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도, 평생직업도 없다.
첫 직장에 입사했을 무렵, 사람들은 나에게 왜 하필 출판사를 선택했냐고 물어보곤 했다. 당시에도 출판업, 인쇄업은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다 저물어가는 직종에 몸 담은 나를 안쓰럽게 보거나 걱정해주는 말들이 전혀 고맙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저 끝없는 불안과 자괴감을 양산해낼 뿐이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공무원처럼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실제로 많은 동료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안정성’ ‘평생직장’ ‘평생직업’이라는 말은 20대의 나를 한없이 불안하게 만들고, 당장이라도 평생을 보장할 직업을 찾아 떠나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 이후 수 차례의 이직을 거듭하면서도 평생 직장이라 느껴지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것은 내 뽑기 운이 잘못되었거나 실력이 부족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대체 평생 직장이란 무엇이며, 평생이라는 기간을 어디까지로 잡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실제로 남들이 우려했던 나의 첫 직장은 그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거듭하며 이제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회사로 자리잡았다. 금방이라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출 것 같던 출판업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책육아 열풍과 함께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으면 커졌지, 결코 작아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우려는 10년 전에도 존재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책을 읽는 플랫폼이 다양해졌을 뿐,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이를 판매하는 행위는 계속되는 중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과연 평생의 직업을 예측하고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어떤 직업이 도태되고,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지 예측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저 분명한 것은 평생 나를 지켜줄 직장도, 직업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파도타기를 하듯 세상의 변화에 몸을 맡기고 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내가 프리워커가 된 것 또한 이러한 파도타기의 일환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몇 차례의 기회가 왔고, 처음 한 번의 기회를 잡자,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는 조금 더 쉽게 찾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가 나의 실력인 것마냥 안도감을 느낄 때쯤엔 어김없이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몇 차례의 기회와 위기를 반복하다 보니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직업도,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기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그 누구도 어떤 일이 영원할 것인지 알 수 없고, 그 일이 반드시 나를 성공으로 데려다준다는 보장도 없다. 그저 불안하면 불안한대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다가,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도전해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 십년 뒤의 내 모습을 예측조차 할 수 없어서 불안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기에 인생은 더 살아볼 만하다. 그렇게 예측 불가능한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그럴듯한 평생이 채워지리라 기대해본다.