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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경민 Aug 15. 2016

콘탁스 T*, TVS-D

Contax TVS-D 에 관한 노트


  여러 종류의 카메라를 경험하다 보면 콘탁스(Contax)에 대한 막연한 환상 같은 것이 생긴다. 특히 풀프레임(Full Frame)  DSLR 카메라인 ND(Contax N Digital)의 경우가 그렇다. T* 코팅의 렌즈와 ND의 조합에서 나오는 공간감(공간감이라는 표현은 사진의 사전적 용어는 아니지만 JPG 이미지 프로세싱에서 나오는 원색과 저채도의 동시적 표현은 3D 입체 같은 신비한 느낌을 준다.)은 언제나 탄성이 나온다. 늘 문제가 그렇듯이 가격에도 탄성이 나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저채도와 원색의 동시 표현 가능한 신비의 카메라, Contax N Digital (아는 분의 카메라를 살짝 만져봤다.)




저렴한 가격으로 콘탁스 바디에  T* 코팅 렌즈를 사용할 수 없을까. 고민 중 TVS (T* Vario Sonnar) 필름 카메라를 봤지만 필름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가 TVS-D를 발견했다. 바로 이 카메라다 생각하고 중고장터 장복 끝에 구매했다. 오래된 카메라(2003년 출시)이기 때문에 인터페이스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것에 조금씩 적응이 되어 갔다. MF모드로 거리 값은 무한대 전까지 놓고 조리개는 F8로 설정하고 찍으니 빠른 스냅샷이 가능했다. 배터리가 빨리 소모되기 때문에 LCD는 끄고 사진을 찍는다. 나름 필름의 느낌도 나고 배터리 관리도 수월했다.




TVS-D, Contax Carl Zeiss Sonnar T* (나열된 단어가 주는 느낌은 신뢰를 넘어 로망이다.)


 


TVS-D JPG 파일은 다른 카메라의 JPG와 다르다. 콘탁스 카메라 이미지 프로세싱으로 고유의 색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놀란 건 노이즈 패턴이다. JPG 파일이지만 마치 RAW에서 뽑아낸 듯한 입자감, 흡사 필름에서 보는 입자감 같은 것이 있다. 재미있게도 그 입자감 때문에 ISO 값을 일부러 올려 사용한다. (ISO가 80부터 최고 400까지 이다.) 흑백모드로 놓고 찍으면 콘탁스 특유의 대비(Contrast)와 입자감으로 흑백 필름의 느낌을 준다. 사실 궁금했다. JPG에서 소프트웨어로 흑백 보정하는 것과 TVS-D의 흑백모드는 다른가 같은 의문이다. 한 번 비교해보고 싶어서 각 보정한 사진을 놓고 본 적이 있다. 어느 것의 흑백이 더 나은가의 비교가 아니라 다른가에 대한 비교를 해 본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르다. 보정 단계를 거쳐 서로 비슷하게 맞출 수 있으나 흑백 설정을 한 번에 놓고 보면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 흑백 모드를 즐겨 사용했다. (다른 카메라도 비교해 본 적이 있는데 TVS-D 처럼 차이 나지 않고 두 사진의 흑백은 거의 같았다.)




흑백모드 확대, 알갱이 같은 입자감이 흑백 필름 느낌을 준다.




흑백모드 전체, 필름 같은 기분이라 감도 ISO400 으로 자주 찍게 된다.




흑백모드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근원적, 기원적 보기에 대한 호기심과 실험, 정보 제한의 피로 감소, 선택적 이야기 강조, 색조 표현의 단순화 같은 것이 있다. 오늘날 흑백은 기능적이 아니라면 굳이 흑백모드로 촬영할 필요가 없다. (라이카, 코닥의 흑백 전용 카메라는 기술적으로 컬러보다 선명한 사진을 만든다.) 보정의 기술 진보로 사진적 표현은 제한이 없고 의도된 것을 명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디지털카메라의 흑백모드를 사용하는 것은 표현적 이유보다 편리다. 보정 필요 없이 그 행위적 상태로써 만족과 자발적으로 제한함으로 컬러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다른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실험이다.
흑백모드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흑백사진은 색을 배제하며 형태에 집중하게 한다. 형태를 따르면 구도에 집착하고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무엇이 적정 구도이며 아름다움인가에 대한 것이다. 황금비율은 심리적 안정을 느끼지만 이것이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는가. 비율에 대해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며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 분야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틀을 정한다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검열을 받게 된다. 표현에 대한 다양함은 늘 열어 두어야 하며 합리성에 대한 정의도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할 필요가 있다. 사진에는 복잡함과 단순함의 정의가 서로 얽혀있다. 정의에 대해 필요하다면 표현해야 하고 필요하지 않다면 행위로써 만족한다. 두 가지의 상호작용 이해를 통해 충돌이나 갈등이 일어나는 부분을 사전에 정의함으로 사진 생활이 즐겁고 자유해진다.




환자에게 흑백에 대한 관심은 위험하다. 라이카 M 모노크롬(Monochrom)의 유혹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TVS-D iso400 f4.7 1/4




TVS-D는 흑백 모드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평상시 컬러 모드로 사진을 찍다가 ISO 감도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주로 흑백으로 전환한다. 감도를 400까지 올릴 수 있는데 컬러에서 그 감도를 감당하기에 노이즈의 영향으로 선명한 사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흑백으로 전환하면 입자감 표현이 좋기 때문에 컬러보다 나은 선택이 될 수 있고 흑백에 대한 나름의 합리성도 얻게 된다. 색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에 조도에 따르는 색조의 정도를 실험하여 보다 다양한 사진의 관점을 획득할 수 있다.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시도는 재미있다. 사진에 대한 실험과 성장은 연구가 아닌 재미에서 온다. 즐기는 것이 우선이다.




이런 카메라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아쉽기만 하다.




2005년에 교세라가 콘탁스 카메라 사업을 철수하고 2015년도에 수리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메인보드 고장으로 나의 콘탁스 TVS-D는 수리도, 사용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디지털카메라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전자기판의 수명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다. 사실 이 문제들로 인해 기계식 카메라에 대한 탐닉이 시작되었다. 보다 영구적인 것들에 대한 갈망이다. 덕분에 얻어진 것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다. 자기만족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전자식 부품이 거의 없는 기계식 카메라다. 그럼에도 콘탁스 G1, G2 카메라에 관심이 가는 것은 무엇인가. 환자에게 자기만족의 충족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숙제다.




사진 촬영은 이성적 판단과 직관적 반응이 결합된 행위이다. _ 토마스 횝커



CONTAX TVS-D ISO125 f4.7 1/125, 문경민 2009





CONTAX TVS-D ISO160 f4 1/30, 문경민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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