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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경민 Aug 08. 2016

콘탁스 RF 복제, Kiev

 Kiev II 에 관한 노트


‘이렇게 고장 나다니, 운도 없다.'
러시아에서 온 카메라 키예프(Kiev)를 만지며 생각했다. 중고 기계식 카메라에서 완벽함을 가진 카메라는 보기 어렵다. 민트급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면 조금씩 문제를 가지고 있다. 사용하면서 문제점을 더 발견하게 된다. 별 수 없다. 원하는 중고 기계식 카메라는 드물게 나오므로 큰 문제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가격에 따라 상태도 다르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겉은 괜찮지만 어디에서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여럿 거래를 하다보면 이건 사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문제를 가진 중고 카메라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짧은 시간 동안 애정이 생긴다고 할까. 이 카메라는 내가 품고 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하다.)




Contax II 복제 카메라 Kiev II. 1947년부터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제작되었다. 커버는 콘탁스로 각인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배상으로 소련은 독일처럼 거의 동일한 모양인 기계식 RF 카메라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름은 콘탁스가 아닌 키예프(Kiev)다. 이베이(ebay)에서 조르키를 구매할 때 보았던 제품이다. 조르키와 마찬가지로 렌즈(Carl Zeiss Jena Sonnar copy 5cm f2)를 포함해 100달러 조금 넘는 가격이라 저렴해서 구매했다. 처음 받았을 때 느낌이 괜찮았다. 콘탁스와 거의 동일해 보여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필름을 넣고 한롤 찍었다. 현상을 맡기고 아무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로또에 당첨된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 로또에 당첨된 적이 없지만)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는 생각이 들 때 문제가 발생했다.




왼쪽부터 뷰파인더와 반쯤 감아 놓은 셔터부




어느 날 공 셔터를 날리다 갑자기 힘없이 셔터막의 스피드가 느려지는 것이다. 셔터부의 꼬임 현상인지 모르나 셔터부가 망가졌다. 전조증상 없이 갑자기 고장이 났다. 운이 없었다. 이후 알게 된 것이지만 독일 콘탁스 RF는 단단하고 고급스러운 금속 재질의 셔터막을 가지고 있다. 후기형 키예프 카메라 셔터막의 경우 콘탁스 카메라와 비슷해 보이지만 견고해 보이지 않고 내구성이 약해 보인다. 재료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 밖에 마감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들어간 부품들은 제대로 복제된 것이 아닌 원가절감이 느껴지는 부품이 있다. 키예프 카메라는 생산연도에 따라 부품이 다르게 구성되는 것 같다. 이 모델은 후기형이고 기념 모델에 가까워 초기 키예프 카메라의 생산 마감에서 더 벗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초기형은 독일 콘탁스의 부품과 거의 동일하다고 한다.




뒷면에 새겨진 글씨를 보기 위해 본체 앞부분을 분해했다.


뒷면_음각으로 Kiev 라고 새겨져 있다.



키예프 카메라는 40-100달러 사이로 저렴하다. 다시 구매할까 생각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기계식 카메라에서 중요한 것은 내구성에 따른 신뢰다. 다양한 환경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클래식 카메라 수집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구매의욕은 사라졌지만 초기형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은 가지고 있다. (사실 안경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뷰파인더의 크기가 너무 작아 불편한 편이다. 안경 스크래치의 문제도 생긴다.)




커버를 뜯어낸 부분에 부품 일련번호 SoS가 새겨져 있다. (아니면 기술진이 보낸 구조의 부호인가)




키예프 카메라를 조금 더 사용해 봤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뜻하지 않음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원하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무엇을 얻고자 함에 얻지 못한다면 나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결국 내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의 문제다. 얻었다 함은 내가 어떤 이익을 보았다가 보편적일 테다. 하지만 원하는 상이 아닌 다른 것도 얻은 것이 있는가. 그것이 내가 생각하고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예상치 못함에 대한 유익은 어떤 것이 있는가. 그곳에서 배움에 대한 틈을 발견하려 한다. 철학이나 심리학 책에서 배움이 아닌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상실이 왔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이 들고 그 감정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그 감정을 난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떻게 다른 감정으로 치환할 수 있는가 생각한다. 유익의 유무도 될 수 있겠지만 스스로의 발견하게 된 감정은 무엇인가가 알고 싶은 부분이다. 분노나 기쁨의 단어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 단어를 더 쪼개어서 나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럼 화, 분노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단어는 해체되고 나의 감정도 세분히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어떤 사건을 통해 발견된 감정은 무엇인가 생각을 하게 된다. 감정의 세분화를 통해 나를 분석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조금씩 만들어 간다. 사진을 하면서 얻게 된 유익이다.




1920년대 부터 사용한 자이스 이콘 로고. 렌즈모양 형태로 만든 로고는 지금도 세련적이다.




키예프 카메라를 다시 사용함에 망설임이 있다. 그것은 파인더가 작다는 것과 카메라 앞면에 있는 초점 다이얼의 손가락 조작으로 이중 합치에 방해를 받는 점이다. 앞면의 다이얼 조작으로 인해 이중 합치 파인더가 손에 가려져 초점을 맞추는데 불편해질 때가 있다. (결국 나의 신체적 결함 때문이다. 손가락은 짧고 눈도 나쁘다) 이 문제를 후기 콘탁스나 부분적으로 카피한 니콘 RF 카메라의 경우 초점 휠의 위치가 개선 되었지만 키예프는 초기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왼쪽부_필름 감는 노브와 감도값 설정(노출계는 없다), 오른쪽부_초점 휠, 필름 카운터, 셔터 스피드, 셔터 와인딩 노브, 셔터 기능이 있다.



B급 문화가 있다. B급은 단계의 급을 넘어서 '마니아적, 일부적'인 의미로 쓰인다. 키예프는 스스로 다가가지 않는 이상 사용하기 쉽지 않은 B급 카메라다. 독일과 일본 카메라가 주류이지만 합리적 가격과 성능으로 러시아 카메라는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낸다. 광학적 성능이 떨어지는데 매력은 더해진다. 러시아 카메라의 특유의 느낌은 러시아만 낼 수 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대안이 없는, 저렴한데 매력적인 러시아 카메라에 사람들이 빠질만하다. 독일과 일본 카메라를 보면서도 여전히 눈길이 간다. B급인 러시아 카메라는 신비함을 가진다. 신비는 구매되고 사용기가 된다. 후회할 것 같으면서도 호기심을 가지게 하는 러시아 카메라, 연구해 볼 만 하다.




아마추어 사진가의 문제점은 사진 찍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다. _ 테렌스 도노반





Kiev II_Sonnar copy 5cm f2_C200_elite 5400_2010 문경민





Kiev II_Sonnar copy 5cm f2_C200_elite 5400_2010 문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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