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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경민 Jul 25. 2016

소비에트 연방 카메라, Zorki

Zorki 1 (1948–56) 에 관한 노트

  왜 그랬을까. RF (Range Finder) 카메라를 경험하고 싶어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진 찍기를 취미로 가진 이상 장비에 관심이 확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같은 사물도 각기 다른 카메라로 찍으면 서로 다른 느낌이나 결과물의 차이가 난다. 어느 것이 좋다는 건 취향적 문제지만 다른 카메라를 사용하기 전까지 자신의 취향을 알 수 없다. DSLR, DRF 카메라를 사용해 보는 것도 좋지만 금전적인 면과 시간이 갈수록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거꾸러 거슬러 클래식 카메라를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라이카(Leica)나 콘탁스(Contax) 카메라는 부담이 크고 그다음 저렴하다는 보이그랜더 베사(Voigtlander Bessa) 카메라도 비싸긴 마찬가지다. 렌즈 포함해서 10만원대 카메라를 찾다가 러시아 클래식 카메라 조르키4를 발견했다. 디자인보다 RF 카메라의 기능적인 체험하고 싶었던 터라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어느 정도 적응을 거치니 RF 카메라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고 오히려 다른 방식의 카메라보다 재미있었다. 소위 말하는 손맛 같은 것이다. 자동으로 초점을 잡는 방식이 아니라 수동으로 초점을 잡아야 하고 카메라에 자체적인 노출계가 없기 때문에 휴대폰의 노출계 어플(Light Meter)을 이용하여 노출을 체크한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노출계 없이도 공간에 대한 적정 노출의 감이 생긴다. 뷰파인더에서 보이는 이중 합치 형식의 초점 잡기도 점차 요령이 생기면서 빠르게 초점을 잡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미리 카메라의 거리와 셔터 값, 조리개 값을 적정으로 맞추고 찍을 때는 보다 쉽고 간단하게 촬영된다. SLR 카메라에선 필요 없고 낭비적 행위이지만 RF 카메라에서는 이 행위를 즐거움으로 바꾸어 놓는다. (간혹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사진이 찍기 싫어지면 다시 SLR로 문제를 해결한다. 병행이 답인가. 어찌 되었든 사진 찍기는 즐거움이 우선이다.)




필름부의 문제로 좌측 상단에 고정적 빛샘 현상이 나타난다. (우측에도 색바램이 있다) _ Zorki4, Jupiter-8




어느 정도 익숙함이 왔을 때 조르키4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셔터막의 빛샘 현상이다.(중고 클래식 카메라에서 반드시 확인해봐야 할 요소다. 외관상 기능적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현상을 맡겼을 때 셔터막이나 저속, 고속 셔터스피드 등에서 생길 수 있는 빛샘이나 셔터막 문제를 빠르게 확인해야 한다. 필름 촬영으로 인해 확인이 늦어질수록 판매자나 구매자의 책임도 모호해진다. 중고 거래시 조건을 두든지 상호 약속이 필요하다.) 수리를 맡기면 수리비가 카메라 가격만큼 나올 것 같아 결국 소장하기로 하고 또 다른 조르키를 알아보기로 했다.




Zorki 1, 1948년-1956년 까지 제작 되었다.




이전과 같은 조르키4 보다 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카메라를 사용하고 싶어 이베이(Ebay) 검색을 통해 러시아에서 직접 온 바르낙 카피인 조르키1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윗면에 새겨진 조르키 음각을 제외하고 바르낙과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라이카 마니아들은 단번에 구별한다.) 조르키는 바르낙의 카피 때문인지 '인민의 라이카, 가난한 자의 라이카' 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바르낙과 비교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본다면 조르키는 훌륭한 카메라다. 135필름 RF 카메라 입문으로 최상의 카메라다. (조르키는 M39 마운트로 렌즈 선택의 폭이 넓다.) 조르키 카메라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독일과 전혀 다른 스타일로 카메라를 만들어 갔다. 러시아 카메라 스타일로 시도되어지는 것은 좋으나 그 방향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라이카 바르낙과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조르키는 필름 카메라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해서 부담이 없고 스트랩 고리가 없기 때문에 들고 다녀야 한다. 한 번씩 이 카메라에 대해 궁금하거나 알고 있다면 한 마디씩 하는 분들도 있다.

