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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경민 Jun 09. 2019

#29 처지

   산책을 할 때 카메라를 들고 나갑니다. 무엇을 찍을지 모릅니다. 마음에 가는 풍경이나 정물이 있을 때 이런저런 각도로 사진을 찍습니다. 종종 어떤 대상은 처지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시들어가는 꽃의 모습 같은 것 말이죠. 그럴 때 마음의 동질감을 느낍니다. 시들어서 슬픈 감정이 아닙니다. 피었다가 다시 지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허무감 속에서 나타나는 감정입니다. 과정을 받아들이는 겸허한 긍정 같은 것이죠. 허무감 속에서 긍정이라는 표현은 어색하지만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허무함의 과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죠. 그럴 때 위로를 얻습니다. 나만이 아니구나 너도 같구나 하고 말이죠. 꽃의 위로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뷰파인더 속 자연의 모습은 더 아름답게 나타납니다. 꽃은 지고 피고 다시 집니다. 자연의 섭리 안에서 모두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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