아 나만의 포트폴리오 만드는 것 역시 쉽지 않죠. 심지어 운 좋게 히트 상품이나 대박 서비스를 기획했다고 해도 나중에 그거 자기가 기획한 거라고 손을 드는 사람이 족히 수십 명은 넘습니다.
그러니 기획자는 늘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링 위에서 버티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운명인 거죠. 기획을 오랫동안 잘하고, 기획으로 먹고살고, 기획자로 살아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이 난제에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하겠지만 최소한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저는 기획자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게 중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일을 풀어가는 사람인지에 대한 스타일 정도는 정립이 되어 있어야 하는 거죠.
'저 사람 손에 맡기면 돌도 금이 된대' 같은 히트메이커 신화는 요즘 세상에서 점점 현실화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오늘날처럼 다양하고 구체적인 니즈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한 명의 기획자가 조물주급 히트작을 연달아 만들기는 어려우니까요.
대신 '아 이건 그 사람이 정말 잘할 것 같은데'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체 불가능까지는 아니어도 나에게 맞는 일을 끌어오는 자성 정도는 띄고 있는 게 유리한 거죠. 나의 가치관으로, 나의 스타일로, 나의 결과물로 조금씩 존재감의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주변에서 먼저 인정하고 알아보는 법이거든요.
그게 쌓이다 보면 이 바닥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조금씩은 생긴다고 봅니다. 새로운 누군가가 링에 올라오더라도 또 내 주변에서 급격한 소용돌이가 몰아치더라도 최소한의 무게중심은 잡을 수 있는 그 힘 말이죠.
- Chapter 10.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 중에서
소설을 쓸 때 어떤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하루키 자신은 늘 머뭇거린다고 합니다. 딱히 누군가를 떠올리고 쓰는 건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오히려 그저 몇 가지 떠오르는 이미지와 감정들을 적절히 조합해 단어를 찾고 문장을 이어갈 뿐이라고 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 소설을 읽을까 같은 복잡한 생각은 전혀 못한다고 합니다.
대신 그는 '모든 창작 행위에는 스스로를 보정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구체적으로 의식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조금 더 나은 존재에 끼워 맞춰가며 모순들을 해소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는 것이죠. 이를 '자기 치유'이자 '자기 정화 작용'이라고 하루키는 표현합니다.
저는 이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습니다.
사실 기획 일은 하루키의 집필 과정과 정반대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기획의 타깃이 되는 사람들, 누가 쓰고 누가 돈을 낼 건지에 대해 시선이 머물러 있어야 하니까요. 독자를 상정하지 않는 글쓰기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스스로가 정화되는 경험은 소설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아니 어쩌면 감히 더 크다고 자부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문제와 마주하고 이를 풀 해법을 찾고, 그 답을 제품이나 서비스, 경험으로 옮기는 작업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올바르게 정리해 주는 역할도 하거든요. 기획을 제대로 한 기획자라면 그 결과물 앞에만 있어도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와 대학교 때 공모전 동아리를 같이 했던 한 친구는 지금 유명 놀이공원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그 친구를 만나 일하는 얘기를 듣다 보면 예전과는 아예 눈빛이 달라져 있는 걸 느껴요. 놀이공원의 희망찬 세계관을 설명하며 (사실 놀이공원에 세계관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매번 어떻게 해야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최고의 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거든요. 그리고 자신이 디자인하는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놀이공원을 방문한 모든 사람에게 두근거림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건 바로 그 친구 자체입니다. 대학 때는 좀 어두운 구석도 많은 친구였는데 지금은 훨씬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 되었거든요. 자신이 디자인한 캐릭터 열쇠고리를 부적처럼 달고 다니는 친구를 보면 마치 매일을 놀이공원 속에서 사는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처럼 좋은 기획은, 기획자로 하여금 자기 치유의 힘을 줄 수밖에 없다고 봐요. 나부터 만족하고 감동하고 설득되고 바뀌어갈 수 있어야 다른 누군가도 그럴 수 있는 거니까요.
때론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기획도, 때론 상부에서 하라니까 내 의도와 전혀 다르게 꾸역꾸역 해내야 하는 기획도 있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노력이 기획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직업윤리 아닐까 합니다. 내가 아프면 남을 치료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진정성을 가져야 남도 그 진심을 알아봐 주는 법이죠. '자기 치유'의 힘은 그래서 무서운 것 같습니다.
- Chapter 4. '오리지널리티에 대하여' 중에서
기획을 하다 보면 혼란하고 또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거 주인이 누구인 걸까? 처음 시작은 어디서 였을까' 하는 순간이 그렇죠. 어디까지가 레퍼런스고 어디까지가 오마주인 것인지, 어떤 경우에 모방이 되고 어떤 경우라야 업계의 표준으로 참작될 수 있는 건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잘 베끼는 것도 능력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로 서로서로 퉁 치는(?) 분위기가 팽배한 요즘이지만, 그래도 늘 마음 한구석에는 '네 것과 내 것' 혹은 '누구누구의 것'이란 표식이 옅게나마 붙어 있습니다.
