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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경민 Aug 29. 2016

최초의 DRF, R-D1

Epson R-D1 에 관한 노트


  RF 필름 카메라로 인해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시간과 비용 때문이다.  디지털 RF를 고려했다. 그 당시 라이카에서 나온 디지털 RF 카메라 M8이 있었지만 비싼 가격으로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다행히 다른(유일한) 디지털 M 마운트인 EPSON R-D1(이하 ‘알디’)의 가격이 많이 떨어져 있어 구입했다.




2004년에 최초의 디지털 레인지 파인더(DRF) 카메라로 출시되었다.




알디 카메라가 주는 필름의 조작감은 이전부터 광고나 리뷰를 통해 보았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막상 사용하니 굳이 디지털에 셔터 레버 장전 방식을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한 번씩 촬영 타이밍을 놓칠 때마다 아쉬운 생각이 들어서다. 리와인딩의 저항감은 필름보다 약하다. 부드럽게 리와인딩 된다. 과정의 행위로써 필요한 방식이다. 디지털이지만 사진 촬영의 과정은 필름 카메라와 다르지 않다.





지침식으로 메모리, 화이트 발란스, 배터리, 포맷(Raw,Jpg) 정보를 한 눈에 확인 할 수 있다.




알디의 셔터 장전 레버에 대한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사진 행위는 의미와 의도가 중첩되어 있다. 의미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발견하는 것이고 의도는 엡손의 기술적 문제로 인해 셔터 장전 레버가 있는 것이다. RAW 촬영 시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소설을 쓰자면 엡손은 알디 카메라의 버퍼(Buffer) 문제를 해소하고자 조금이라도 셔터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콘셉트는 클래식으로 갔으니 이왕이면 셔터 리와인딩까지 재현 하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두 군데의 지침 계기판을 하나로 통일하고 최종 설계를 완성한다. 제품을 내고 뜻밖에 사용자들의 환영으로 외형을 유지한 채 시리즈를 만들어 간다. 여기까지 소설이다. 알디는 정말 버퍼 문제로 연속적으로 찍지 못한다.(이후 시리즈는 하드웨어가 업그레이드되었을 것이다.) 연속으로 4-5장 찍고 나면 이미지가 저장될 때까지 꽤나 기다려야 한다. 보다 천천히, 느긋한 마음이 필요하다.




주력 렌즈 L39 elmar 35mm, 라이카 올드렌즈와 디자인적 조합이 좋다.




많은 분들이 알디의 고유한 색감을 이야기하는데 둔함 때문인지 색감에 대해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 (RAW로 찍어서인지 모르겠다.) M 마운트 렌즈들의 차이에 대해 느낄 뿐이다. (렌즈에 대해서도 광학적 성능보다 배경 흐림의 정도에 대해 집착한다. 최대 개방에서 오는 광학적 오차와 붓터치 같은 렌즈의 개성을 재미있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알디는 풀프레임 카메라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렌즈의 개성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 광각 계열의 렌즈에서는 왜곡이나 주변 화질이 1.5크롭(APS-C)으로 인해 잘려도 괜찮지만  조리개 값이 낮은 렌즈를 쓰기에는 주변부에서 보이는 배경 흐림도 잘려 나가기 때문에 아쉬움이 있다. 1.3크롭인 라이카 카메라 M8의 중고 가격이 많이 내려갔지만 여전히 알디의 존재감은 강하다. 같은 마운트지만 서로 표현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좋다는 식의 구분이 아니라 지향하는 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라이카가 만든 디지털 RF는 발전 과정에 따라는 결과라면 알디는 필름 카메라의 재현이다. 물론 라이카가 M-D를 내면서 디지털카메라임에도 LCD를 없애긴 했지만 레버까지 시도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실용적이지도 않고 몸체의 두꺼움으로 인해 디자인도 맞지 않아서인지 모른다. 대단한 시도를 했지만 셔터 장전 레버까지 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LCD가 빠진 만큼 두께나 가격도 내려가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p)




뒷면_뷰파인더는 등배 파인더로 크며 시원하다. 가운데 환산 화각을 라이카의 감도 표기처럼 디자인했다.




LCD를 뒤집어 놓고 셔터 장전 레버가 있는 알디 카메라를 보면 누구나 이 카메라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필름 카메라라고 생각한다. 와인딩이 되지 않으면 찍히지도 않는다. 옵션으로 와인딩 하고 찍을 것인지 안 해도 찍히도록 여부를 열어둔 것이 아니라 아예 와인딩 해야 작동되도록 되어 있다. 베사 카메라를 정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게다가 지침식 계기판까지 있으니 필름 카메라보다 더 필름 카메라 같이 만들었다. 필름 카메라에 대한 완벽한 재현이고 사용자들은 여기서 열광한다. 디지털카메라에서 지침계나 셔터 장전 레버 같은 아날로그적 만족을 주는 카메라는 알디가 유일할 것이다. (라이카 M-D를 실제로 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클래식 카메라의 느낌 때문인지 여러 조작을 거쳐 찍은 결과물은 때로 필름 스캔 이미지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한다. 연사가 되지 않으니 보다 쉽게 찍지 않고 컷마다 신경을 쓰게 된다. 상황에 대한 관심은 심리적으로 사진 결과물에 영향을 준다. 이것이 아날로그가 가지는 힘이 아닌가 생각된다. 보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 낸 결과물은 아무래도 의미가 다르다. 이런 심리적 측면이 알디가 가진 큰 장점이라 본다. 아날로그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왼쪽 필름감는 노브 모양은 제자리 상태에서 돌리기도 하지만 들어올려 옵션을 선택하기도 한다. (딱딱거리면서 돌아간다.)




아날로그의 실험도 좋지만 알디는 결국 디지털카메라다. 디지털의 약점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특히 배터리의 문제가 크다. 모든 시리즈(R-D1, R-D1s, R-D1x, R-D1xG)가 단종되어 정품 배터리를 구하기 어렵다. 비품 배터리의 짧은 사용 시간도 문제다. (리뷰라도 하면 광속으로 닳는다.) 배터리 때문에 셔터를 아껴 누르게 된다. 여분의 배터리는 필수다. 제약되는 부분은 아쉽지만 조금 더 부지런히 준비할 수밖에 없다. (만약 최적의 효율로 배터리가 일주일씩 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을 텐데…!)


알디는 Bessa R2의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 또는 Diglog)으로 아날로그 기능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알디의 시도는 과도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아날로그의 힘은 지금도 여전히 발휘되고 있고 찾고 있으며 그리워한다. (잡스의 애플 감각을 그리워하듯.)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사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접촉되는 감각을 통한 정서 반응은 우리가 지향해야 되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해준다. 알디의 셔터 레버를 손에 대고 장전하는 순간 생기는 묘한 기분. 천천히 셔터를 누른고, 틱!. 마치 필름을 사용하는 것처럼 다음 촬영을 위해 다시 레버를 리와인딩하는 연속 동작으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얼굴에 밀착시키며 뷰파인더에 눈을 댄다. 잠깐의 행위를 통해 필름 카메라의 감각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 순간의 감각을 통해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고 특별함을 부여한다. 디지털카메라인 알디에서 감성이 있다는 건 이러한 작용 원리 아닐까.




사진가가 자신의 사진에서 진리를 말하고자 한다면 먼저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_ 마가레트 버크 화이트




Epson R-D1 heliar 15mm 문경민 2010





Epson R-D1 heliar 15mm 문경민 2010





Epson R-D1 Summicron-c 40mm 문경민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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