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 N잡러의 길을 택하다
나의 첫 직장은 작은 출판사였다. 편집자라는 직업 자체는 나에게 큰 자부심을 갖게 했으나, 매달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면 불안과 초라함이 몰려왔다. 당시의 물가를 고려하더라도 매달 150만원이 안 되는 월급은 사회에서 나의 위치가 이 정도인지를 의심하게 했고, 지나온 나의 모든 노력을 부정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내가 다닌 회사는 주6일 출근을 고수하던 곳이었고, 연차 따윈 감히 규정에도 없었다. 이러한 회사의 환경을 탓하는 것은 곧 나의 무능함을 지적하는 것 같아 참을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진 채 20대 청춘을 보냈다. 이후 나는 6번의 이직을 하며 연봉을 높여나갔다. 남들은 쉬지 않고 이직 준비를 하는 내가 대단하다고 했지만, 나는 내 스스로가 조금도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직장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그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남들이 알만한 기업에 입사했을 때, 이제 더 이상의 이직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직장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의 월급을 받게 되었지만, 나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여전히 부족했고, 회사에서의 시간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퇴근 시간 이후에 짬을 내 부업을 하기 시작했다. 국어과외를 하기도 하고, 입시 상담을 하기도 하고, 출판사의 문제 출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회사 일과 병행한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버는 돈이 늘어나면서 삶은 조금씩 윤택해졌다. 그리고 확신이 생겼다. 회사를 다니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었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나이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야, 너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삶이 반드시 나를 행복하게 할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불안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늘 제2의, 제3의 플랜이 필요했다. 그런 나에게 한 직장을 평생 다닌다는 것은 결코 행복한 일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퇴사를 선택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자, 가늠하지도 못할 만큼의 불안이 몰려왔다. 매달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움직였다. 일단 나의 경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도전했다. 그리고 그 아무리 힘든 일이 들어와도 절대 거절하지 않고 완벽히 해내려 애썼다. 덕분에 입시컨설턴트, 논술강사, 취업상담사, 공부방 선생님, 작가, 숙박업 호스트 등 여러 갈래의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이 과정이 결코 달콤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에 대한 인정과지속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기에 충분히 버틸만 했다.
그렇게 10년이 흐르면서 나는 나 스스로를 당당히 프리워커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자기확신이 생겼다.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고, 매달 느꼈던 경제적인 불안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나게 되었다. 앞으로 또 세상이 어떻게 변해 나의 직업 중 한 두 개가 사라지더라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으리라는 배짱도 생겼다. 앞으로도 나는 선택과 집중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해보고, 내가 가진 역량을 확장시키는 데 주력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삶을 다채롭게 만드는 방법이며, 스스로를 인정하고 발전시키는 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