소설가도 비슷한 고민을 하나 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한 챕터는 '오리지널리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무엇을 최초라고 부를 수 있는지, 과연 최초라는 게 있기는 한 건지, 있다면 나에겐 어떤 것들이 최초인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고 있죠. 소설가로서, 소설의 근간이 되는 생각의 출발점이자 원형을 찾고 싶었던 겁니다.
하루키는 그것을 '자유로움'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내추럴한 감각을 끌어낼 수 있는 상태.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들 아래에 자리한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 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한 그대로를 전하고자 하는 욕구와 충동이 결국 오리지널리티라고 말이죠.
언뜻 보면 난해한 표현 같기도 합니다만, 쉽게 말해 '자연 상태에서 온전히 자신의 것을 표출하는 행위'쯤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좋은 말로는 업력, 시쳇말로는 짬밥이 쌓여갈수록 어깨 힘을 빼는 게 무지 어렵습니다. 저는 이걸 '창작의 부양가족'이라는 우스갯소리로 포장하는데요, 뭔가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과 또 너무 안드로메다로 가서는 안된다는 현실감, 거기에 몇 차례 보고 과정에서 날아올 피드백을 상상하며 시작되는 자기검열까지. 힘을 빼고 편한 마음으로 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번뇌들이 있는 법이죠.
그 때문인지 늘 뭔가를 흉내 내려고 할 때보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 냈을 때가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처음엔 그게 우연인 줄로만 알았고 나중에는 그게 제 능력인 줄 알고 자만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건 어떤 에너지와도 가까운 것이더라고요. 내가 먼저 확신을 갖고 느끼고 경험한 뭔가를 다른 사람에게 온전하게 전달하고픈 욕구이자 에너지인 거죠.
하루키는 이것을 '사람들의 마음의 벽에 새로운 창을 내고 그곳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이 느낀 완벽한 심리 상태를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도 왜곡 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자신의 오리지널리티인 것이죠.
개인적으로 기획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화살표가 밖을 향해야 할 때도 있지만 안을 향해야 할 때가 더 많거든요. 누구보다 나 자신과 먼저 선문답을 주고받으며 스스로를 자유로운 상태로 만들 수 있어야 좋은 기획의 출발점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제품과 브랜드를 탄생시킨 사람들도 대부분 이 오리지널리티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옷에 그 흔한 라벨 하나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메종 마르지엘라' 제품들은 창업자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해체주의가 그 원형입니다. 이름과 형식을 부여하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극한의 자유로움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죠. 그리고 자신의 제품을 사는 사람들도 똑같은 경험을 하기를 원합니다.
명품 생활 자기를 만드는 '광주요'의 조태권 회장님은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고 나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자기에 아무 음식이나 담을 수 없다. 그에 걸맞은 술과 음식이 있어야 한다'. 그 생각은 프리미엄 증류주 '화요'를 탄생시켰습니다. 스스로 감탄하고 확신한 경험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어 제품을 만든 것이죠.
가끔 자신의 경험치를 내세우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물론 그 내공과 스토리는 리스펙트 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경험을 쌓기 위해 나만의 오리지널리티와 맞교환하는 일은 최소화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건 꼭 기획의 방법론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인 안타까움 때문이에요. 저는 기획하는 사람들이 가진 그 마음속의 오리지널리티들이 세상 밖으로 많이 나왔으면 좋겠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 에너지로 새로운 자극을 받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창을 내고 그 안으로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어 주려면 결국 내가 가진 '공기'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남의 공기를 뺏어다가 밀어 넣어 줄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러니 여러분만의 공기, 여러분이 전달하고픈 원형, 여러분만의 자유로움. 그 오리지널리티를 발견하는 데 최선을 다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여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후기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이다. (중략) 그런데 어쩌다 소설을 쓰기 위한 자질을 마침 약간 갖고 있었고, 행운의 덕도 있었고, 또한 약간 고집스러운 (좋게 말하면 일관된) 성품 덕도 있어서 삼십오 년여를 이렇게 직업적인 소설가로서 글을 쓰고 있다.
어쩜 에필로그까지 우리의 상황과 비슷할까요. 우리 역시 기획에 유리한 약간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을지 모르지만 많은 운이 따라주고 또 나름의 고집과 신념도 있어 지금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러니 적당한 자부심과 알맞은 자존감 정도는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직업으로서의 기획자'가 어떤 사람이냐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멋진 보통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