"저, 이 카메라 알아요."

아마 대부분이 조르키가 아닌 바르낙으로 알고 이야기한다. 이 카메라에 대해 설명하기에는 뭔가 모를 복잡함이 있다. 난해한 복잡함이 아닌 즐거운 복잡함이다. 카메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즐겁고 재미있다. 클래식 카메라는 이야기를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대화를 할 때 기본적으로 이야기에 밀도가 있다고 해야 할까.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세상임에도 어렵게 클래식 카메라를 사용하거나 관심이 있다는 건 나름의 사연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연 있음'은 질문과 대화가 이루어지고 그 대화 사이에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알아간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밑 덮개와 필름 스풀(spool)이 분리된 모습_스풀은 플라스틱과 철제로 되어 있다.




편함에서 나올 수 없는 것들이 아직 필름이나 클래식 카메라에서 나오고 있다. 그 아우라(Aura)로 필름은 종말 되지 않고 클래식 카메라는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낸다. 배터리 없이 아직도 '철컥', '틱', '촥' 거리며 작동되는 카메라를 볼 때마다 신비감을 넘어 경이감까지 든다. 필름은 횟수의 제한성으로 보다 신중해진다. 디지털과 필름에 따른 관찰의 깊이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의 경우 셔터를 누르기 직전의 긴장감이랄까. 이런 것들의 순간적인 것에 대한 차이가 난다. 무제한적인 집중과 제한적 집중에 따른 사진의 묘한 차이다. 무엇이 더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제한에 따른 긴장됨의 느낌이 필름에서 나기 때문에 필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좌측은 초점 파인더, 우측은 50mm 화각 파인더.




조르키1의 파인더는 2개로 이루어져 있다. 초점을 잡기 위해 광학적으로 확대된 파인더와 50mm 화각의 파인더다. 안경을 쓰지 않았다면 불편함이 없지만 안경을 쓴 상태로 파인더를 보면 파인더 주변의 거친 돌기로 안경 표면에 스크래치가 생긴다. 안경을 쓴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안경에 실기스가 잔뜩 보인다. 라이카 바르낙 후기형의 경우 파인더 주위 부분에 라운딩 처리가 되어 있어 안경을 사용해도 흠집 문제가 없다.)

볼커나이트(Vulcanite, 경질 고무_바디 재질)의 패턴이나 재질은 바르낙에서 사용하던 것과 다르다. 조르키1의 경우 칠이 벗겨지듯이 겉표면이 벗겨진다. 라이카 바르낙의 볼커나이트를 재현하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다른 재질 탓인지 균열이나 깨짐은 일어나지 않는다.




본체 곳곳에 껍질 벗겨지듯 조금씩 뜯어진다.




Range Finder, 조르키로 충분한가.

클래식 카메라는 같은 카메라 라도 관리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의 느낌을 준다. 자신에게 맞는 클래식 카메라 찾는다는 건 유물을 발견하러 가는 탐험가와 같다. 클래식 카메라를 구매했다는 것은 유물 중 일부 곧 하나의 퍼즐을 발견한 것이다. (이건 환자의 관점이다.) 일반적으로 느낌보다 기능에 문제가 없다면 조르키만으로도 충분하다. 인더스타-22 50mm 렌즈도 아주 좋다. 더 욕심낼 필요도 없다. (일부러 탐험할 필요는 정말, 정말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재미있는 카메라가 많다. 병적 호기심은 만족을 모른다.




엘마(elmar)와 동일한 접이식(collapsible) 3군 4매 인더스타(industar)-22 렌즈




오래된 카메라를 보고 있으면 '오늘날에는 왜 이런 멋이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든 간에 존재하는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변화 앞에서 실용은 언제나 최선의 가치였다. 그 가치에 대해 나는 무기력한 고개를 들고 다시 묻는다.

과연 그런가?




사진이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으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_ 베르네 비숍



Zorki 1_industar-22 400tx 자가현상, 문경민 2010






Zorki 1_industar-22 400tx 자가현상, 문경민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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